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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와 중보기도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930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7:23:06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중보기도

이강근 집사
?역지사지?라는 말은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한다?라고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이 말의 근원이나 유래는 잘 알지 못하지만 대체로 상대방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입장으로 되 바꿔 생각하고 이를 함께 걱정한다는 뜻으로 쓰여지는 것 같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세속의 말처럼 각박한 세상에 남의 딱한 처지를 자기 일처럼 여겨주는 경우가 그리 흔치는 않은 것 같고, 특히 내 경우에는 꽤 긴 세월을 직업 군인으로 살아왔기에 상대방의 처지를 내 일처럼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 본시 군대라는 조직이 그 특성상 상대와 싸워야 하고 싸우면 이겨야 하는 것이 사명이라 상대의 딱한 처지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회인이 되어 교회의 직분을 받은지도 제법 연륜이 흘렀지만 아직은 신앙인으로 예수의 향기를 과연 얼마나 세상에 드러내며 살고 있는 가하는 자괴감에서 늦게나마 삶의 방식을 긍정적으로 바꿔보자는 마음으로 역지사지라는 단어의 의미를 가끔 되새겨 본다. 병중에 있는 아내와 함께 여러해를 늙으신 노모님의 노고에 의지한 채 살면서 육신의 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분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고 새삼 부모님에대한 자식의 도리에 대하여도 처지를 바꿔보기도 한다. 이후로 나는 짬만나면 출가한 딸들에게 친정에 두고 온 투병중인 엄마를 생각하며 부디 시댁 부모님께 각별한 사랑을 드릴 것을 권면한다. 이 세상 모든 여인들이 친정부모를 늘 염려하는 애틋한 심정으로 시댁에 사랑을 준다면 온 천하의 가정들이 얼마나 화목하겠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 형태의 기도 가운데 남을 위하여 드리는 정성스러운 중보기도야말로 역지사지에 머무르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남을 위해 간구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지고지상(至高至上) 의 이웃사랑이요 계명의 실천이 아니겠는가? 이 세상 모든 가장들이 자기 가정만을 위함이 아니라 역지사지의 의미대로 남들을 위하여 중보기도에 신심을 쏟는다면 어지러운 사회가 얼마나 밝아지겠는가 라고 잠시 묵상해본다.

천국의 창고

엄상익(변호사)
암환자 등 7백여 명을 도운 호스피스 간호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처음 도와준 환자는 중년부인이었는데 그 부인은 젊은시절부터 세계일주가 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의 적은 월급 중 일부를 저금하기 시작했다. 그 돈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쓰지 않을 결심이었다. 그녀는 천 원의 기부도 단호히 거절했다. 또 대학에 합격한 시누이가 등록금을 꿔달라고 왔을 때도 냉정히 거절했다. 그런데 그녀가 그만 유방암에 걸린 것이다. 결국 악착 같이 모은 세계일주 비용을 한푼도 써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부자일수록 죽을 때 재물이 아까워 더 몸을 벌벌 떨더라고 그 간호사는 말했다. 나도 그랬다. 몸속에 생긴 혹이 암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오를 때, 만약 다시 살아나기만 한다면 앞으로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살아나자 나는 언제 그랬던가 싶게 다시 금전에 집착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적은 액수의 돈을 기부하게 되었다. 혼자 약간 즐거워졌다. 기부받은 사람이 내 돈에 집착하는 마음까지 받아간 듯했다. 그러고 보니 기부란 상대방에게 자못 생색이라도 내려고 베푸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속에 있는 거무칙칙한 욕망을 몸 밖으로 내버리는 청소였다. 얼마 전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한친구를 만났다. 간경화를 넘어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그는 미국으로 가서 간이식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내가 물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간이식 수술 전에 어떤 생각을 했어?" "수술대에 누우니 그 동안 살아온 인생이 낱낱이 보이더라구. 그런데 대개 평소에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아주 평범하고 작은 것들이었어. 삶이란 특별한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작은 행복들이더군." 어떤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났다. 죽음을 앞둔 학자에게 며칠 더 생명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그는 매일 산책하던 그 길을 다시 걷고 싶고, 정든 나무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고 싶고, 산책길 도중에 있는 단골 커피집에서 맛있는 커피도 한잔 마시고 싶다고 했다. 행복하기 위해 이 세상 창고에 아무리 재물을 가득 채운들 오늘 내가 너의 영혼을 데리고 가면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있겠느냐고 성경은 말한다. 그런 위험을 없애기 위해 나는 요즘 창고를 세 개로 나눠 그 안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 첫번째는 땀 흘려 번 돈을 저축하는 은행이라는 창고이고 다음은 지식의 창고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책을 읽으면서 낡은 것은 없애고 새로운 지식을 채우고 있다. 세번째는 천국의 창고다. 이 세상에서 되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그 만큼 남모르게 하늘의 은행에 저축을 하는 것이다. 막상 저 세상으로 가서 심판을 받을 때 모아둔 게 너무 없어 후회하지 않으려고.
-목마르거든 2003년 8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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