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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나무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938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7:02:19
엄마의 나무
by Joyce Williams, Wichita, Kansas
남편 진과 나는 새 집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나와 결혼한 터였다. 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지내던 집에 마지막으로 들렀던 그날까지만 해도 그랬다.?엄마의 나무는 어떻게 하죠??의붓아들인 패트릭이 물었다. ?엄마의 나무라니??남편이 창 밖에 있는 멋진 돌능금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애들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웃 사람들이 모여 그 사람을 기리면서 저 나무를 심었어요. 나무를 가지고 이사할 수 없어서 안타깝구려.?나를 잘 받아들여 준 그 애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기로 난 마음먹었다. 그 돌능금나무를 우리 새 집에 옮겨 심기로 한 것이다. 나는 나뭇가지들이 산들바람에 흔들리며 집에 잘 왔다고 아이들을 환영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우리 집 조경사인 일식 씨에게 나무 파는 삽을 가지고 와 달라고 했다. 그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돌능금나무를 살살 파내더니 신음하듯 말했다.?조이스, 이 나무는 죽어 가고 있어요. 보세요, 뿌리가 썩고 있잖아요. 이걸 옮겨 심어도 소용없을 거예요. 그래도 계속하시겠어요??나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분명 썩는 냄새가 뿌리에서부터 풍겨 나왔다. 그 중 하나를 건드리자 뿌리가 부스러졌다. 그런데도 그걸 보니 내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한 번 시도해 봅시다.? 나는 말했다. 정원사와 나는 그 나무를 새 집 앞에다 옮겨 심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 나무는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매일 신음하는 돌능금나무에게로 가 보았다. 정원사는 그 나무에 양분을 주고 지지대로 받쳐 주었다. 나는 그 나무를 기도로써 받쳐 주었다. ?주님은 이 나무가 남편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를 잘 아십니다. 제발 이 나무가 그 애들을 위해 다시 자라도록 해 주세요.?우리가 이사하기로 한 날 바로 직전에 나는 돌능금나무를 점검하러 갔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단단한 초록 싹이 가지에 점점이 수놓여 있었던 것이다! 부활절 예배가 끝난 후, 처음으로 전 가족이 함께 모였다. 패트릭이 차에서 뛰어나왔다. ?저건 엄마의 나무 같은데!? 그 애가 그렇게 소리치며 돌능금 나무로 달려가자, 다른 형제들도 그 뒤를 따랐다. ?맞단다.? 그 애들이 나뭇가지를 따라 손가락으로 더듬어 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말했다. 그 나뭇가지들은 이제 새 잎들로 무성해 있었고, 산들바람 속에서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집에 온 걸 환영해.?

진실한 친구
지난봄에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나는 유품을 정리하느라 최소한 몇 주 더 뉴욕 북부에 머물러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폭염이 몰려왔고 어머니의 낡은 집은 전혀 냉방이 되지 않았다. 습기와 치솟는 기온 때문에 내 지병인 다발성 경화증이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찌는 듯 무더운 어느 날, 어머니 친구인 팻 아주머니가 집에 들렀다. ?엄마가 여러 번 네 이야기를 했단다.? 그분도 나처럼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었다. ?너한테 이런 더위는 정말 고통스러울 거란 걸 나도 잘 알아. 우리 집에 와 있지 않으련??
아주머니는 냉방이 잘 되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내게 주었다. 그분은 어머니의 옷을 정리하여 지역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자기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이나 기도 모임에도 나를 데려갔다. 아주머니와 나는 생전에 어머니가 좋아했던 장소로 함께 외출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폴란드 레스토랑이나 산속의 양로원 같은 곳에 말이다. 팻아주머니는 어머니와 15년간 우정을 쌓아 왔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친구이기도 하다.
-아이린 피셔, 조지아 주 스톤 마운틴-


너에게 보내는 노래

경희와 나는 중학교 때 처음 알게 된 후로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교회도 같이 다녔는데, 찬양시간에는 앞에 나가서 함께 인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사소한 일로 싸움을 하고 말았다. 일주일 정도가 지난 주일 우리는 여느 때처럼 앞에 나란히 서서 찬양을 인도했다. 한 곡, 두 곡 찬양이 계속될수록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 이윽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찬양인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의 반주가 흘러나왔다.?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찬양을 하는데 문득 ?다른 사람 이전에, 가장 친한 친구인 경희를 축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조심스럽게 경희를 쳐다보며 노래를 계속했다.?경희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겐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내 노랫말을 들은 경희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날 쳐다보았고 곧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린 그 찬양의 나머지 부분을 어느 때보다도 기쁜 마음으로 부를 수 있었다.
-가이드 포스트2003년 4월 호 중에서/안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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