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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저의 집인 걸요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08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6:35:37
토요일 늦은 오후, 난 서울행 고속 버스에 몸을 싣고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을 지나 언제나처럼 맨 뒷자리에 자릴 잡았다.?다섯 시 버스 출발합니다. 안 타신 분들 없지요??버스 경적소리만큼이나 우렁찬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버스는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한 줌 햇살이 아내와 딸을 만나러 가는 내 마음을 한층 넉넉하게 했다. 나와 아내는 주말부부다. 내가 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지라 방학 때가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씩 올라가는 것이다. 늘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음으로 날 맞아주는 아내와 세 살배기 딸을 볼 생각에 내 마음은 벌써부터 들뜨고 조급했다. 그런데 버스가 터미널을 막 빠져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할아버지 한 분이 튀어나오더니 두 손을 번쩍 들며 버스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기사가 끼익 하고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쿵쿵하며 저마다 머리를 찧어야 했다.?저 할아버지가 겁도 없이…. 기사한테 욕 꽤나 먹겠구만.?나는 앞에 벌어질 상황이 뻔하다는 생각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런데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할아버지, 그렇게 갑자기 나오시면 어떡해요. 애 떨어질 뻔했네. 괜찮으세요???엥??내가 본 기사들은 욕을 해대거나 ?이런 노인네야, 죽을려구 환장했소??라는 핀잔을 주기가 일쑤인데, 이 기사는 예상과 달리 목소리가 가을바람처럼 부드러웠다.?미안하오, 기사양반. 내가 딴 버스를 탔지 뭐요.?할아버지는 더듬더듬한 걸음으로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왔다.?어휴, 할아버지, 어딜 가시는데 짐이 이리 많아요??기사는 이번엔 송글송글한 땀까지 흘리면서 노인네의 짐을 버스 안으로 번쩍 들어올렸다.?우리 외손주 생일이야. 그래 그 녀석 줄려고 과일을 잔뜩 쌌어. 우리집이 과수원을 하거든.??네. 외손주가 좋아하겠네요. 어서 타세요.?
참 친절한 기사다 싶었다. 할아버지 집을 옮기느라 땀에 젖은 그의 등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손님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좀 늦어졌으니 대신 멋진 음악을 선물할게요.?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자 그는 뒤돌아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도 잊지 않았다. 이런 버스 기사는 내 생전 처음이었다. 다른 승객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모두 그를 응시했다. 이윽고 멋진 팝송이 흘러나오더니 버스는 유유히 바퀴를 굴려대며 다시 출발을 시작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슬슬 독서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세 시간쯤 지났을까?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아저씨 잠깐만요. 저 토할 것 같…우엑~?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아이는 버스 안에 제 엉덩이만큼의 음식물을 토해내고 말았다. 차 안은 순식간에 퀴퀴하고 역겨운 냄새로 확 퍼져 나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아이가 안 됐다 싶기도 했지만 그 역겨운 냄새를 모두들 코를 막고 얼굴을 돌려야 했다.?쟤 엄마는 애가 이지경이 되었는데 뭐하는 거야??대놓고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황한 버스기사는 갓길에 차를 멈추었다.?죄…죄송해요. 아저씨…??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얼른 내려서 바람 좀 쐬고 와라. 여긴 아저씨가 알아서 치울 테니까.?그러더니 그는?손님들, 죄송합니다. 냄새가 나더라도 십 분만 참아 주세요. 제가 깨끗이 치울게요.?하더니 어느새 고무장갑을 끼고 와서는 보기에도 민망한 그 오물들을 손수 치우는 것이다. 역겨울 만도 하련만 그는 찡그린 표정 하나 없었다. 그의 행동에 감동한 나도 거들고 싶었지만 선뜻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자, 다 됐습니다. 어이구 이런 이십 분이나 걸렸네요. 죄송합니다. 얼른 출발하겠습니다.?마치 자기가 잘못한 양 벌개진 얼굴로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 안의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리라. 다들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운전석 뒷자리에 앉은 오십 대 아저씨 한 분이 그 마음을 표현했다.?허허, 요즘 세상에 기사 양반 같은 사람도 있다니…. 내 오늘 기사양반 때문에 참 기분이 좋소.?그 말에 기사 아저씨는 버스의 시동을 걸더니 웃으며 대꾸했다.
?뭘요, 버스는 저의 집인 걸요. 제 집에 일어난 일인데 당연히 제가 책임을 져야죠.?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 어느 새 퀴퀴한 냄새는 사라지고 감미로운 팝송으로 가득 찼다.
-낮은 울타리 2002년 10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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