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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두 분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22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7:24:02
고마운 두 분

뒤돌아보면 두 분의 좋은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물론 내 생애를 통해 앞길을 개척해 가는데 두 분의 선생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훌륭한 많은 선생님들이 나를 살펴주었지만 유독 두 분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사랑으로 나를 감싸안아 준 따스함이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철없이 엇나가던 내 뒷덜미를 붙잡아 바르게 가게 해준 고마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아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새로 전학해서 들어가니 반 아이들과 낯설었다. 나는 사투리를 써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자연히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누구와 말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우리 집에서 학교에 가려면 전차를 타고 두세 정거장을 가야하는 거리였다. 이 먼 길을 혼자 보자기를 허리에 둘러매고 갔다와야 했다 몇 달을 외롭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작문시간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동시를 써서 내라고 했다. 선생님은 한 사람씩 세워놓고 써낸 동시를 평가하셨다. 내 차례가 되어 일어서자 선생님은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쓴 글을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라는 것이었다. 나는 작은 소리로 읽었다. 물론 사투리 억양이 섞여서 앞에 앉은 아이들이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눈앞이 캄캄하고 주저앉고 싶었지만 할 수 없이 끝까지 읽었다. 자리에 돌아와 다시 앉았지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 날은 그것으로 끝났다. 다음날 아침 교실에 앉아있는데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전교 글짓기 대회에 우리 반에서 다섯 편을 골라 응모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누가 응모작으로 뽑혔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1주일쯤 지나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조회를 설 때였다. 교장 선생님은 글짓기 대회의 성적을 발표하면서 호명하는 학생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우리 반에서는 내 이름만 불렀다. 교실로 들어가자 담임선생님은 나를 반 아이들 앞에 세우더니 '우리 반을 빛낸 아이' 라고 칭찬을 했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가려고 교실 문을 나서는데 선생님이 내 손을 잡더니 교실에 남아있으라고 했다.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투리 때문에 아이들이 놀리곤 했지? 선생님은 다 알고 있었어. 견디어 내는 힘을 키워 주려고 못 본척한 거야. 너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사물을 그냥 보는 아이가 아니야. 앞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하고 다독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고마워 눈물을 줄줄 흘렸다. 선생님은 내가 무엇이든지 하나 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이를 내세워 아이들의 놀림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려 했던 것이다. 나는 글과 친하게 해준 선생님을 통해 처음 성장의 한 매듭을 만들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시장에 사는 아이가 짝이 되었다. 그는 형들이 많아서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학교가 파하면 그는 내 손을 잡고 시장 가 큰 아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공터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으슥한 골목길이라서 큰 아이들은 담배를 피우며 아령 같은 것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큰 아이들의 심부름꾼 같았다. 가끔 다른 동네로 가서 싸움질을 하고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이 패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만으로도 길을 다닐 때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었다. 말을 건방지게 하는 법도 배웠다. 또 새끼줄을 말뚝에 감아놓고 큰아이들이 때리는 것을 보면서 나도 괜히 주먹으로 새끼줄을 때려보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집으로 가려던 나를 불러 세웠다.
선생님은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학교 옆 동산으로 갔다. 선생님은 나를 곁에 앉히고 내 손을 잡더니 "깡패들 따라다닌다며?" 하고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손바닥만한 책을 내 손에 쥐어주며 "릴케의 시집이다. 내일까지 읽고 와서 이야기하자."하고는 가버렸다. 나는 릴케의 시집을 들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다시 동산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두툼한 책을 내놓고 "도스트에프스키의 '죄와 벌'이다. 1주일동안 읽고 오너라." 1주일 후에 나는 선생님과 다시 만났다. 나는 선생님이 주는 책 여덟 권을 읽었다. 그 후로 선생님은 다시는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 집에 수없이 쌓인 책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사는 동안 얼마나 좋은 사람을 만나서 성장의 매듭을 만들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 바로 행복인 것 같다. 요즘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얼마든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보를 식별하여 성장의 매듭이 되도록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좋은 스승을 만나고 또 찾으려고 하는 일이 바로 삶의 길을 바르게 가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박동규 / 대산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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