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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꿈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1153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6 09:48:19
바닷가의 꿈

어머니와 나는 그때 꿈이 있었다. 날씨가 포근한 날이면 우리는 바닷가로 나가 따뜻한 모래 속에 발을 묻고 함께 앉아 있곤 했다. 바다에서는 커다란 파도가 서서히 다가와 초록빛으로 점점 높아졌다가는 천둥치는 소리를 내면서 하얗게 부서졌다.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산들바람이 햇살로 따가와진 우리 얼굴을 간지르며 지나갔다. 그때 어머니는 34세, 나는 열 살이었다. 어머니는 키가 작고 통통한 몸매를 지니신 데다가 살결이 아주 곱고 부드러운 갈색 머리를 갖고 계셔서 그야말로 여성적이고 얌전한 모습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무슨 꿈을 갖고 계신지 물어 보았다. "넌 별걸 다 묻는구나"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물에 젖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엄마, 정말 궁금해요" 나는 졸랐다. 어머니는 당신의 꿈을 얘기하셨다. 언젠가 아버지가 여유가 생기던 어머니에게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사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커다란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것 좀 봐라" 어머니는 당신의 귀를 잡아당겨 보여주면서 얘기하셨다. "난 열 다섯 살난 소녀였을 때부터 벌써 귀에 구멍을 뚫어 놓고 있었단다.

여기에 조그만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한다면 내가 얼마나 이뻐 보이겠니" "그래요, 엄마. 정말 그럴 거에요" 나는 맞장구를 쳤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내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 그 바닷가에 집을 사서 매일 바다를 바라보면서 살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바다가 변화할 때마다 풍기는 각기 다른 분위기를 온종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집엔 하인이 여럿 있는데 그들이 할 일이라고는 은쟁반에 젤리와 초콜릿을 가득 담아 가지고 내게 계속 날라다 주는 일밖엔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뒤로 묶었던 머리채가 풀어져 내려 부드럽게 목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원 녀석두......“ 나는 그 미소로 어머니가 내 꿈을 유치하다고 생각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부끄러운 나머지 모래 속에 묻었던 발을 빼고 바다 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저만치 커다란 파도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얼마 후 어머니의 꿈은 이뤄졌다. 아버지가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사주신 것이다. 커다란 금으로 만든 갈퀴 모양에, 조그만 다이아몬드가 볼록 튀어나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거울 앞에 앉아서 한참동안 이리저리 돌리면서 귀걸이를 한 모습을 비추어 보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의 꿈이 실현된 것이 기뻤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장을 하고 외출하시려고 할 때면 나는 어머니가 그 귀걸이 때문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를 얘기해 드리곤 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는 별로 미인은 못 되었는 데, 그 귀걸이를 하고 나가실 때, 어머니는 마치 여왕이나 되신 것처럼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나가시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최악의 상태라고 회상하시는 불경기가 닥쳐왔다. 어머니의 귀걸이는 없어진지 오래였다. 내가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면 어머니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시긴 했지만 스며 나오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저당 잡히셨다. 언젠가 꼭 찾아 주실 거야.” 순경이던 아버지의 월급은 원래부터 형편없었는데 불경기가 닥치자 그나마 감봉이 되었다. 이제 어머니는 손수 재봉틀을 돌려 우리 옷을 만드셨으며, 몇 푼 버느라고 밤늦게까지 실크로 장식용 장미꽃을 만들고 계셨다. 이런 형편에서도 어머니는 해마다 귀걸이를 잡히고 꾼 돈 이자를 갚아 나가고 계셨다. 마침내 어느 해 여름, 어머니는 기진맥진해 버리셨다. 사실 그전에 그 빚의 지불만기일이 지났는데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희망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 형편에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갖는다는 것은 사실 허영일 거야”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체념하셨다. 누구에게나 큰 행운이 한번쯤은 닥치는 법이다. 내게도 그 행운이 찾아 왔다. 내가 쓴 책이 16개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이다. 나는 그 바닷가에 집을 샀다. 내 꿈이 이뤄진 것이다. 은쟁반에 초콜릿을 담아 나르는 하인은 없었지만 여하튼 그 바닷가에다 집을 마련하긴 한 것이다. 그동안 내 머리는 회색으로 새어졌지만 여전히 파도는 변함 없는 그 젊은 힘으로 천둥소리를 내면서 바닷가에 부딪치고 있었다. 그 집에 이사가서 자리가 잡히자 나는 부모님을 초대했다. 나는 빌로오도로 만든 상자를 어머니께 드렸다. “이번엔 어머니의 꿈이 이뤄질 차례입니다. ” 어머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여보....” 어머니는 아버지를 불렀다. “절 좀 도와주세요. 난 이런 일에 서툴러서.....” 아버지는 상자를 열어 보고 우물쭈물 말씀하셨다. “굉장히 예쁜 다이아몬드 귀걸이인데.....” 어머니는 내 머리칼을 자꾸 쓰다듬으시더니 그 귀걸이를 귀에 다셨다. “내가 어떻게 보이니?” “멋있는데요!” “아름답소!” 아버지와 나는 동시에 대꾸했다. 어머니 스스로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말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벌써 몇 해 전부터 눈이 멀어 계셨던 것이다.

-노란 손수건/샘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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