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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볼 수 있을 거예요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42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6 09:49:55
나는 볼 수 있을 거예요

- 릴리 팔머 -

1950년 여름, 남편과 나는 이탈리아 포르토피노의 높은 별장 지대에 살고 있었다. 전망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저 아래 오른쪽으로는 아름다운 반도에 옛 성이 있는 항구가 보였다. 왼쪽으로는 조그마한 파라기 만이 에메랄드 빛으로 펼쳐져 있었는데, 하얀 모래 사장을 따라 삼나무가 죽 심어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이 천국에도 곤란은 있었다. 우리 동네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 당국에서는 그 오솔길 대신에 제대로 된 길을 닦겠다는 우리의 요구를 허용하지 않았다. 좁은 길, 머리 핀 같은 길모퉁이를 오를 수 있는 단 하나의 교통수단은 구식 미군 지이프뿐이었다. 어느 날, 우리보다 더 높은 곳에서 사는 콘테싸 마곳트베쏘지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사촌이 포르토피노에 막 도착했는데 자기네 지이프는 고장이 났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더러 스플랜디도 호텔에 가서 노부인 두 명을 좀 모셔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호텔에 가서 헬렌 켈러를 찾으세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마곳트......” 나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설마, 저 유명한 헬렌 켈러는 아니겠죠?” “왜 아니에요” 그녀의 대답이었다. “저랑 사촌이에요. 여지껏 모르셨어요?” 나는 곧장 차고로 달려가서 지이프에 뛰어 올랐다. 내가 열두살난 소녀였을 때 아버지는 내게 헬렌 켈러의 자서전을 사주셨었다. 그 책에는 눈멀고 귀먹은 헬렌의 선생이 될 숙명을 지닌 듯한 설리반 선생 얘기가 쓰여져 있었다. 설리반 선생은 고집세고 난폭한 헬렌에게 말을 가르침으로써 교양있는 사회인으로 키워내 훌륭한 교사였다. 설리반 선생은 헬렌과 만난 첫주일 내내 무서운 육체적 격돌을 겪어야 했다. 그 격돌은 설리반 선생이 펌프에서 흘러 나오는 물에 헬렌의 손을 갖다대고 다른 손에 ‘물’이라고 쓴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말의 신비함을 깨달은 눈먼 소녀는 꼼짝 못했다는 것이다. 이 축복받은 순간의 서술은 어린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나는 호텔에 들어갔다. 그 때 70대였던 헬렌켈러는 여윈 몸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은 파랬고 얼굴엔 수줍은 미소가 흘렀다. “안녕하세요” 헬렌켈러는 천천히 말했다. 지이프 뒷자석에 짐을 싣고 두 노부인을 모시고 산에 올랐다. 뚜껑이 없는 지프였으므로 마땅히 잡을 만한 것도 없었다. “켈러 부인, 이제부터 가파른 언덕으로 오릅니다. 앞 유리 창 닦개 옆에 붙어있는 쇠붙이를 꽉 잡으실 수 있겠어요?” 헬렌 켈러는 꼼짝 않고 꼿꼿이 앉아 있었다. 뒷 좌석의 톰슨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헬렌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려면 처음엔 누구나 어렵지요” 톰슨은 수화로 전달했다. “염려마세요” 헬렌이 웃으며 말했다. “끄떡없이 앉아 있을 테이니까 두고 보세요” 나는 그녀의 손을 창 앞 쇠붙이에 갖다 대 주었다. “오우케이” 헬렌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이프가 덜컹하니 톰슨이 의자에서 떨어졌다. 지이프가 부르릉대며 올라가는 동안 톰슨은 풍뎅이처럼 비틀거리며 쩔쩔맸다. 그동안 내 지이프에 여러 손님을 태웟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좌석이 불편하다고 불평했었다. 헬렌은 위험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최초의 손님이었다. 그녀는 지이프가 격렬하게 튀어오르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내 어깨로 와서 부딪칠 때마다 그녀는 웃곤 하였으며 나중에는 노래까지 불렀다. “참 재미있는데요” 그녀는 기쁜 듯이 말했다. “이렇게 신나는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두 노부인이 집에 도착하였을 때 마곳트는 헬렌의 생활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헬렌이 실제로 깨닫는 것은 냄새의 변화 뿐이에요. 여기든지 뉴욕, 인도, 어디에 있든지 컴컴한 침묵의 동굴 속에 앉아 있는 것은 마찬가지일 거예요” 점심은 테라스에서 먹게 되어 있었다. 헬렌은 이끌려서 자기 자리에 앉았다. 나는 헬렌이 자기 식탁의 집기를 보는 것을 바라다보았다. 번개불처럼 재빨리 그녀의 손이 식탁 위의 물건 위를 스쳐갔다. 접시, 컵, 은그릇 등 그녀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왼 것 같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녀는 한번도 손을 더듬은 적이 없었다. 우리들처럼 망설이지 않고 손을 내뻗어 정확하게 집었다. 나는 톰슨을 통해 헬렌에게 유럽에서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찾아갈 장소이며 만날 사람들을 상세히 꼽았다. 놀랍게도 그녀는 불어를 썩 잘했고,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실력도 자기 의사를 표현할 정도는 되었다. “이밖에도 보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게 많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저 앞 모퉁이까지 와 있는걸요.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지요.” “죽은 다음의 삶을 믿습니까?”라고 나는 물었다. 헬렌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죽음, 그것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러나 저 세상은 내게만은 좀 다를 거에요. 짐작하셨겠죠? 그 다른 방에서는 나는 볼 수 있을 거에요!” 잊지 않으리라.

-사랑은 아름다워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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