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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유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933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6 09:49:12
아이 러브 유

1956년 11월의 어느날, 무대 배우 렉스 해리슨은 뉴욕의 한 병원으로부터 곧 좀 와 달라는 긴급 전화연락을 받았다. 며칠 전 여배우 케이 켄달 양을 데리고 가서 그녀의 건강을 진단하게 했던 바로 그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마침 (마이 훼어 레이디)에 헨리 히긴스 교수로 출연하고 있던 렉스 해리슨은 옷도 갈아 입을 짬이 없어 무대 의상 그대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피곤한 몸을 소파에 깊이 파묻으며 왜 불렀느냐는 듯이 얼굴을 드는 렉스 해리슨에게 의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케이 켄달 양은 백혈병입니다.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습니다.” 백혈병! 백혈병이란 곧 혈액암이 아닌가! 평소 동료들로부터 좀 냉담하다는 평을 듣고 있던 렉스 해리슨에게도 케이 켄달 양이 백혈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커다란 나무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얼이 빠진 사람 모양 한 동안 멍청하니 앉아만 있던 렉스는 간신히 입을 열어 그러면 케이 켄달 양은 이제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케이 켄달 양의 생명은 이제 아무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녀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누군가가 헌신적으로 돌보아 줘야 하는 일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의 손을 잡은 렉스의 두 눈에서는 말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불쌍한 케이 켄달, 그렇게도 귀엽고 그렇게도 젊은 케이가 이제 불치의 병을 얻어 얼마 있지 않으면 죽어야만 하다니...... 병원 문을 나서며 렉스는 혼자 결심했다. 절대로 병 얘기를 케이한테 해서는 아니된다. 앞으로는 내가 그녀를 죽을 때까지 돌봐주어야 한다고. 렉스는 먼저 케이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은 이미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들의 결합을 축복해 주었고 또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행복을 선망하기도 했다. 1957년 6월 그들의 결혼식이 끝난 직후 렉스 해리슨 부인이 된 케이 켄달 양은 상기된 얼굴을 반짝이며 신문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이제 아무 것도 부러운 게 없어요! 원하던 것을 다 차지했으니까요!” 렉스는 본래 바람직한 남편감이 못 되었다. 본성이 우울하고 무뚝뚝한 데다가 화를 잘 내고 또 자는 시간, 깨는 시간이 언제나 일정하지 않은 무절제한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이와 결혼을 하고 난 렉스는 진심으로 그러한 자기의 생활 태도를 고치고 싶었다. 하지만 고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남편의 생활 태도가 달라진 데에서 케이가 혹시 이상한 무엇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했습니다. 그녀가 병자라는 것을 그녀 자신은 물론 다른 친구들까지 다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섭니다.” 1957년 12월에 렉스는 (마이 훼어 레이디)의 뉴욕 출연을 그만두고 부인과 함께 런던으로 돌아갔다. 케이는 영국 태생이었던 것이다. 런던에서 여자가 좋아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사주었다. 케이는 그것들을 입고 어린애같이 좋아하며 사진도 찍고 친구들도 찾아다녔다. 그러나 케이는 스위스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12월 28일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백혈병이 점점 더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렉스는 신문 기자들에게 ‘케이는 다만 식중독을 일으켰을 뿐이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 다음해 4월 (마이 훼어 레이디)가 런던에서 재상연 되고 렉스 해리슨의 명성이 더욱 더 높아지자 케이는 렉스에게 아이를 낳자고 조르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렉스가 건강 문제를 내세워 안된다고 타이른 뒤 그 대신 둘이서 영화를 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제작된 것이 (The Reluctant Debutante)였으며 이 영화에서 들어온 수입으로 두 사람은 롤스 로이스 한 대와 첼시의 고급 별장 한 채를 사가지고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 케이는 이 영화의 촬영이 끝나자 다가오고 있는 자신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한 번 영활에 출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해 5월 세트 촬영 중에 쓰러졌고 10여일 만에 퇴원을 했다. 8월에 영화 촬영이 끝나자 그녀를 데리고 이태리로 갔다. 따뜻한 바닷물을 헤치며 해수욕도 했건만 케이는 점점 더 쇠약해지기만 했다. 어느 날 밤 렉스는 파자마 바람으로 케이를 안은 채 라팔로 근처의 병원으로 달렸다. 런던에 돌아와 렉스는 혈액 전문가인 엘리자베드 여왕의 시의까지 초청해서 케이를 진찰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더 손을 쓸 수가 없다는 의사들의 말이었다. 렉스는 케이의 병실 옆 방을 얻어 그곳에서 자고 먹으며 간호를 하기로 했다. 입원한 지 엿새째 되는 날 저녁, 케이는 기어코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누구도 이제는 깨어나지 못하고 운명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자정이 되자 케이가 눈을 뜨고 렉스를 찾더니 그의 손을 잡으며 ‘렉스, 아이 러브 유’라고 분명하게 말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그것이 케이 켄달 양의 마지막이었고, 그녀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마지막 말이었다.

-꽃송이로 가득찬 작은 가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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