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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슴을 여는 자가 진정한 승자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874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6 09:52:13
먼저 가슴을 여는 자가 진정한 승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고 나는 그 자리에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뜨거운 물을 한 사발이나 마셨는데도 떨리는 건 멈추지 않았다. 우리 집안에서 나와 같은 시기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딱 두 명 있는데, 한 분은 우리 어머니요, 또 한 분은 우리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지만 오랜 병고로 시달린 탓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였던 터여서 그리 충격이 크진 않았었다. 만 3년마다 중풍으로 쓰러지시기를 삼 세 번이나 하셨고 의사들도 번번이 묘 자리를 잡으라 하였으니 웬만한 사람이면 진작에 각오를 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겐 참으로 묘한 승부욕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만은 절대로 병고로 돌아가시게 하지 않겠다는 터무니없이 분수 모르는 작심을 하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내 오기는 아버지를 혼자 걷게 만들었고 근자에는 혼자 지방 여행도 하시게 되었다. 처음 서울로 모실 무렵만 해도 대소변을 받아냈는데, 부축해야 겨우 움직이던 분이 스스로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었고 나중에는 지팡이 없이 걷게 되었으니 내 터무니 없는 오기가 승리한 셈이었다. 그 날도 시골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마고 집 떠난 분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병원을 세 번씩이나 옮겨 다니는 고통 끝에 한 많은 목숨줄을 놓고야 말았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 시신을 모시러 내려가면서 아버지를 치고 도주하다 잡힌 그 인간을 그냥 두고보자는 억하심정을 추스리지 못했다. 나이 상관없이 귀싸대기부터 올려붙일 모진 마음뿐이었다. 몇 해 동안 안해본 짓 없이 정성으로 건강을 회복시키느라 삼천리가 멀다 않고 나대며 현대의학에서 사형선고를 내린 양반임에도 의연하게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에 차 있었던 내 가슴은 분노로 이글거릴 수밖에 없었다. 오전 9시 반. 현장 검증을 하기 위해 경찰서 마당으로 내려서는 가해자는 어젯밤의 내 모양으로 부르르 떨고 있었다. 초췌한 몰골에 밤새 잠 한 숨 못자고 후회하고 통탄하였다는 걸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까지 오죽이나 번민하고 스스로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면 피해자 가족을 만나는 순간 저리 부들부들 떨겠는가. 나는 그 순간, 우리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머니한테 평생을 주변머리 없고 본때 없으며 멋대가리라곤 쇠털만큼도 없는 사람 소리를 들어온 아버지.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를 못하는 아버지. 틀니 해달라는 소리를 못하고 밥맛이 없다며 서너 끼를 굶듯 하다가 자식의 추궁에 겨우 입을 벌려 보이고는 염치가 없어 그랬노라던 아버지. 용돈을 드리며 맛있는 것 좀 사 잡수시라면 고작해야 손주 과자봉지나 사들고 오시던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배우지 못했고 곤궁했으며 이름 없는 촌부로 살았으나 나보다 휠씬 훌륭한 분이었다. 용서할 줄을 아셨으니까. 귀싸대기부터 올려붙이고 말겠다던 나는 가해자의 손을 잡고 한다는 소리가 엉뚱했다. "아저씨도 일진이 나빠 그리 되었고 저도 복이 없어 이리 되었으니 마음 좀 가라앉히시고‥‥ 걱정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서 뭐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설마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튀어 나오게 될 줄이야.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치다 잡힌 범인한테‥‥ 이게 아버지한테 불경죄를 짓는 행위는 아닐까. 가해자는 겨우 소주 한 병을 친구와 나누어 마셨다는데 열두 시간도 더 지난 이 시간까지도 술냄새가 났고 사람 친 줄 모르고 그냥 달린 것이‥‥ 뺑소니를 하려고 그런 건 아니라고 우기고 있는데‥‥ 장례식을 치르고 산소를 단장한 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무조건 용서하기로 작심했고, 경찰에게도 잘 처리해서 가해자에게 큰 죄가 안 되도록 선처해 달라고 얘기를 했노라고 했다. 친구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탈상도 아니한 죄인 주제에 아버지를 죽인 죄인을 그런 식으로 가볍게 용서하는 행위는 보통 불경스런 행실이 아니라고 하였다. 아무리 현대를 살지만 전통적인 유교적 정서도 모르고 제 이름 석 자가 유명하다 하여 의도적으로 큰 사람입네 하는 시늉이 아니냐고 따지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하였다. 괴로운 마음으로 선배를 찾아가 상의를 하였다. "아버님이 뭐라고 하실 것 같은가?" "용서하라고 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럼 자네 뜻대로 하게. 용서는 강자의 논리일세." 그런데 큰일은 대범하게 용서를 하면서 명분도 생각하고 상대의 처지도 이해하는 척하면서 작고 사소한 일에는 어찌 그리 용서하는 일을 주저하고 오기를 품는지를 비로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사소한 일에도 가슴을 닫는 내 용렬함을 느끼게 되었다. 진정으로 인간답기 위해서는 허세가 아닌 가까운 곳부터 용서하고 이해하고 가슴을 여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가셨지만 그분이 내게 남겨준 이 귀한 가르침은 잊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김홍신/낮은 울타리 2004년 6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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