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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하얀 운동화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885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7:05:26
아버지의 하얀 운동화

아버지는 목발에 의지한 채 평생을 사신 분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힘든 걸음연습을 시작한 건 맏딸인 내가 결혼얘기를 꺼낼 무렵이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얼마나 위태로워 보이던지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지금의 남편이 처음 인사 드리러 오던 날, 나는 그에게 아버지의 목발을 보이는 게 끔찍히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다녀간 뒤 아버지의 걸음연습은 더 잦아졌고 그때마다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곤 했습니다. 무리하시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아버지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니 결혼식날 손이라도 잡고 들어가려면 걸을 수는 있어야지.? 나는 큰아버지나 삼촌이 그 일을 대신해 주기를 은근히 바랬습니다. 시댁식구들에게 의족을 끼고 절룩거리는 아버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디서 났는지 하얀 운동화까지 구해 신고 힘겹게 힘겹게 걸음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결혼식 날은 하루하루 다가왔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두려워졌습니다. 저러다 정작 식장에서 넘어지시면 어쩌나 하는 초조한 마음과 하객들이 수군거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숨 속에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마침내 결혼식날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이 축복하는 행복한 신부의 모습으로 서 있던 나는 절룩대며 신부대기실로 들어서는 아버지의 신발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습니다. 아버지는 말쑥한 양복아래 하얀 운동화를 신고 계셨던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운동화를 신으라고 한걸까? 나는 누구에겐지도 모를 원망에 두 볼이 화끈거렸고 결혼식 내내 그 하얀 운동화만 떠올라 고개를 들 수도, 웃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비로소 결혼식 날 그 운동화의 사연을 알게되었습니다.?느이 남편한테 잘하거라. 사실 난 네 손을 잡고 식장으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었단다. 그런데 니 남편이 매일 찾아와 용기를 주고 넘어지지 말라고 운동화까지 사줬단다.? 나는 그만 목이 메고 눈물이 나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낡아버린 하얀 운동화를 아버지는 끝내 다시 신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TV 동화 행복한 세상 중에서-


어 떤 동 행

엄마의 예순 두 번째 생일날이었습니다. 우리 모녀는 처음으로 단 둘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제주여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며 힘겨워하는 엄마를 위해 딸이 바치는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좋지 엄마?" "좋구나." 필요한 건 내가 다 싸간다고 몸만 단촐하게 오시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주 큼직한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뭔가 아주 소중한 게 들었는지 엄마는 가방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줘요, 내가 들게." "괜찮다." "무겁잖아." "아니, 이건 내가 들고 싶어." 이상하다 했더니, 일은 성산 일출봉을 오르기로 한 날 아침에 터졌습니다. 엄마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지에서 한복이라니, 정말 모를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뭔지 모를 짐까지 보자기에 싸들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일정에 따라 성산일출봉으로 향했고 엄마는 가는 내내 그 보자기를 품에 꼭 안고 있었습니다. '대체 뭐가 들었길래 신주단지 모시듯 한담.' 사람들은 한복을 입고 땀을 빼는 엄마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몇 번이나 가다서다를 되풀이하면서도 보자기만은 절대로 놓지 않았습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비로소 엄마의 그 깊은 속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토록 소중하게 품에 품고 온 보따리 속에서 아버지의 사진이 든 액자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액자를 보며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자 보시구랴, 여기가 당신이 살아 생전 꼭 한번 와보고 싶다던 그 일출봉이래요." 엄마는 난생 처음 하는 제주도 여행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시고 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혼자만 좋은 것 보고, 맛난 것 먹고, 호강하기 미안한 엄마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정말 애틋한 선물이었습니다.
-TV 동화 행복한 세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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