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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94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6 09:49:33
어머니, 어머니!
- 이강근 집사 -

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어버이날이 지나가면서 내가 늘 그리워하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도 흩날리는 꽃잎처럼 희미해져 간다. 나는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 두 분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왔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당대 유학 명문인 전주 유씨 가문의 장녀로 태어나서 8형제의 맏이신 아버지에게 출가해 오신 후 나와는 10년 남짓 짧은 생을 보내셨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굵직하고도 숱한 족적을 남겨주시고 그분의 나이 50세에 세상을 하직하셨다. 그분은 다정다감하면서도 엄격한 어머니이셨고 조상님들에게는 지극한 정성의 효부였으며 이웃에게는 참다운 봉사의 표본이셨다. 너무나 가난하여 깨어진 항아리 하나가 신혼 살림이었다고 우리에게 늘 들려주셨지만 수십만지기의 농토를 일구셨고 일곱 시동생의 예우사리를 모두 감당하셨으며 세 아들을 떳떳이 사회에 진출시켰다. 특히 막둥이인 나에게는 애정과 기대가 각별하셨던지 5살의 철부지를 새벽부터 한문서당으로 내보내시며 애정의 눈물과 매정한 회초리를 엄격히 구분하셨기에 나는 훗날 나의 생모님을 신사임당과 곧잘 비교하곤 하였다. 봉사하는 마음이 남달라서 자기 밭에 김을 매러 나가다가도 이웃집 논밭에 잡초가 있으면 온종일 남의 땅의 풀을 뽑아주시던 그 어머니의 인심덕택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듬해에 6.25 전쟁이 나고 우리 집안이 반동집안으로 몰렸지만 이웃 모두가 우리를 감싸주었다. 내 나이 열 한 살에 어린 내가 단장의 아픔으로 겪었던 어머니의 임종은 내 생애를 다할 때까지 아픈 기억일 수밖에 없다. 열한 살 막둥이와 아홉 살, 다섯 살 된 두 딸 등 3남매를 세상에 남겨두고 가셨기에 나의 새어머니는 그 짐을 모두 감당하면서 우리 집에 오셨다. 열세살의 사춘기와 반항기에 맞이하게 된 나의 새 어머니와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 후 그 세월이 이제 반백년이 지났다. 젊어서는 홀로되신 아버지를 돌보시며 두 어린 동생을 길러주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로 두 형이 있었지만 굳이 철부지인 나와 함께 일생을 같이 하기로 작정하시고 나의 배필을 손수 간택하여 주시며 내 어린 자녀들과 귀여운 손주들까지 다 길러주신 그 사랑 그 은혜 바다보다 넓고도 깊다. 그 어머니도 이제 80고개를 넘으셨으니 언제 또 우리를 하직하게 되실지 모르는데 각박한 이 세상 살면서 내가 범한 소홀함과 이 불효를 장차 어찌 다 용서받을 수 있을는지! 천국에서 하나님 뵈올 날. 아버님 뵈올 날, 그 날이 두려웁기 그지없다. 예수께서 고난을 앞두시고 그 어머니와 하직할 때 어머니를 염려하며 행하신 말씀이 심금을 울린다. '그 모친께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미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집에서 모시니라'(요19:27). 생명을 바쳐 인류 구원 사역을 감당하시는 큰 일을 행하시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보여주는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2004.5.10 임직날 늦은 밤-


보이지 않는 눈물

1996년 5월 알레르기성 비염을 치료하기 위해 이비인후과 병원에 들렸는데, 상상도 하지 못했던 ‘비인강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문을 나서며 하늘을 바라보는 수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지던지, 앞으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반드시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리라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근심하거나 슬퍼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발병 사실도 가족에게 숨겼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의 흔적으로 인하여 아버지가 내 병을 알게 되었다. “내가 먼저 가야하는데...”라고 크게 걱정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애쓰던 아버지, 아버지는 그 이듬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 이제 그만 우세요...” 병을 이겨내고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아들은, 남몰래 흘리던 아버지의 눈물과 사랑을 되새기며 가슴을 적신다.

- 고락찬/가이드포스트 2004.5호 중에서 -


눈물의 기적

나는 태어나고 두 달쯤 되었을 때 심하게 아팠다고 한다. 설사와 구토가 끊이지 않았고, 어떤 치료도 듣지 않았다. 그런 내게 뇌막염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지금부터 40년 전의 일이니 뇌막염은 죽지 않으면 대부분 불구가 되는 병이었다. 머리에 링겔을 꽂고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야위어 가는 갓난아이를 바라보아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어머니에게 맡기지 않고 친히 나를 등에 업고 눈물로 밤을 새우며 간곡히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 때 할머니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뱃속의 내용물을 토해 내게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가족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40여 년 전 그 아들은 오늘날 공학박사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서 있다.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아버지의 사랑 덕분임을 나는 평생 잊지 않으리라.

-정동조/가이드 포스트 2004. 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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