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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불꽃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973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6:59:29
?예쁜 우리 딸, 집에 잘 왔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열세 살 난 막내딸 케이틀린에게 말했다. 딸애가 퇴원하기 전 세인트 주드 병원 의사들이 한 말들이 좀처럼 사라질 줄 모르는 끔찍한 메아리로 마음속에 되살아났다. ?문제는 댁의 따님이 죽느냐 안 죽느냐가 아니라 언제 죽느냐 하는 것입니다.?크리스마스 새벽 2시였다. 딸아이 케이트의 산소 펌프에서 나는 희미한 기계음과, 심장박동수와 호흡을 추적하는 장치들이 내는 삑 소리만 제외하고 집 안은 조용했다. 남편 레이와 큰딸 크리스털은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지만 나는 차마 케이트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아침이면 아이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 그럴 수는 없었다.?바실루스 세레우스 균?이 뇌에 침범한 탓에 케이트는 유명한 아동 연구 병원인 세인트 주드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았다. 사례가 여섯 번밖에 보고되지 않은 중증 뇌막염이었다. 케이트는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5개월을 버텼다. 나는 그것을 생존의 징표로 받아들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수영 대표선수로 출전하여 입상했던 딸애의 포기할 줄 모르는 정신은 여전히 살아 불타고 있었다. ?우리 케이트는 아직 살아 있어요. 이겨 내려 하고 있다고요. 아이에게는 우리가 필요해요.? 난 이렇게 강변했다. 체온은 42.8℃로, 맥박은 240회/분으로, 혈압은 185/ 135mmHg로 치솟았다. 간혹 잠잠해지곤 했으나 그것이 더 무서웠다. 심장박동 사이에 긴 정적이 생길 정도로 케이트의 맥박이 느려질 때면 나는 간절히 애원하곤 했다. ?우리 예쁜 딸아, 어서 힘내. 주님, 한 번만 더요!? 결국 열흘 정도가 지난 후 아이의 의료진이 내게 말했다. ?더 이상은 따님의 몸이 견디기가 벅찹니다. 마지막 날들을 집에서 보내게 할 것인지 결정하셔야 합니다.?나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기껏 케이트를 집에 데려와서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다니, 과연 우리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크리스털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장담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케이트를 집에 데려가요.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그분의 능력을 보여 주실 거예요.?이틀이 지났다. 사흘. 나흘. 케이트의 방을 나올 때마다, 내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아이가 숨을 거둘까 봐 두려웠다. 나는 절망과 외로움 사이에 갇혀 버린 기분이었다. ?문제는 언제 죽느냐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딸이 살 것이라는 가능성을 말하는 분도 있었다. 세인트 주드 병원의 의료진과 아인하우스 박사, 그리고 저먼타운 침례교회의 샘 목사님과 모든 교인들이었다.?당신의 어린 딸 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꼭 일어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믿음 안에 굳게 서십시오.?나는 지도를 붙이고는 케이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도시에 표시를 했다. ?우리 딸아, 네가 깨어나는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너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는지 알게 되면 아마 놀랄 거야.?나는 지도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케이트의 최신 동향?을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고 있음을 그들에게 알리는 것뿐 아니라 나 스스로도 상기하려는 뜻에서였다. 3월 후 케이트는 다시 뇌수술을 받았다. 아인하우스 박사가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늘 기적을 본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서 집에 돌아온 후 케이트는 얼굴에 표정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내가 면봉으로 쓰디쓴 약을 입 안에 칠해 줄 때면 그 애는 싫은 표정을 지었다. 9월이 저물어 가던 어느 날 밤, 나는 여느 때처럼 케이트에게 이불을 덮어 주려 몸을 구부리고는 말했다. ?사랑한다, 케이트.?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데 케이트가 내게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저도 엄마 사랑해요.? 그 말이 입 모양으로 완벽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곧 케이트는 CD의 노래를 입 모양으로 따라 부르며 모두에게 ?우리 하나님은 놀라우시다!?고 말하게 되었다. 케이트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차도를 보이는 것에 의사들은 놀라워했다. 11월 20일 자신의 열네 번째 생일에 맞춰 케이트의 시력이 돌아왔다. 케이트의 말마따나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이다! 그분은 계속 우리에게 잊지 못할 순간들을 주신다. 2001년 5월 18일 크리스털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에는 케이트가 언니와 함께 단상 위를 지나갔다. 9월 18일은 케이트가 화학요법을 마친 날이다. 12월 14일에 케이트는 휠체어에 앉아 올림픽 성화를 들고 멤피스 시내를 가로질렀다. 2002년 2월 5일, 케이트는 보행기를 떼고 걷기 시작했다. 7월 16일은 ‘Make-A-Wish’ 재단 덕분에 그 애가 돌고래들과 함께 수영을 한 날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 중 하나는 케이트가 3년 만에 처음으로 학교에 나간 8월 12일이다. 새로운 고등학교에 걸어 들어가는 케이트의 모습을 나는 꿈인 듯 바라본다. 우리 어린 딸은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라나서 당당히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 속에 살면서,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나아갈 때 하루하루는 기적이 된다. 그것을 생각하며 나는 그저 놀랄 뿐이다.
-가이드 포스트 2003.2월 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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