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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사다리(3) 희망 사다리 오르기(시편 20:1-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137 추천수:2 112.168.96.71
2016-02-28 11:35:41

 

희망의 사다리(3) 희망 사다리 오르기

시편 20:1-9

 

이솝 우화에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굶주린 여우가 어느 날, 많은 포도송이가 잘 익어 매달려 있는 포도밭으로 몰래 숨어들었갔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포도송이는 너무 높아서 여우에게는 닿기 어려울 만큼 높은 시렁 위에 매어져 있었습니다. 여우는 어떻게든 따먹으려고 훌쩍 뛰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훌쩍 뛰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헛일이었습니다. 마침내 여우는 완전히 지쳐 "저 포도는 분명히 익지도 않았을 거야. 신포도가 분명해..."하고 떠나 버렸습니다.

여우는 핑계를 대고 가 버렸지만 사람은 키가 작다고 포도를 따먹지 못할까요? 맛있는 사과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과나무가 큰 나무여서 서서 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따면 됩니다. 우리도 더 좋은 미래를 따기 위해 희망을 가지고 매일 매일 사다리를 올라가는 삶을 삽니다. 어떻게 사다리를 오르면 사과를 따고, 꿈을 이루고, 희망을 거둘 수 있을까요?.

 

1. 희망의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하려면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꿈을 가지고 몇 번 시도해 보다 안 되면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어”라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을 이루려면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첫째는 시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속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희망을 이루는데 방해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실천하지 못하면 희망을 이룰 수 없고, 나쁜 습관도 바꿀 수 없고 성공도 성취도 이룰 수 없습니다. 먼저 희망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망은 시작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은 이스라엘 다윗 왕이 기록한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는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출정시입니다. 왕과 그의 백성들이 전쟁터에 나아가기에 앞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 왕과 온 백성이 함께 낭송하였기 때문에 이 시를 출정시라고 합니다. 1절을 보세요. 환난날이라고 말합니다. 환난(차라)라는 말은 ‘고통, 역경, 대적’ 등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적의 공격을 받고 위기에 빠진 상태를 말합니다. 7절에 보면 ‘말, 병거’라는 말이 나옵니다.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암몬과 아람나라 연합군과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삼하10장 12:26-31). 전쟁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그 전쟁에 패하면 아들들이 죽고 딸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밀과 보리와 양들을 다 빼앗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위기를 만났을 때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절망하고 도망간 것이 아닙니다. 절망과 낙심으로 백성을 돌보는 일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이 절박하고 위험한 순간에 다윗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성경을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첫 번째로 한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마음에 소원을 가지는 것입니다. 둘째 전쟁을 이기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소원과 계획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5절을 보세요. 승리를 위한 것입니다. 승전가를 부르기 위한 것입니다. 승리의 깃발을 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승리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희망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입니다. 어떤 혹독한 상황이라도 절망하지 않고 더 좋아질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희망을 이루기 위해 희망의 사다리에 오르려면 먼저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가능성을 믿고 소원과 계획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소원과 계획을 가지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사다리에 오를 때 우선 '시작하는' 단계에서 '시작하겠다','해보겠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결심이 중요합니다.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많든 적든 의욕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 어린이들, 학생들 새학기가 시작됩니다.

새해가 되면 희망을 가지고 결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스크랜턴 대학교에서 연구했는데 매년 새해를 맞으며 40-45퍼센트 정도가 새로운 결심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년초가 되면 0시 예배를 드리고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매달 첫날을 새벽예배를 드리고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매일 새벽 예배를 드리며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이제 새학기가 되었습니다. 55-60퍼센트는 결심도 하지 않고 그럭저럭 새 학기를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희망을 가지고 결심한 사람과 결심하지 않은 사람과 차이가 있을까요?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결심을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10배 정도 더 원하는 희망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새롭게 행동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공식적으로 맹세한 사람 159명과 변화를 원하지만 공식적으로 맹세는 하지 않은 사람 123명을 6개월간 관찰했답니다. 그 결과 맹세한 사람의 46퍼센트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바꾸었으나 맹세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4퍼센트만이 행동을 바꿀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희망과 소원을 가지고 계획을 적어두면 어떤 효과가 있겠습니까?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는 1953년 '목표를 적어두었을 때 나타나는 효과'에 대한 연구를 하였답니다. 졸업생들에게 20년 후의 목표에 대해 자세히 정리해 제출하라고 했답니다. 단,이 과제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 알렸답니다. 학생 중 97퍼센트는 과제를 무시하거나 대중 써서 제출했답니다. 성의 있게 과제를 제출한 학생은 3퍼센트에 그쳤다고 합니다. 20년이 지난 1973년,1953년 졸업생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추적 조사하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답니다. 20년 후의 인 생 목표를 제대로 써서 제출한 3퍼센트의 졸업생들이 나머지 97퍼센트의 졸업생을 전부 합친 것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답니다.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목표를 구체적으로 적어놓고 출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연구결과입니다.

희망을 갖되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구체적인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SMART 목표 설정 방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목표는 specific(구체적인), Measurable(측정 가능한), Attainable(달성할 수 있는), Realizable(실현 가능한), Tangible(명확한) 목표를 문서로 작성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면에서 구체적인 계획이 무엇입니까? "올해는 성경을 적어도 한번을 읽어야겠다. 주일 예배만 참석했는데 주일 찬양 예배도 참석해야 하겠다. 일주일에 한 번 기도하였는데 이제 식사할 때도 기도하여야겠다. 한 달에 한 번도 이웃을 위해 봉사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한 달에 한 번은 불우한 이웃을 향해 봉사해야 겠다. 일 년에 한 명도 전도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일 년에 한 명 전도하여야겠다. 올해는 적어도 성경 공부반에 들어가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성경 공부를 해야겠다. 등등" 신앙의 구체적인 소원을 가지십시오.

인격성장, 건강을 위해서도 구체적인 희망을 가지십시오. “건강하기 위해서 하루에 30분은 운동을 해야겠다. 건강하기 위해 올해는 건강을 해치는 것은 끊어야하겠다. 건강을 해치는 습관은 고쳐야하겠다” 등등의 구체적인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는 영어 성적을 90점까지는 올려야 하겠다.” 사업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는 매출을 200% 증가해야겠다. 올해는 사업을 더욱 번창시켜 십일조를 배를 더해야 하겠다.” 가정을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구체적인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모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희망을 가졌습니다. 모세 나이 80살입니다. 경노석에 앉을 나이입니다. 직업이 목자입니다. 신분이 도망자입니다. 지명 수배자입니다. 거처가 수도가 아니라 광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하리라(출3:10)"라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희망을 붙들고 민족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키는 민족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창12:1-3)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이 75세입니다. 아버지는 우상 장사입니다. 그를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희망과 꿈을 주셨습니다. 그는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바울(행9:15)은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라고 했습니다. 희망의 사다리를 올라 위대한 일들을 이룬 신앙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요셉, 다윗, 모세, 아브라함, 바울 모두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희망의 사다리를 올라갔습니다. 링컨, 헬렌켈러. 칼빈, 루터, 처칠, 워싱턴 모두 다 좋은 환경 좋은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았고, 다윗은 초라한 목동으로, 모세는 살인자로, 아브라함은 우상 장사의 아들로, 헬렌켈러는 불구자로, 아브라함 링컨은 초등 학교도 못 갈 정도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칼빈은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조롱 받을 정도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그 힘겨운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6장 11절에서는 "우리는 여러분이 이와같이 열심으로 희망에 대한 확신을 끝까지 간직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두울수록 별은 더 빛나는 것입니다. 사막일수록 방향을 분명하고 가야합니다. 어두울수록 멀리 있는 별을 보고 가야합니다. 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2. 희망의 사다리에 올라 희망을 이루려면 핑계대지 말고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포도를 따려고 시도하다 따지 못하니까 “포도가 시어서, 포도가 안 익어서”라고 말하며 포도 따기를 그만둔 여우처럼 핑계를 대면 결코 희망의 사다리를 올라 희망을 딸 수 없습니다.

희망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세 가지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희망을 가지고 결심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 지속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희망을 이루는데 방해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핑계대지 말고 반복하여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 전쟁에 나가는 다윗을 보십시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소원, 계획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첫째 2절을 보십시오. 성소에 들어간 것입니다. 시온에 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성막을 지었는데 그곳에 들어간 것입니다. 희망을 이룰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소가 중요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을 공부를 잘하려면 오락실이 아니라 학교에 가야 합니다. 신앙생활 잘하려면 골프장보다는 교회를 자주 오야 합니다. 부자가 되려면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소득이 있는 곳에 가야 합니다.

둘째 다윗은 희망의 사다리에 올라 무엇을 합니까? 성소에 가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닙니다. 3절을 보십시오. 소제를 드리고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셋째 5절을 보십시오.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렇게 하는 것을 알고 백성들이 왕을 위해 하나님이 왕을 성소에서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붙들어 주시고, 예배를 받아 주시고, 왕의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내용이 1절부터 5절까지 소개되어 있습니다.

원리로 말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핑계대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승리를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희망을 이루기 위해 새롭게 결심을 하면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방해 요소와 핑계거리가 생긴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사과나무를 향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계단에서, 둘째 계단에서 셋째 계단에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시험들고 포기하기 때문에 희망의 열매를 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해 결심한 것을 지킬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198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턴 대학교 연구팀이 213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일주일 만에 1/4, 1개월 후 절반이 실패했답니다. 6개월까지 지킨 사람은 40%였답니다. 영국의 하트퍼드셔 대학교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 박사 팀이 3천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는 새해 결심을 지킨 사람은 12%에 불과했답니다. 왜 희망을 이루지 못합니까? 많은 요소가 있지만 자꾸 핑계를 댑니다. 시작하는데도 핑계, 지속하는데도 핑계, 나쁜 것을 버리는데도 핑계를 댑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일어나지 못하면 어머니가 일찍 깨워주지 않았다고 핑계를 댑니다. 실력을 향상시켜야하겠다고 결심하고 학원을 보내주지 않아서라고 핑계를 댑니다. 남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아들이 엄마에게 성적표를 내밀었습니다. 성적표는 온통 양, 가 투성이였습니다. 엄마가 옆집 아이 이야기를 하며 아들을 혼냈습니다. 그러자 철수가 말했답니다. "엄마, 걔는 엄마, 아빠가 머리가 좋잖아요." 사람은 핑계에서 천재적 수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여당은 야당 탓을, 야당은 여당 탓을, 대통령은 국회의원 탓을, 국회의원은 대통령 탓을 합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나 헌신, 전도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목사님 핑계, 장로님 핑계, 교인 핑계, 환경 핑계, 남 탓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사탄의 전략이고 이것에 넘어가면 희망의 열매를 맛볼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자기 속임, 자기변명에 불과합니다. 희망의 사다리에 올라 희망을 이루려면 핑계를, 남 탓을 무덤에 묻어버려야 합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핑계대기 선수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간이 핑계대기 명수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와 탓, 하나님 탓, 뱀 탓하는 모습을 봅니다. 출애굽할 때 홍해 앞에서,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물이 쓰다고, 음식이 맛이 없다고 얼마나 원망하며 모세를 탓합니까? 아내 이세벨의 치마폭에 놀아나는 아합왕은 이스라엘에 3년이 넘도록 가뭄과 기근이 온 것은 엘리야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울은 선지자 사무엘 탓으로,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은 백성 탓으로, 예수님을 처형한 빌라도는 유대인들 탓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은폐하며 핑계거리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전혀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모두가 죽을 위기에 처한 전쟁이 일어났는데 원망하며 다윗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구절구절 마다 반복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이루기 위해서는 반복과 지속이 필수적입니다. 좋은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무는 하루아침에 맛있는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하루아침에 피지 않습니다.

톨스토이는 열 살이 되기 전에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서 작은어머니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19세부터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8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는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최고 부자이자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뽑힌 손정의는 하루 5분 3개의 낱말 카드를 뽑아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교를 다니는데 스스로 학비를 벌기 위해 발명 특허를 따내기로 결심하고 매일 5분씩 투자해 1년 동안 무려 250가지의 발명품을 개발했답니다.

모차르트는 천재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심리학자인 마이클 호위는 <천재를 말하다>에서 숙달된 작곡가의 기준에서 볼 때 모차르트의 초기 작품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가장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아버지가 작곡했을 거라고 봅니다. 어린 시절에 작곡한 협주곡, 특히 초창기 7편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재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의 명작은 그가 작곡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20세 이후의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음악평론가 인 헤럴드 쇤베르크는 그의 위대한 작품은 그가 작곡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나왔다고 합니다. 존 헤이스 교수는 작곡가의 천재성을 알아보기 위해 고전음악 500곡을 연구했는데 이중 작곡가가 작곡을 시작한 지 10년 안에 만든 곡은 겨우 3곡뿐이었다고 합니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안데르스 에릭손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베를린 음악아카데미 학생들을 연구했답니다. 그 결과 세계 수준의 솔로 바이올린 연주자가 된 사람들은 20세가 될 때까지 1만 시간을 연습했답니다. 8,000시간을 연습한 사람은 잘한다는 평을 받았고, 4,000시간을 연습한 사람은 음악교사가 되었답니다. 노력하지 않고 정상에 올라간 연주자들은 없었답니다. 1만 시간은 하루에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10년을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영어 공부를 잘하려면 영어 공부에 하루에 3시간 10년은 투자해야 합니다. 기도를 무엇을 이루려고 할 때도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반복하여 몸에 배일 때까지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합니다.

미 듀크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가 매일하는 행동의 40%가 의사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습관 때문이라고 합니다. <습관의 힘>의 저자 잭 D. 핫지는 "일상적인 행동의 90%는 습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행동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이 습관이다. 모든 사람들은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 대학교의 제인 위들 교수팀은 '같은 행동을 얼마나 반복해야 생각이나 의지 없이도 그 행동에 대해 자동적으로 반사하는지'에 대한 실험을 했답니다. 그들은 식사 후 과일 한 조각 먹기, 석식 전 5분간 뛰기 등 건강 관련 행동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 실천하게 했답니다. 실험 결과 아침 식사 후 물 한 잔을 마시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대략 20일 후에 습관이 형성되었고,점심 식사 때 과일 한 쪽을 먹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그 행동이 습관적으로 이어지기까지 최소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모닝커피를 마신 후에 윗몸일으키기 50번 하기’를 결심한 참가자는 84일이 지나도 습관이 되지 않았으며,‘아침 식사 후에 10분 걷기’를 결심한 참가자는 50일 후에 습관화되었다고 합니다. 습관으로 정착하기까지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답니다. 첫 고비는 3일째였고, 두 번째 고비는 21일째였답니다. 21일은 새로운 행동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고 66일에 이르면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탄에게 유혹되어 자꾸 핑계 대며 희망의 열매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핑계를 원치 않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 9:6)”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고후 9:10)”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희망의 사다리에 올라 희망을 이루려면 핑계대지 말고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예배로 심고, 헌신으로 심고, 기도로 심고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3. 희망의 사다리를 끝까지 오르려면 불안과 불신, 교만을 제거하고 담대함과 확신과 하나님 자랑을 해야 합니다.

희망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세 가지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희망을 가지고 결심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 지속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희망을 이루는데 방해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희망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을 방해하는 세 가지를 제거해야 합니다.

첫째는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두려움을 제거하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전쟁터에 나가기 교회에 나가고 예배드리고 기도한 다윗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직 전쟁에 나가지도 안했습니다. 아직 싸워보지도 안했습니다. 적은 연합군입니다. 그런데 기름부음 받은 자신을 구원하시는 줄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사다리를 오를 때 두려움을 제거해야 합니다. 두려워하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사다리 밑에서 포기해 버립니다. 도전의식이 생기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룰 것이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이미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성공경험, 성취 경험을 수없이 맛본 사람입니다. 수가 많다고, 능력이 없다고, 환경이 좋지 않다고, 부족하다고 두려워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키로나 무기로나 힘으로나 경험으로나 당할 수 없는 골리앗 앞에서 물맷와 돌 다섯 개를 가지고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라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한 사람입니다. 패배의식을 제거해야 합니다. 불안을 제거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제거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희망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인 "황소의 머리"도 자전거의 좌석과 손잡이로 만든 것입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을 지라도 피카소의 손에서는 가치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아무 쓸모 없는 돌일지라도 미켈란젤로에게 가면 걸작「모세」와 같은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정치가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중학교때 3년이나 진급을 못했습니다. 영어에 늘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그는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실력이 없어 포병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어릴 적에는 "열등아"였습니다. 초등 학교를 3개월 다니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전쟁와 평화'의 저자인 톨스토이는 대학에서 계속 낙제점수를 받아 교수들은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산업혁명의 계기를 만든 J 와트도 "얼간이"로 낙인 찍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했습니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 근대 물리학을 개척한 영국의 대과학자 뉴턴도 초등 학교시절에는 "낙제생"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초등학교 시절에는 성적이 반에서 최하위였고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된다해서 등교를 금지시켰을 정도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사사 에훗는 왼손잡이였습니다. 드보라는 당시 물건처럼 취급당하는 여자였습니다.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습니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붙들림 받아 하나님의 사용을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승리케 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에 대하여 불신을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그에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백성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오늘날도 내 힘으로 안될 때 낙심하지 말고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 주십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하나님 말씀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

 

셋째는 자기 자랑을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7절에 보십시오. 병거를 의지하고 이긴 싸움도 아니고 말을 의지하고 이긴 싸움도 아니고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고 이긴 싸움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만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희망의 사다리를 마지막 오를 때 우리가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정상에 오를 때 자기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인가 이룰 때 자기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자랑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교만해 지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되고, 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교만하다 사울이 희망의 정점에 이르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질병에서 기적으로 치료받은 히스기야가 교만하다 결국 쓰러졌습니다. 바로(출5:2), 웃시야(대하26:16), 하만(에3:5), 느브갓네살(단4:30), 벨사살(단5:23), 헤롯 등이 결국 무엇인가 세상에서 이루었지만 교만하여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신세대의 특징을 PANTS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이며(personal), 흥미본위로 살며(amusement), 자연스러움을 좋아하고(natural), 성별구분이 모호하며(trans-border), 극단적 자기사랑으로 살기를 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self-loving). 자기 자랑이 덕이 된 세상입니다.

오늘날 스타를 숭배하고 자기 PR이 생존의 필수가 된 시대라고 하지만 교만이 미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교만은 단순하게 자기를 들어내거나 자신을 높이는 것보다 자신의 상태를 사실 이상으로 확대 평가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요, 남보다 돋보이고 싶은 감정입니다. 더 나아가 교만은 불합리한 자기 이해, 과도한 자기만족, 지칠 줄 모르는 자아도취로 일종의 자기 숭배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것 중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다'라는 표현했습니다. 교만은 이 세상의 도처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질투, 분노, 탐심, 탐식, 게으름, 정욕, 갈등, 파괴, 단절, 적대 등의 자식을 낳아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자존심 상해도 못견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다 좋은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지옥보낼 사람 지옥에 보냅니다. 내가 조금 수치를 당해도 자존심이 상해도 하나님 자랑하면 됩니다. 예수님 십자가 드러나면 됩니다.

 

1. 희망의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하려면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2. 희망의 사다리에 올라 희망을 이루려면 핑계대지 말고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3. 희망의 사다리를 끝까지 오르려면 불안과 불신, 교만을 제거하고 담대함과 확신과 하나님 자랑을 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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