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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3-화평(갈5:22-23; 엡2:14-1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255 추천수:8 112.168.96.71
2016-04-19 08:35:24

 

성령의 열매 3-화평

갈5:22-23; 엡2:14-18

 

오늘은 성령의 열매 세 번째 화평입니다. 이 화평의 열매는 원문에서는 “에이레네”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88번 정도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샬롬"이라는 말인데 신구약을 합하면 이 평화란 말이 400번 이상 등장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평화’, ‘화평’, ‘평강’, ‘평안’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각각의 단어들이 주는 느낌이 약간씩 다릅니다. ‘평화’는 전쟁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국가적으로 전쟁이 없는 평온한 상태, 사회적으로 조화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똑같은 말이지만 단어 순서를 바꾸어 ‘화평’으로 번역할 때는 서로 원수 시 하지 않는 관계의 정상적인 상태, 즉 대인관계의 화목을 의미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평강’이나 ‘평안’은 불안이나 걱정이 없는 개인적으로 심리적인 안정을 의미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령의 세 번째 열매인 ‘에이레네’는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신앙인이 누리는 성품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국민으로, 대인관계 속에서, 개인적으로 이 화평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히며 살 수 있겠습니까?

 

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국가적으로 전쟁이 없는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참 평화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의 열매는 순식간에 떨어지고 맙니다. 윌(Will)박사와 아리엘 듀란트(Ariel Durant) 박사에 의하면 지난 3421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86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지구촌 역사에는 91.6%가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100년, 20세기 하나만을 놓고 보아도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서 약 9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살상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와 같은 이념문제로 전쟁이 일어납니다. 십자군 전쟁과 같이 종교문제로 전쟁이 일어납니다. 1,2차 대전처럼 영토문제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장미 전쟁처럼 왕위 계승문제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현대전처럼 경제문제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가인과 아벨 이후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은 평화가 깨지는 전쟁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야고보서 4장 1절에서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인간의 정욕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는 탐욕입니다. 그 죄가 하나님과도 원수가 되게 하고 인간끼리 원수가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가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설령 전쟁이 없는 잠깐의 평화가 주어진다 해도 그것은 예레미야나 에스겔 선지가가 말한 것처럼 진짜 평화가 아니라 가짜 평화로 평화스럽게 보일 따름입니다. 이사야서 57장 19~21절을 보면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사악한 자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수단을 동원한다 해도 결코 평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보면 끊임없이 전쟁을 치루게 되고 결국은 앗수르에게 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맙니다.

 

어느 때 그들에게 평화가 찾아옵니까? 사사기를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전쟁이 그치고 진정한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하나님께 나올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면 ‘살롬’이 없어집니다. 이스라엘이 범죄 하면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아 평화를 잃어버리고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저들을 구원하여 다시 평화를 누리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을 때는 평화를 누리고 번영하였고 안전하게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탐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문제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원수가 된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과의 담을 헐어버리고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해 버린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인류의 평화는 핵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평화는 무력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옛날 로마가 이룩한 평화 즉 팍스 로마나나 혹은 오늘날 미국이 전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며 이룩하는 평화 즉 팍스 아메리카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한 평화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육체로 막힌 담을 허신 평화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화목제물이 되어서 주신 평화입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1 2:2)

예수님 오시기 전 700여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왜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구약성경은 메시야를 예언하면서 그분은 "평강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서 9장 6절에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시면서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라고 했습니다. 평화의 왕이 오시면 멍에와 압제가 사라지고 모든 전쟁이 끝나는 날이 이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메시야를 통해서만 진정한 '샬롬'이 올 것을 예언입니다.

이사야서 11장 6절 이하를 보면 메시야가 오시면 맹수와 어린양이 함께 노닐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서 장난하여도 해함이 없는 평화의 동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천사들이 뭐라고 노래했습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예수님은 진정한 평화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를 누리려면 예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진정한 평화가 보장됩니다(롬5:1)

19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 사이의 모든 적대감을 십자가를 통하여 죽으심으로서 새롭게 연합된 인류가 됩니다. 성령 안에서 동일한 시민, 하나님의 가족, 한 성전이 됩니다. 가정 안에서, 직장에서, 세계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려면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하여야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평화의 왕으로 전해야 합니다. 진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 질 때 평화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에 의해 평화의 열매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렁주렁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 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니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되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되 하날세(예수 안에서) 하날세(예수 안에서) 하날세(예수 안에서) 하날세”

 

2. 우리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이웃과 참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변화되는 것이 있는데 이제 우리의 지향점이 달라집니다. 이제는 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친죄성향이 없어집니다. 남과 싸우는 것 싫어집니다. 화평케 하는 자로 변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8복을 말씀하실 때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다. 천국의 시민은 화평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늘 싸움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Troble Maker입니다. 당 짓는 것, 분쟁하는 것, 수군수군하는 것, 남을 비방하는 것 등으로 이간질 시키고 싸움을 붙입니다. 남의 좋은 점을 보지 못하고 늘 허물을 보며 수군수군하고 비방합니다. 가는 곳마다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가?” 의심을 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 다니면서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착각하고 늘 싸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의를 실현한다고 교회를 싸움터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인가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싸우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5장 18-20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를 화복하게 하는 직분을 주어 화평을 만드는 사람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싸움을 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싸움을 말리는 Peace Maker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평화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방관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화평케 하는 자로 불렀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매일 일어날 때 잠을 잘 때 “내 사명은 화목이야”라고 세 번씩 외쳐 보십시오. 철저히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하겠다고 살아보십시오. 내가 가는 곳에 화평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성도와 가족과 이웃과 화평을 누리려면 우리가 화평의 사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다른 사람과 화목해야 하지만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화목하게 사는 것을 시기합니다. 어떻게든 분열시켜 지옥처럼 살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아담 때부터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 사탄을 끊임없이 분열을 조장할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의 균열을 좋아하는 것은 사탄 밖에 없습니다.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 지나면 별거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메뚜기와 하루살이가 싸웠는데 하루살이가 엄청 두들겨 맞았답니다. 화가 난 하루살이가 천 마리나 되는 친구를 데리고와서 메뚜기에게 도전했답니다. 그런데 메뚜기의 한마디하더랍니다. "야..나 오늘 피곤하니깐 내일 싸우자" 하루살이는 말 그대로 하루살이입니다. 세상 싸우고 살만큼 긴 시간이 아닙니다.

죤 번연이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있다. 마귀와 더불어 대적해야 할 교회와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구나!"라고 했듯이 오늘 날도 교회 생활 속에서 성도들끼리 원수가 되어 싸우는 모습을 봅니다. 분쟁은 서로 죽이는 독약입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분쟁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신앙생활 오래 하면 할수록 미움과 다툼, 시기로 가득 차고 있다면 화평의 열매로 가득 채우기 위해 매일 매일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루에 하나씩 해보고 기록을 해 보십시오. 화평을 주는 자로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Trouble Maker의 혀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입을 조심하지 않고 혀를 함부로 놀려대기 때문에 평화가 깨집니다. 남의 허물을 보고 혀로 비판하고 싶으면 그 때 의도적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면 평화의 도구가 되어 화평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될 것입니다. 험담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때 침묵하면 화평의 열매가 입술에 맺히게 됩니다. 공연히 아는 척하고 충고하고 비난하려는 유혹을 참고 의도적으로 칭찬을 하게 되면 피스메이커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누가 비방하는 말을 할 때 그 사람에게 가서 그 말을 전하지 않으면 평화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견해나 의견을 교회 안에서는 강하게 주장하고 싶을 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분별하면 화평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화평의 열매는 가장 빨리 입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라"(롬12:18)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7-18)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실수가 있었다면 그것은 십자군 전쟁이었을 것입니다. 회교도들에게 빼앗긴 성지를 탈환한다고 전쟁을 하여 수많은 고아와 미망인들을 만들었습니다. 오늘까지 기독교들과 마호멧교도들 사이에 무서운 증오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군 전쟁이 계속되던 그때 이 전쟁의 잘못을 지적하고 아군 진영뿐만 아니라 적군들에게까지 평화의 사신을 보내고 복음전도자들을 파송하며 눈물로 기도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아씨시(Assisi)의 성자 성 프란시스(St. Francis)입니다. 그는 한 시대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았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버려 죽음으로써 영생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이 기도가 우리 성도님과 저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기도함으로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의 화평은 평안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시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6-27)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서도 늘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질병이 걸리고 부도의 위기가 다가오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직장에 문제가 생기면 불안해지고 긴장해집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화해 못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평안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믿으면서도 평안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서도 참 평안을 누리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경우에도 평강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방법을 없겠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평강을 잃지 않고 천국 가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먼저 파괴적인 염려와 걱정은 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의도적으로 마음의 평강을 깨뜨리는 염려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파괴적인 염려는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 6:27)" 우리가 파괴적인 염려의 늪에 빠지면 자신이 황폐화되어 버립니다. 염려는 불신앙의 죄입니다. 염려는 마음에 질병을 가져다주는 죄입니다. 염려는 염려의 상황을 결국 만들어 가는 죄입니다. 어니 J 젤린스키는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그리고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들"이라고 말했습니다. 96%의 염려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귀중한 인생을 황폐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파괴적인 염려거리가 있을 때 기도하여야 마음에 평강이 찾아 듭니다. 염려가 죄라는 사실을 알고 "염려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하고 각오한다고 염려의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평강이 없으면 기도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면 염려거리는 쓰레기 통으로 들어갑니다. 힘없는 다윗이 골리앗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니까 평안이 찾아옵니다. 나병 환자가 나병 때문에 혈루증 여인이 혈루증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니까 문제가 해결되고 평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문제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전체를 맡기는 것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37:5)"신다고 말씀합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 17:7-8)“

 

셋째는 생각 자체를 복음적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계속 마음은 상상의 날개를 펴서 걱정과 염려의 쓰레기 통을 뒤지고 다니면 안됩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6가지 나와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참됨, 경건, 옳음, 정결, 사랑받을 만함, 칭창받을 만함" 파괴적인 염려, 걱정거리가 생기면 이 여섯 가지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적 생각입니다. 신앙적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죽어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마음을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26:3)” 주께서는 생각을 주께 고정시킨 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폭풍 가운데 제자들이 잘 못된 추측을 하니까 평강을 잃어버립니다. 이런 것들은 악한 추측(딤전 6:4)입니다. 즉 진리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상상이나 잘못된 추측을 하면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평강대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강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할 때 평강의 열매는 주렁주렁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는 우리가 파괴적인 염려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예수님으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여야 합니다. 기도하고 마음만 바꾼다고 참 평강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염려만하고 있으면 홍해는 갈라지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단 강 앞에서 염려만하고 여리고 성 앞에서 염려만 하고 있었다면 요단강을 건널 수 없었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같지만 지팡이를 내밀고 법궤를 메고 들어가고 침묵하며 도는 것입니다. 이럴 때 염려와 걱정은 살아지고 평강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복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복음적인 요소가 추가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복음이 전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무조건적이지만 우리에게 오는 성품의 열매는 조건적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기도만 하고 있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고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철저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 13:17)" 마7:24에서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라고 말씀합니다. 순종이 없다면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기대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십니까?

9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지키신다는 말은 "수비하다. 경계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삶의 성벽과 망대 주위를 돌아가면서 지켜 주리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가출하여 시궁창으로 돌아다니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그 모든 것을 지켜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완전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입니다. 이 평강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수 없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우리가 어떻게 이 화평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히며 살 수 있겠습니까?

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그들도 예수님 안에 살게 만들어야 합니다.

2.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이웃과 참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의 도구, 평화의 사신, 화목케 하는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기도함으로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먼저 파괴적인 염려와 걱정은 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의도적으로 마음의 평강을 깨뜨리는 염려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파괴적인 염려거리가 있을 때 기도하여야 마음에 평강이 찾아 듭니다.

셋째는 생각 자체를 복음적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넷째는 우리가 파괴적인 염려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예수님으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여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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