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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바이올린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656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6:57:09
울지 않는 바이올린

남편의 친구가 어느 날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는 얼굴도 잘 생겼으며 건강하고 모든 점에서 뛰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남편과 함께 다과를 나누는 동안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시를 읊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매료된 나는 "악기도 다룰 줄 아세요?"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악기요...." 하더니, 곧 감개무량한 듯이 무언가를 회상하는 표정이었다. 한참 무언가를 망설이던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실은, 바이올린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 되었지요." "어머나, 바이올린을요, 그런데 왜 그만두셨어요?" 궁금했던 나는 그만 너무 직설적으로 묻고 말았다. "실은, 결혼 당시 새색시였던 제 아내한테 핀잔을 받았어요. 제 처는 제가 바이올린을 켤 때면, '우리 집 남자들은 참 잘 켰어요.'라고 말하곤 했죠. 제 바이올린 솜씨가 형편없다고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죠. 안 그런 척 했지만 그 한마디는 내게 충격을 주었던 거죠. 그 충격이 어떤 것인지 아주머님께서는 잘 모르실 겁니다." 그날 밤 그의 말은 내 가슴에 와닿아 쉽게 떠나질 않았다. 그는 모든 면에서 남보다 빼어났고 남들이 보기에도 남의 말로 하여 놀라거나 충격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그가 자기 아내가 무심코 던진 말에, 그 후 20년 동안 단 한번도 바이올린을 잡은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인간이란 참으로 상처받기 쉬운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내 남편도 얼마나 많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숨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궁금해진 나는 남편에게 마음속에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아니야, 당신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울게 만들어 주는 편이야."라고 부드럽게 말해주는 게 아닌가. 우리 부부가 결혼한지 벌써 20년. 그동안 나는 남편을 경멸하거나 미워했던 적이 결코 없었다. 비교적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칭찬 한마디를 해도 분명하게 내뱉는 편이었다. "당신의 노래솜씨가 멋지니까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하거나, 남편이 노래를 부를 때면 열정적으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고, 슬픈 노래를 부를 때엔 눈물을 흘리며 듣곤 했다. 남들이 보면 다 늙어서 주책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의 노래가 더할 수 없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부부란 이것으로 족한 게 아닐까. 굳이 그의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들어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다. 내 앞에서 실컷 노래를 부른 날이면, 남편은 "오늘 밤은 두 시간이나 노래를 불렀어..." 하고 너스레를 떨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속으로 '이 여편네가 나한테 한 푼도 내지 않고 노래를 부르게 했구나. 지독한 여잔데...'라고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껏 행복할 수가 있다. 아내 때문에 바이올린을 켜지 못했던 그는 한참 훌륭한 노래를 마치고도 자신의 집에서는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노래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우리 집 녀석은 제가 노래하는 걸 싫어해요. 언제는 된장 썩는 것 같다고 평하기도 하고, 또 한번은 너무 시끄럽다고 소리를 치더라구요." "어머나 정말 안됐군요. 그렇게 훌륭한 노래를 집에서 못 부르시니 정말 아쉬운데요." 나는 진정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다. 이렇듯 정감있고 사랑이 넘치는 노래를 어째서 그 사람의 아내와 아이는 들어주지 않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설사 자기 남편이 노래를 음정이 틀리게 부른다 해도 가슴에 사랑만 있다면 기꺼이 들어주고 만족해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언젠가 내 남편이 쉬는 날 집에서 조그만 의자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값 비싸고 고급스런
의자와는 달랐지만 나는 그것이 그 나름대로 더욱 큰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마음을 전해주는 방법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그 의자에 앉아서 기뻐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무기력해 있는 남편이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삼아 얘기할 때, 그것이 다소 지루할지라도 조금은 감탄하며 들어주는 것 역시 그에 대한 작은 사랑이자 배려라고 생각해 왔다. 이렇듯 가정이란 별것 아닌 작은 이야기도 자랑삼아 나눌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다정하고 관대한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볼품없고 조잡한 의자는 당신이나 가져요." 라는 말로 남편을 외롭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미없는 말들은 남편의 가슴에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하나 더 보태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울지 않는 바이올린도 울게 해주었다는 남편의 따뜻한 한마디가 계속되는 한 내 마음속에도 역시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란 없을 것이다.
'미우라 아야코'의 글에서.

-미우라 아야코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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