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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 지크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79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6 10:07:11
당연히 지크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인기 없는 아이였다. 우리는 그 애를 ‘멍청이 지크’라고 불렀다. 그 애는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옷은 분명 누가 입던 것으로 여기저기 해져 있었고, 머리는 까치집 마냥 덥수룩하게 삐쳐 있었으며, 손은 항상 더러웠다. 그 애는 ‘딕과 제인’이라는 책을 아직 못 끝낸 아이들이 가는 특별 독서반에 있었다. 지크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지크가 스쿨버스를 타는 지점은 농장 지역으로 시골 길 옆으로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다. 그날 아침 지크는 비틀거리며 버스 통로를 걸어오다가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처 내가 앉으라고 하기도 전이었다. “야, 수지야. 내 고무총 보여 줄까?” 그 애가 말했다. 나는 의자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면서 애써 읽던 책에만 집중했다. “내가 고독한 방랑자의 원자폭탄 반지를 보여 줬던가?” 지크는 손가락을 펴서 변색된 작은 놋쇠 반지를 보여 주었다. 위에는 은으로 된 작은 공이 달려 있었다. “이거 킥스 상자에 들어 있던 거야. 아래를 잡아당기면 원자 폭탄이 폭발하는 것처럼 불빛이 번쩍거려.” 1947년 당시만 해도 이건 대단한 거였다. 지크가 그 반지를 어찌나 열심히 자랑해 댔던지 나는 그 반지에 관한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 반지를 얼마나 많이 끼었으면 손가락이 다 시퍼레질 지경이었다. 지크는 내가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자기의 보물 1호를 내밀어 보이더니, 불이 번쩍 들어오도록 시범을 보였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난 “그런 쓸데없는 반지 같은 건 관심 없어”라고 말하고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멍청이 지크와는 전혀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학교에서 우리는 종이 눈꽃과 리본 등으로 교실을 장식하고 비밀 산타 파티를 계획했다. 선생님은 작은 종이 쪽지에 하나씩 우리 모두의 이름을 적어 신발상자에 넣었다. 이름이 쓰인 쪽지를 뽑은 사람에게 자신의 선물을 주는 거였다. 드디어 선생님이 내 책상 앞에 섰다. 나는 눈을 감고 상자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하나님 제발 좋은 애를 뽑게 해 주세요.’ 나는 쪽지를 펴고는 빤히 들여다보았다. ‘지크였다! 멍청이 지크!’ 그날 오후 난 씩씩대며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건 불공평했다. 지크라니! 지크는 지저분한 옷을 입고, 다 부러진 크레용에 고무총이나 갖고 노는 아이였다. 그런 애한테 줄 선물이 뭐가 있겠는가 말이다. ‘뭔가’를 주긴 주어야 했다. 그 때 갑자기 그 애가 만든 꼬질꼬질한 산타가 생각났다. 집에서 가져왔던 크레용도. 그 애한테 필요한 건 새 크레용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크레용 상자를 하나 집어 계산대에서 25센트를 지불하고는 해야 할 일을 다 끝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 왔다. 파티 당일, 나는 교실의 나무 밑에 쌓인 선물 더미 위에 내가 준비한 선물을 갖다 놓았다. 지크는 평소처럼 맨 꼴찌로 쿵쾅거리면서 들어왔다. 그 애가 선물을 맘에 들어할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안 좋아할지도 몰라. 장담하건대, 나한테 고맙다는 말을 할 정도의 예의도 없을 거야. 도우미 어머니들이 선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지크는 선물을 받더니 예쁜 포장지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부욱 뜯어 버렸다. 그리곤 크레용을 모두 쏟아 놓더니 날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색칠할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럼 그렇지, 고맙다는 말은 꿈도 못 꿀 줄 알았어. 도대체 선물이 뭔지도 모르니 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선물들은 이내 다 임자에게 돌아갔다. 내 주변에 있는 아이들은 색칠 공부책, 장난감 총, 인형 등을 보여 주며 자랑했다. 나는 내 책상 위만 내려다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선물을 받았다. 나의 비밀 산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애는 나한테 아무것도 주 질 않은 것이었다. 너무 속이 상했다. 그 때 선생님이 팔로 나를 감싸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잔, 이게 나무 뒤쪽에 있더구나. 다른 선물을 다 나눠주고 나서야 이 선물을 발견했단다.” 줄친 공책 종이로 싸고 테이프로 둘둘 감은 둥그런 물건을 선생님이 내밀었다. 종이를 씹어서 크게 뭉쳐 놓은 것 같았다. 그 맨 위에 내 이름이 철자도 틀린 채로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여 있었다. 그리고 ‘지크가’라고 적혀 있었다. 멍청이 지크? 그 애가 내 비밀 산타였다고? 나는 물건을 받아들고 천천히 종이를 뜯고 선물을 펴 보았다. 그 애가 줄 수 있는 물건은 하나 밖에 없었다. 그 애가 준 원자폭탄 반지가 내 책상 위로 떨어지면 시끄럽게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났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지크를 쳐다 보았다. 부끄러움과 함께 이상하게도 기쁨이 뒤범벅되어 마음에 가득 차 올랐다. 그 애가 나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그 해에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그 반지가 가장 멋진 선물이 될 거라는 걸 지크가 과연 알았을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교훈을 가르쳐 준 선물이라는 걸

-가이드 포스트 2004.12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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