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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928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7:17:05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

채진석
1968년 10월 30일, 아버지의 일생에서 악몽 같은 날이기에 기억조차 하기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일행을 태운 차는 온통 붉게 물든 가을을 즐기면서 김해에서 부산으로 가고 있었죠. 그때 깜박 졸던 운 전수의 실수로 그만 차는 휘익 돌면서 공중으로 붕 떠오른 후 비탈길을 속절없이 구르기 시작했지요. 비탈길을 몇 바퀴 구르던 차는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터지면서 순식간에 차 안은 온통 핏빛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뜨거운 불이 아버지를 핥았고, 정신을 잃은 아버지의 몸은 타들어갔습니다. "전신 3도 화상, 온 몸의 45%가 불에 타 버렸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렵습니다." 병원측에서는 도저히 살릴 방법이 없다면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온 몸의 체액과 수분이 타버린 상처 부위로 줄줄 빠져나가고 있으며, 특히 단백질 유출은 치명적이라고 하더군요. 절망적인 진단, 사실상 사망 선고가 내려진 셈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고통을 겪으며 간신히 목숨만 건지신 아버지는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녹아버린 아버지의 몸은 온통 일그러지고 주름지고 얼룩져 있었습니다. 겨우 형태만 남아 숨을 쉬고 있는 코, 꿰맨 흔적이 역력한 입술, 갈고리 같은 손은 펴지지도 않은 채... 걷기 위해 애쓰셨지만 겨우 갓난 아기 수준이었고, 그것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꼼짝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 혹시라도 길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듯이 깜짝 놀라며 피하곤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측은하기도 하였지만 어린 나 또한 너무 창피하고, 무서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때문일까요? 내 유년의 기억을 우울하게 만든 아버지로부터 나 또한 멀리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어느 날이었지요. 한밤중에 싸우는 소리가 크게 들려 도대체 어느 집에서 하는 부부싸움인지 너무한다 싶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해야 돼. 어디 오늘 다 죽어보자." "진석이 아빠, 지금까지 잘 버텨왔잖아요. 내가 당신 마음 아니까 우리 조금만 참아요."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셨는지 아버지는 장롱 안의 이불에다가 불을 붙이려고 취한 몸을 흔들거리며 라이터를 켜기 시작하셨지요. 라이터만은 뺏어야 된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쥐어진 라이터의 불빛은 너무나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뛰어갔을 때 겁에 질린 여동생은 말리지도 못한채 울고만 있더군요. "오늘 밤 이 집에 불나면 다 같이 타서 죽어야 해. 더러운 세상 살아서 뭐해." 아버지는 너무나 흥분하셔서 그 상태로 놓아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습니다. "아버지 도대체 왜 이러세요?" "다 필요 없어. 내가 무슨 전염병자야? 모두가 왜 나만 보면 피하는 거냐고, 왜 나를 귀신 보듯 하냐고...!" 아버지를 힘으로 제압해서 손에 들린 라이터를 급히 뺏었습니다. 라이터를 뺏기자 아버지는 분풀이라도 하시려는 건지 발버둥을 치며 손에 잡히는 대로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기 시작했지요. 어쩔 수없이 순식간에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아버지의 손을 나는 포악스럽게 묶어야 했습니다. "이놈의 자식, 지금 뭐하는 거야? 응? 네가 이 애비 마음을 알아?" 한참을 발버둥치며 나를 향해 소리치던 아버지는 잠시 후 잠이 드셨습니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잠이 든 아버지의 얼굴. 난 사고 이후로 아버지의 얼굴을 처음 보았습니다. 멀리서만 봐도 경악할 만한 외모였기에 피해왔던 아버지의 그 얼굴을 말입니다.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반쯤 감긴 눈 사이로 뿌옇게 보이는 가짜 눈알, 괴물처럼 뒤틀린 살갗, 공포감마저 느끼게 하는 콧구멍, 비뚤어진 입... 전에는 결코 입에 대지도 않았던 술이었는데 이제는 술 없으면 살수 없는 아버지. '아, 그랬구나. 이런 얼굴을 하고 자식에게까지 외면 당하는 게 싫어 아버지는 술을 드셨구나. 그동안 나는 얼마나 자주 아버지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던 걸까?' 그날 아버지의 흉한 모습을 가까이서 똑바로 보고나서야 힘들게 살아왔을 모진 세월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아버지의 손을 풀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뭐라고 아버지에게 소리 지르고 화를 낼 수 있을까요. '아버지,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몸에 난 상처도 억울한데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말 때문에 얼마나 괴로우셨어요. 더구나 이 아들놈마저 피해 다녔으니... 사고가 나고 불길이 온몸을 휘감아올 때 야속하게도 차문이 열리지 않아 이제는 죽어야 하나 만감이 교차하는 그 순간에도, '내가 죽으면 내 아내와 자식들은 어찌 되나. 그래, 이대로 죽으면 안되지.' 하는 생각으로 견디어 냈다고 하셨지요? 온몸의 반이 타버린 상황에서도 자식 생각을 놓지 않으셨다는 아버지. 죽음이 달려드는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자식을 생각하면서 온 의지를 쏟았는데 그 자식은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드러난 얼굴만을 보면서 몇 십 년을 외면했으니... 아버지는 듣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한 독백은 새벽이 오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수십 년의 시간을 통회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 당신 또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분임을 고백 합니다."

-낮은 울타리 2003년 7월호 중에서-

■ 필자는 현재 인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다. 부친인 채규철 씨는 1968년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얼굴을 비롯, 온몸의 원형을 잃어버렸다. 현재 화상의 고통을 이겨내고 두밀리 자연학교 교장으로서 아름다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또한 '장애를 극복한 삶'을 강연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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