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부활 후 주신 말씀(요20:19-2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835 추천수:4 112.168.96.71
2016-03-27 08:26:14

 

부활 후 주신 말씀

요20:19-23

 

오늘은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 성도님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제가 예전에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담임목사님께서 “믿습니까?”라고 하니까 뒤에 있던 어린 아이가 “뻥이요”라고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활의 증거 : 5가지 부활의 증거와 확신>이라는 책은 쓴 리 스트로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목사가 되었지만 그는 예일대 법대 출신의 명 저널리스트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고 냉소적 회의론자였답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믿었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막연히 희망이나 얻어 보려고 신과 천국을 지어냈다고 생각했답니다. 신앙은 굳이 기간들여 알아볼 가치조차 없는 말짱 허튼 소리였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전설이거나 착각일 뿐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제자들이 다 짜고 조작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자로서 최대의 쾌락을 얻는데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았고 자연스럽게 몹시 부도덕하고 술에 찌는 삶이 연속되었답니다. 자아 도취에 빠졌고 설명하지 못하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었고 아내와 싸우고 홧김에 발길질 하여 거실 벽이 구멍이 뚫릴 정도였답니다. 아내와 어린 딸은 눈물을 흘렸고 어린 딸은 아버지가 술먹고 들어오면 자기방으로 들어가 숨었답니다. 어느날 아내가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변화된 아내를 보고 어느날 교회에 함께 가자고 해서 따라갔답니다. 그는 그날 신앙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전공인 언론학과 법학적 지식과 기자 정신으로 21개월 간 추적한 2,200여 편의 자료에서 그는 부활은 가능성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열정적인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부활을 증거하는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런던대학교 법률학 교수 노먼 앤더슨도 <부활의 증거>라는 책을 통해 만약 부활이 참이라면, 그것은 역사의 의미를 뒤바꾸는 최고의 핵심적 사건이 될 것이며, 만약 거짓이라면 기독교는 희대의 사기극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법률을 가르치는 교수로 여러 기록 문서의 증언을 철저히 검토하고, 빈 무덤이나 부활한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여러 가설들을 과학적으로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그의 결론은 부활이 사실이다는 것입니다. 변호사들은 증거가 빈약한 사건을 맡았을 때는 길게 진술하지만 증거가 아주 분명할 때는 단지 증인만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법정에서든 최고의 증거는 '직접 증거'입니다.

부활에 대한 증인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막달라 마리아 (요 20:15),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매, 요한나 (마 28:9), 베드로 (마 16:7, 눅 24:34),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글로바 (눅 24:29-31), 도마를 제외한 제자들 (눅 24:-36-39),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요 20:25)

, 갈릴리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요 21:2), 예수의 형제 야고보 (갈 1:18), 감람산에서 열한 제자에게 (행 1:9) 오백 명에게 (고전 15:6) 바울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본 사람들 가운데 삼사 백명의 사람들은 바울 때도 여전히 살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조작이었다면 그들이 그토록 놀라운 변화를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설교의 골자와 바탕은 바로 부활인데 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믿게 된 수천의 사람들, 그리고 "이 도에 복종하게"(행 6:7) 된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여종의 질문 앞에서 자기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그렇게 변화된 것은 부활 말고는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육친 동생이며 결코 믿지 않고 미쳤다고하며 동정적이지 않았던 야고보가 몇 년 사이에 변화한 것은 부활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핍박자 바울의 변화, 순교자 스데반을 보면 부활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으면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신 요한복음에 기록된 첫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시자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4 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부활주일 이 말씀 붙들고 부활의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1.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참된 평강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신 말씀입니다. 주일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 문을 닫고 모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잡히실 때 간신히 피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함께 모였습니다. 유대인들이 군대를 보내 자신을 체포할까바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참람죄와 로마에 대한 반역죄를 지은 잔당으로 체포될까바 숨죽이고 숨어 있었습니다. 문이 닫혀있다는 말은 아주 굳게 닫혀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 안쪽에서 막대기를 가로 질러 끼움으로 문을 굳게 닫은 것입니다. 문을 닫아 놓았는데 예수님이 들어왔습니다. 제자들은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찾아와 첫 번째 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21절에도 다시 한 번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평강(에이레네)”는 ‘평화’, ‘화평’, ‘복지’의 뜻으로 히브리어 살롬에 상응하는 말입니다. 이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인사말입니다. 유대인들은 길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해어질 때, 이웃을 방문할 때 등 일상생활에서 살롬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첫 번째 주신 평강은 일상적인 인사를 넘어선 것입니다. 한 번 평강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다시 평강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상적인 인사같았다면 처음 만났을 때 한 번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평강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말씀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이 평강은 예수님 탄생 시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14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주시는 평안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하고 인간과 인간이 원수가 아니라 친구로 화해하고 누리는 평강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평안입니다. 이 평강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영원한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사도들이 성령이 임한 결과 환난과 핍박과 죽음의 공포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평안입니다(행13:4-12).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은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습니다.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못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시고 기뻐하였습니다.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모든 두려움이 부질없이 된 것입니다. 너희에게 오리라고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이 성취된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진정한 평안을 누리고 기쁨으로 회복되는 부활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질병 때문에, 취업 때문에, 전쟁의 염려로, 실패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의 불행으로 걱정과 두려움, 근심이 있습니까?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평화가 깨지고 불편한 관계 속에 사는 성도님들 있습니까? 용서하고 용서받지 못하여 만나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불편한 관계 때문에 교회 다니는 것이 즐거움이 없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이 모든 문제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의 아픔을 지고 돌아가신 주님께서,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수 없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내게 주노라 사랑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수 없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을 내게 주노라 기쁨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수 없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을 내게 주노라”

 

2.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부활을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하신 말씀입니다.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로 성취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명과 임무를 온전히 성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 이 일을 온전히 이루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 복음 전파를 위해 불렀고 그들을 훈련한 것도 복음 전파를 위해 훈련시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니까 다 도망갔고 사명을 다 잃어버리고 죽음이 두려워 문을 닫고 떨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은 그 사명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원씽(THE ONE THING, 게리 켈러·제이 파파산 지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상이 복잡한데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것은 단순함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반전을 불러오는 것은 단순함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단 하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모든 일을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탁월한 성과는 초점(focus)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을 파고들게 되면 단 하나만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활쏘는 선수에게는 표적(Target)이 분명해야 합니다. 공차는 축구 선수에게 골문이 분명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의 성공도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의 증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한 여종의 질문 앞에서 자기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오직 부활을 전하면서 순교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 되었다"(행 2:32)라고 설교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것이 없다면, 너희의 믿음은 헛된 것이다'(고전 15:17)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왜 제자들을 불러 훈련시켰습니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 사람 낚는 어부로 불렀습니다. 부활 후 부탁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우리가 이 시대에 회복해야 할 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요즈음 극도의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생명의 고귀함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애인이 애인을 죽이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낙태로 죽어가는 생명은 34만 건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너무 생명을 경시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폭력으로 짓밟습니다. 우리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몸값에 대하여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회복해야 할 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것입니다.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Why not the best?)"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 되자마자 내놓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bestseller)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십 년 전에 자기가 섬기는 교회의 전도 집회에 10년 동안 참가했었다고 합니다. 매년마다 전도 집회가 열렸는데 매년마다 14가정을 책임지고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답니다. 10년 동안 140가정에게 복음을 증거한 겁니다. 1년에 한 명, 아니 평생 동안 한 명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1년에 14가정, 10년에 140가정에 복음을 전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열정입니까?

그래서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나는 10년 동안 140가정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예수 믿은 사람도 있다."라고 하는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1966년도에 조지아 주지사로 출마하여 선거운동을 하였는데, 3개월 동안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지사에 당선됐는데, 그의 마음에는 부끄러운 가책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는 3개월에 30만 명을 만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14년 동안 겨우 140가정에게 복음을 전하였다니... 이것은 보통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카터 전 대통령이 신앙 양심의 가책이었답니다. 꿀벌은 한 스푼의 꿀을 따기 위해 6만 송이의 꽃을 60번씩, 곧 36만 번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생명 구원 사역을 하면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라고 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으며 생명을 구원하는 사역에 지속적으로 집중하였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찾아와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지 말아야합니다.

 

3.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통하여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사명을 이루라고 말씀하시면서 네 번째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성령을 받으라”입니다. 숨을 내 쉬다라는 말은 성령을 수여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 장면은 마치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생기를 불어 넣어 인간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니까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고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됩니다. 그들이 살아나서 일어나 지극히 큰 군대를 이룹니다. 오늘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증거하야 할 사명을 주시면서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 새롭게 창조된 사도들은 영적 세계에 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마28:16-20)

성경에는 하나님이 주신 큰 계명이 3개가 나옵니다. 첫째가 문화명령입니다. 둘째가 사랑명령입니다(대명령). 셋째가 제자를 삼으라는 전도명령입니다(대위명령). 문화명령은 첫 번째 인간을 처음 창조하시고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입니다. 땅을 정복하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입니다. 모든 만물을 만들어 놓고 인간을 대리 통치자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라는 문화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였습니다. 타락한 인간 세계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로 만들려면 결국 인간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만들려면 인간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 마음에 하나님이 왕이 되게 하고 가정에 하나님이 왕이 되게 하고, 교회에 하나님이 왕이 되게하고, 기업에 국가에 하나님이 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사람들 세상에 가득찰 때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 삼는 것이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제자를 부를 때도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부탁한 말씀도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유언의 말씀도 복음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말이나 지혜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누구도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지 못합니다.(고전 12:3) 성령을 받지 않고는 누구도 예수님을 마음으로 구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 22:43)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받으라(라베테)는 것은 영접하라는 말입니다. 수단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성령님을 모신다는 말입니다. 사명을 이루는 원천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화평, 사랑과 희락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오래참음, 절제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내 인격이 변화되어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내 더러운 삶 때문에 전도의 문이 막히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냄새가 아니라 향기로 존재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향기로운 꽃은 벌을 부릅니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 자랑하지 못하고 자신이 다니는 교회 자랑하지 못하고 자신이 섬기는 목회자 자랑하지 못하면 누가 그런 신자를 보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겠습니까? 늘 시기와 불평, 원망과 분노에 사로잡혀있다면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내 입에서 남을 비판하고 험담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이 살아질 때까지 금식하면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성령의 사역이 나타납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는"(슥 4:6) 성령의 사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인간적 지혜나 말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이 일을 감당해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마가 다락방에 모여 120명이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을 받으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성령을 통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옥문이 열립니다. 3천명씩 5천명씩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자기의 소유를 자신 것이라고 하지 않고 논밭을 내어 놓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삽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방언이 터집니다. 성령을 통한 신유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40년 동안 일어나지 못한 앉은뱅이가 일어납니다.

성령 충만을 통해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성령 충만을 통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니까 믿는 사람들이 날로 날로 많아졌습니다. 하루에 삼천이 회개하고 돌아왔고(행2:41), 남자만 오천 명이(행4:4). 심히 많은 사람이(행6:7), 수다한 사람들이(행11:21), 수만 명이(행21:20) 돌아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부활절에 우리도 예수님이 주신 말씀 붙들고 성령 충만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데 쓰임받는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 가정을 복음화시키고, 직장을, 지역사회를, 열방으로 복음화시키는 데 쓰임받아야 하겠습니다.

 

4.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사죄의 은혜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네 번째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23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막2:5,10) 이 말씀은 제자들이 죄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와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결과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거부하면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죄사함 받는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단번에 완전한 희생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받고 용서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죄가 지배하지 못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도 회개하고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18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이 진정 사죄를 받고 천국 생활을 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에 전쟁이 있고, 사는 것이 힘든 것은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회개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잘못을 통회하고, 잘못된 길에서 완전히 돌이키는 것입니다. 알콜 중독에서, 놀음 중독에서, 비판하는 말 중독에서, 바람피우는 성중독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통회자복하며 돌아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험담하는 사람이 그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인데 그 미워하는 마음 고치기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관성의 원리' 때문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에 상반되는 증거나 자료를 제시할 때 그것을 철저히 거부해 버립니다. 그들이 말하는 증거나 자료는 단지 하나의 선입관이나 의미 없는 세부 사항 정도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기본 신념을 확증해 주는 정보를 찾습니다. 한 번 다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한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한 의견을 바꾸려하지 않습니다. 초두효과 때문에 첫 인상에 대한 평가를 나중에는 잘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길을 돌이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요일 예배 때 성경 한권 한권씩을 예배시간 때마다 배우면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미 소선지서를 다 마쳤고 지난 주에 역대하를 보았습니다. 그것에 보면 선민 유다가 바벨론에게 왜 망했는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왕이 시드기야인데 왜 망했는지 역대하 36장 12절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아무리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도 그 앞에 겸손하지 않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목이 곧고 완악하고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제사장도 힘있는 우두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끼사 부지런히 사신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16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비웃고, 멸시하고, 욕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회복할 수 없도록 바벨론 포로로 잡아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이럴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교인 가운데서도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마치 바로의 마음 같습니다. 우리를 회개하고 용서받고 용서해 주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특권입니다. 아무리 복음을 거부한다 해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화해와 용서 평화가 가득찬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주신 4가지 말씀을 우리는 붙들고 부활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참된 평강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부활을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셋째,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통하여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하여야 하겠습니다.

넷째,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사죄의 은혜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6.3.27.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