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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7-충성(마태복음25:21-3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076 추천수:7 112.168.96.71
2016-05-15 10:21:32

 

성령의 열매7-충성

마태복음25:21-30

 

교회에 다니면 성품이 바뀔 수 있습니까? 교회 다니면 과연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주렁 주렁 맺히겠습니까? 교회에 다니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 수 있을까요? 늘 남을 헐뜯고, 비판하고, 정죄하며, 미워하는 사람이 원수도 사랑하게 되고, 늘 짜증을 부리며, 슬퍼하는 사람이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가는 곳마다 불화를 만들고, 편을 나누고,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가는 곳마다 평화를 만들고 하나 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늘 참지 못하여 함부로 말하고, 분노하는 사람이 남을 생각하며 오래 참을 수 있을까요? 교회 다니면 정말 자비롭고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한 때 대도라고 불린 조세형씨가 교회에 다니며 간증까지 했는데 늙어서도 계속 도둑질하고 지금도 감옥에 가 있는 것을 보면 “교회 다녀도 성품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끔 교회 다니면서도 나이 60이 넘었는데도 남을 칭찬하지 않고 비난하고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교회 다녀도 성품은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고 교회만 다니면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성품이 바뀝니다. 정직하게 예수님을 구세주,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믿으면 성품이 변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가짜로 예수님을 믿는 체만 하면 성품 잘 변하지 않습니다. 60년 교회 다녀도 자기가 자기 안에 살면서 왕노릇하고 있으니 그것이 그것이지 변하겠습니까? 병속에 검은 물이 가득 들어있으면 80년이 지나도 검은 물만 나옵니다. 그릇은 똑같지만 깨끗한 물로 바꾸면 깨끗한 물이 나옵니다. 내가 내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계셔야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나는 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이제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면 성품이 바뀝니다. 믿습니까? 인생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천국과 지옥이 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영원한 천국에 산다는 확신을 가지면 성품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할 때, 말할 때, 행동할 때 내 안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내가 하지 않고 나는 십자가를 통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원하시는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면 성품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 변하면서 잘 믿는 체 하는 것은 바리새인에 불과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시면 분명히 성품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때가 되면 성령의 열매는 맺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담배 취한 사람에게 담배 냄새가 나고, 술 취한 사람에게 술 냄새가 나듯 성령에 취한 사람에게는 성령의 향기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가 4월 달에 시골에서 블루베리를 사다 교회 로비 화분에 심었습니다. 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강풍 때 꽃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오늘 주보에 실은 표제시를 썼습니다. 꽃이 많이 떨어졌는데 열매가 맺힐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제 보니까 열매가 두툼하게 맺혀 부풀어 오른 것을 보았습니다.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열리고,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열리고, 감나무에는 감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 구주로 믿고 성령의 사람이 되면 성령의 열매는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성품이 바뀔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연속 설교를 들으면서 지루하게 생각하거나 목사님이 까는 설교를 한다고 분노하지 마시고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히시길 바랍니다. 내 성품, 내 남편 성품, 내 아내 성품, 내 자식 성품, 내 부모님 성품, 목사님 성품, 장로님 성품, 권사님 성품, 집사님 성품 바뀔 수 없다고 절망하고 포기하지 마시고 성령 충만으로 얼마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품으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사람,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 가정, 성령의 열매가 철철 넘치는 교회, 성령의 열매가 주정 주렁 맺는 삶의 현장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성령의 열매 일곱 번째 충성입니다.

충성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충성 충(忠)과 정성 성(誠)으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우리 말 사전에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특히, 임금이나 국가에 대한 것을 이른다.”라고 풀어 놓았습니다. 헬라어로 ‘피스티스’입니다. 피스티스는 ‘믿음, 신실, 진실, 성실, 충실, 신의’ 등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피스티스는 주로 ‘믿음’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충성으로 번역한 곳은 신약 성경에 17회(구약까지 35회)가 나오는데 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성령의 열매를 말할 때 피스티스를 개역개정에서는 ‘믿음’으로 번역하지 않고 ‘충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개역 개정에서 주로 어느 때 충성으로 번역했는가 살펴보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번역할 때 문맥 속에서 충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 복음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서 충성된 종을 말할 때 믿음의 종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충성된 종”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으로 번역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충성된 종으로 소개하고 있는데(고전7:25; 딤전1:12) 믿음의 사람라고 번역하지 않고 충성된 사람으로 번역했습니다. 고전 4:2에서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 때도 믿음이나 신실이 아니라 충성으로 번역했습니다. 딤후 2:2에서도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충성된 증인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계1:5; 3:14)

이런 문맥적인 번역을 볼 때 충성의 열매는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행하는 열매입니다. 어떤 환란과 역경이 다가와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변절하거나 배신하지 않고 맡겨진 일을 충실하게 시행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어떤 경우에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맡겨준 일을 충실하게 하는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충성의 열매를 풍성히 맺힐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잘 했다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겠습니까?

 

1. 우리가 충성의 대상을 잘 이해하여야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아 풍성한 충성의 열매를 맺힐 수 있습니다.

충성은 충성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누가 왕이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왕이 되는 이상 충성의 열매는 맺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왕인데 누구에게 충성을 합니까? 내가 사장으로 왕노릇하고 내가 목사로서 왕노릇하는데 누구에게 충성합니까? 내가 왕인 이상 충성의 열매는 맺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왕은 하나님입니다. 누구에게 충성하느냐는 것입니다. 옛날 왕조 시대 때는 충성이 핵심적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충신불사이군, 忠臣不事二君)’라고 했습니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가 정몽주에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라고 하니까 정몽주가 “이 몸이 죽어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일편단심을 외쳤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람을 향한 일편단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말합니다. 변하지 않고 신실함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고전1:9).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을 향항 일편단심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돈이 내 주인이 아닙니다. 사람이 내 주인이 아닙니다. 세상이 내 마음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가 일평생 충성해야 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신 예수님을 계시록에서 소개할 때 충성된 증인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계3:14)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계1:5)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19:11)

히브리서에서는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히 3:5-6)

인간의 몸을 입고 사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다 뿌리치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라고 말씀하시면 하나님께 충성하였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도 변절되거나 배신하지 않고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막14:36)라고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바울 역시도 오직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의 밀레도 설교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라고 말했습니다.

사탄은 끊임 없이 우를 유혹합니다. 너가 왕노릇하라고 합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교회 다니면서도 충성의 열매는 맺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충성해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왜 충성된 종이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충성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까?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신에게 한 달란트를 주신 주인을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24)"라고 말씀합니다. 굳은 사람이라는 말은 완고하고 거칠다는 말입니다. 눅19:21절에는 엄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노동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완고한 수전노같은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주인을 잘 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었습니까?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을 심지도 뿌리지도 않은데서 거두는 사악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간과 재능과 물질의 달란트를 맡기신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시89:8,33; 시 36:5; 애3:23). 독재자나 폭군이 아닙니다. 인간과 지구를 창조하시기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끝까지 이루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을 오해하고 있는 그를 향하여 주인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한 달란트 맡은 자는 26절에 악한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악하다(포네로스)"라는 말은 무가치한 악독하다는 뜻입니다. 주인의 의도에는 전혀 무신경하고 자기 안일에만 심취해 결국 주인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착하다(아가도스)"는 말은 올바르고 정직하다는 말로 주인이 요구한 의무나 봉사를 충실히 이행했다는 말입니다. 주인의 뜻, 주인의 규칙, 주인의 의도에 맡게 한 것입니다.

 

우리 중심이 신실하신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질 때 성령의 열매인 충성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다른데 시선을 빼앗기면 금방 변질되고 배신하게 됩니다. 사울도 처음에는 성령을 받고 그에게 왕위를 주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자 금방 하나님을 반역하고 자신이 왕노릇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충성된 종이 아니라 배신자가 되어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고 자신의 가문도 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인신매매한 유다도 처음부터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회계를 맡을 만큼 신뢰를 받은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예수님의 뜻을 헤아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다가 결국 배신자가 되어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충성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인 충성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면 하나님에 대한 복종과 헌신이 변질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배신하지 않고 그 뜻을 평생도록 따르게 됩니다.

충북도청과 청주시는 1980년 우암산 자락에 삼일공원을 조성하면서 청주 출신으로 3.1운동 독립 선언서에 서명을 한 6인(손병희, 권동진, 권병덕, 신홍식, 신석구, 정춘수)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 중 신석구와 정춘수는 목사이며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춘수 목사의 동상은 철거되고 빈 좌대만 남아 있습니다. 신선구 목사는 1907년 7월부터 고랑포교회에 출석하는데, 그곳에서 고향 친구인 정춘수 전도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석구는 정춘수에게 이끌려 신학교를 다녔고 목사가 되어 민족지도자 33인 중 한 사람으로 3.1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 8개월 동안 수감되어 고난을 겪다가 1921년 출옥하였습니다. 정춘수 목사도 똑같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지만 일제의 고문과 회유를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1935년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에는 노골적으로 친일 노선을 걸어 일제말기 가장 대표적인 친일파 종교인이 되었습니다. 1940년 감리교 감독이 된 후에는 한국 교회를 일본교회 예속으로 추진하였고 1943년 소위 ‘혁신교단’이라는 친일교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종교정책에 적극 순응하는 비굴한 종교 지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감독을 통리자로, 목사를 교사로 바꾸고 감리교 연회를 해산하고 대신 교구를 만들었습니다. 총독부의 징병제도 실시에 동조하는 내용의 공시문을 발표하고, 일본어로 설교할 것과 구약전체와 신약의 계시록을 읽지 말 것, 찬송가에서도 전쟁이나 평화, 메시야나 재림에 관한 찬송을 삭제할 것 등을 지시하였습니다. 또한 국방헌금을 실시할 것과, 전국 34개 교회를 폐쇄하고 그 부동산을 매각하여 ‘감리교단 애국기(愛國機)’ 3대를 헌납할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친일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제명, 출교 혹은 휴직, 퇴직 처분하였습니다. 이러한 친구의 변절을 지켜보다 못한 신석구는 1944년 여름, ‘소고기 두 근’을 들고 정춘수의 집을 찾아갔지만, 정춘수는 친구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정춘수 목사는 명예에 혈안이 되어 ‘유명세’를 타고 감리교회 제4대 감독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해방이후 ‘친일파’로 비난을 받고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을 때 감리교를 이탈하여 천주교로 개종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쓸쓸히 말년을 보내다가 1951년 고향에서 피난 중에 비참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한편 신석구 목사는 8.15해방을 용강경찰서에서 맞았고 해방 후 유사리 교회에 복귀하였지만 곧이어 들어온 공산주의 세력으로 인해 혹독한 고난의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교회를 지키겠다며 북쪽에 남았던 신석구는 1949년 '진남포 4.19사건'에 연루되었지만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10년형을 선고 받아 인민교화소에 수감되어 6.25 전쟁 때 순교하였습니다. 76세에 순교하기까지 회유와 위협 앞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끝까지 올곧게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누가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말을 듣겠습니까? 변절과 배신이 21세기를 사는 지혜라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끝까지 충성된 종으로 남아야 하겠습니다.

 

2. 작은 일이라도 맡겨준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충성의 열매를 풍성히 맺힐 수 있습니다.

자신이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음에 반드시 누가 크냐는 경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크기 경쟁을 하면 충성을 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이 싸움에서 실패했습니다. 충성의 열매는 맡겨준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왕이 시켜주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충성의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교회일 하면서, 회사일 하면서 자기가 왕이 되어 제 멋대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 50년 다녀도 충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자기 하고 싶으면 하고 자기 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제 맘대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충성의 열매이겠습니까? 그것은 일을 시킨 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충성과는 관계없는 자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달라트 비유를 보십시오. 충성된 종들은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즉시 장사하여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불충한 종은 그것을 땅에 묻어 놓아 버렸습니다. 주인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자기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추측하고, 판단하고, 단정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정당성이 있습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비교하고 차별대우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면 아무리 내 눈에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준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충성된 종이 될 수도 있고 불충한 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에 대하여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 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작은 일도 하나님께서 시켜주신 큰 일처럼 다루는 신실한 사람이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소인은 크고 특별한 것에만 충성하고 위인은 평범한 것에도 충성하고 성자는 작은 것에 크게 충성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열매 충성은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여 열리는 열매입니다. 충성이란 말을 '충실' '성실' '신의'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충성이란 믿을만하고 자기 일에 열심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한 달란트든, 두 달란트든, 다섯 달란트든 다 주인이 주신 것이고 그 달란트를 가지고 충성하는 것은 주인의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내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죽으나 사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는 사람의 조건을 한 가지를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충성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 2:2)“

 

주인의 의도를 모르고 땅에 묻어 놓는 불충성한 종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한 달란트가 6000 데나리온에 해당하고 1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인건비입니다. 이 돈은 20년 벌어야 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는 작은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이 남겼나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의 요구에 맞느냐 안맞느냐? 주인의 뜻을 성취했느냐 자신의 뜻을 이루었느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 달란트를 남겼든 다섯 달란트를 남겼던 똑같이 "작은 일에 충성했다(피스토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작은 일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중에도 매주일이면 꼭 자기 본 교회에 가서 교회학교를 섬겼답니다. 그렇게 큰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23년 동안 20여 명의 교회학교 학생들을 가르쳤답니다. 대통령에서 퇴임하고 나서도 자기 고향 조지아의 옛 교회로 돌아가 교회학교를 섬기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교회당을 청소했고 그 모습을 보려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기도 했답니다.

천체 물리학자인 첸드레이카 박사의 이야기 입니다. 하루는 이 박사님이 시카고 대학으로부터 겨울 방학 동안 학생들에게 고고물리학 특강을 해 주십사 하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몇 주일 후에 그 대학에서 다시 전화가 오기를, 박사님의 특강을 신청한 학생이 두 명 밖에 안 되어서 아무래도 폐강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두 학생을 위해 위스콘신에서 시카고까지 2시간 이상 되는 거리를 운전해서 매 주 이틀씩 강의를 했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 이 두 학생이 모두 물리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게 되었답니다. 이 때 그 사람들은 “우리가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해 주신 분은 바로 첸드레이카 박사님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너무나 하나님의 일을 무시하고 도외시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교회 일이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를 외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 일에 깊이 들어가지 말라 그러면 시험에 든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적당히 하라 그러다간 몸 상한다.”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그렇게 해서는 결코 잘했다 충성된 종이라는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충성의 열매를 맺힐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면 화장실 처소든, 길거리의 쓰레기 줍는 일이든, 어떤 험한 일이든 어떤 일이지라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지 말고 충성함으로 충성의 풍성한 열매를 맺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결산의 때에 초점을 맞추고, 과정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결과를 확신해야 끝까지 충성의 열매를 풍성히 맺힐 수 있습니다.

충성은 결과를 생각해야 변질되지 않습니다.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과정을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과정은 과정일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결과를 확신할 때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과 조건, 과정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끝을 보지 못하고 과정을 전부로 보니까 어려움 다가오고 위기를 만나고 자신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충성하지 못하고 변질되고 배신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간이, 사울이, 엘리 제사장, 유다가 그 부분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끝이 있고 결산의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중국내지선교에 충성을 다했던 허드슨 테일러 목사님이 임종을 몇 달 앞두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자 그의 절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썼답니다. ‘여보게 나는 지금 몸이 너무 쇠약해서 걸을 수거 없을 지경이라네. 그리고 나는 성경을 읽을 수도 없고 심지어 기도도 못하고 있네. 단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팔에 안긴 어린 아기와 같이 누워 있는 것이라네. 그리고 그 어린 아기가 하나님을 믿듯이 나도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있을 뿐이라네.” 어떤 과정에서도 마지막 만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 살고 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유혹과 핍박을 통해 우리의 충성을 변질되고 반역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지 못하도록 친한 사람을 통해 유혹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통해 유혹합니다. 각종 핑계거리를 주어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살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결산의 때가 있습니다. 그 날을 바라볼 때 수많은 유혹과 핍박을 견디면 영적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충성의 열매를 평생 동안 맺힐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마지막 날이 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 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마 24:44~46)라고 말씀합니다. 악한 종들, 불신실한 종들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짜 주인이 오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정확하게 평가해 주신 분이 오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물 닦아 주시는 분을 오실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끝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결산할 때가 있습니다. 충성은 한결같은 마음과 태도를 뜻합니다. 마지막을 바라보아야 한결 같은 마음과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나 조령모개(朝令暮改)가 되지 않습니다. 변덕스런 삶을 살지 않습니다. 걸레 같은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른 믿지 못할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결산 때 충성된 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징기스칸은 무수한 전쟁을 하면서 끝까지 그를 믿고 생사고락을 같이 한 사람을 타르탄이라고 따로 불렀답니다. 그가 황제가 되자 마자 타르탄에게 언제든지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왕의 집에 들어올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노획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먼저 골라 갖게 하고 세금을 면제해주고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지어도 9번까지 용서받을 수 있게 했답니다. 나라 안에서는 가지고 싶은 땅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게 하고 이러한 권리는 4대까지 누리게 했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어떻게 해 주시겠습니까?

황금 길이 있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죽음도 눈물도 고통도 한 숨도 질병도 없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도 더 많은 것을 맡게 되었습니다(21,23,28).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였습니다(21,23).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주님은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눅19:17).”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불충성한 종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갑니다. 있는 것도 빼앗깁니다.(28) 이를 갈며 통곡하게 됩니다.(30) 결국 추방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단테는 '신곡(神曲)'에서 배신자를 지옥 맨 밑바닥에 두었습니다. 배신자로 자기의 스승인 예수를 판 가룟 유다와 로마황제 줄리어스 시저를 암살한 그의 친구이던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넣어 놓았습니다. 단테는 배신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악 중에서 가장 밉고, 더럽고, 비열한 최대의 죄악으로 본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것은 자기가 믿고 섬겼던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의로움보다 살아남는 것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는 세상이지만 충성은 박물관의 유물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오래도록 변질되지 않고 충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 교회를 죽을 때까지 다니며 맡겨준 일에 충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손해같고 어리석은 것같고, 모자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결코 허비나 낭비가 아닙니다. 바울은 마지막 하나님 앞에 평가받을 날을 바라보며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질병에 걸리고 수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위선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에 욕심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고 했습니다. 글은 잘 쓰는데 설교를 못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한 입으로 두말을 한다는 비판도 들었습니다. 수많은 환란을 당하였습니다.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돌로 맞았습니다. 배가 세번 파선하여 죽을 고비를 견뎌야 했고 굶주리고 헛벗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과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딤후 4:7-8)라고 했습니다. 재판장 앞에 설 그날을 바라본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질되거나 배신자의 자리에 서지 않은 것입니다. 폴리갑이 화형을 당하기 전 로마의 권위자가 그에게 물었답니다. "어떠냐? 이제라도 네가 섬기는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번만 부인하는 것이. 그러면 너는 살아 나갈 수 있다." 천천히 그 로마인을 바라보던 폴리갑이 고개를 흔들었답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강인하게 말했답니다. "아니오. 나를 저 불 속에 던지시오. 어떻게 내가 그 분을 부인할 수 있겠소. 오늘까지 그 분은 나를 한 번도 외면한 적이 없는데!" 성경은 말세가 되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4)"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이 언젠가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잘 했다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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