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마을 열린이야기

열린이야기

게시글 검색
고집쟁이 오빌 삼촌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999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6:31:54
내가 어렸을 때, 오빌 삼촌은 우리 집에서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산 적이 있었다. 삼촌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 스타였으며 잘생겼고 인기도 좋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1943년, 18살 나이로 군에 입대했다가 배를 타고 유럽에 가게 되었고, 치열한 벌지 전투에 즉각 투입되었다.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이상의 깊은 상처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 오빌 삼촌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오빌 삼촌이 우리 집으로 왔을 즈음에는 이미 알코올 중독자가 된 지 수십 년이 흐른 뒤였다.

심지어 음주 운전으로 감옥살이까지 한 적도 있었다. 삼촌은 식사 시간 외에는 방에 꼼짝 않고 틀어박혀 있었고, 우리와 함께 교회도 가지 않았다. 나는 오빌 삼촌과 한 핏줄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삼촌의 나이 예순이 되자, 힘든 육체노동과 음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오빌 삼촌은 재향군인회관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니는 매달 한 번씩 삼촌을 찾아갔다. 그때쯤 나는 결혼을 해서 친정어머니 가까이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번 동행했다.

1992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어머니의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독립기념일에 재향군인회관에서 열리는 가족 나들이 초대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종이를 가볍게 던져 버리려 하는 순간, 난 오빌 삼촌도 우리 가족임을 상기했다. 부모님이 하신 것처럼 삼촌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리라. 일주일 후, 나는 어머니 대신 오빌 삼촌의 법정 대리인이 되기 위해 사인해야 할 서류 한 뭉치를 받고 갔다. 삼촌은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넌 누구냐??삼촌이 다그치듯 물었다.?브렌다예요. 저희 엄마가 키이스 씨고요. 기억나시죠? 저희랑 함께 사셨잖아요.??들러 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날 찾아올 필요는 없다. 솔직히, 아예… 아예 오지 않아도 된다.? 삼촌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오빌 삼촌한테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도를 하기 전에 기도를 했다. ?주님께서 삼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세요.

? 나는 과거에 어머니가 썼던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내가 ?데어리 퀸?에서 초콜릿 밀크쉐이크를 사들고 오빌 삼촌의 방문을 들어선 순간, 삼촌의 눈에서 반짝 빛이 났다. 삼촌이 그걸 천천히 빨아먹는 동안, 나는 우리 가족 이야기를 했다. 오빌 삼촌은 폐렴에 걸려서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열이 치솟고 통증이 심했으며, 산소 호흡기를 쓰고도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내가 삼촌 옆에 앉아 있는데 군목이 방으로 들어왔다. ?제가 뭐 할 일이 없을까요?? 그가 물었다.

?시편 23편을 읽어 주실래요??군목이 시편 23편을 읽기 시작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그래, 그래, 됐어요.? 오빌 삼촌이 가로막았다. ?더 읽을 필요 없습니다. 돌아가셔도 돼요.?오빌 삼촌의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다.?넌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니? 이 세상에 그런 전쟁과 온갖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도???그럼요, 전 믿어요.?내가 말했다.

어느 날 밤, 병원에서 전화가왔다.?네가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넌기분이 어떻겠냐??전쟁. 알코올 중독. 감옥. 치매. 이제 나에게는 그 상처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병실에 서서, 침대 위에 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삼촌을 바라보았다. 깡마르고 지쳐 있으나 뭔가를 믿고 싶어서, 심지어는 지옥이라도 믿고 싶어서 손을 내밀고 있는 삼촌을 말이다. ?오빌 삼촌, 삼촌은 혼자가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삼촌한테는 제가 있잖아요. 그리고 하나님도 계시고요. 삼촌은 하나님의 자녀예요. 그리고 하나님은 조건 없이 삼촌을 사랑하신답니다. 이건 언제나 믿으셔도 돼요. 언제나요.?나는 삼촌을 좀 더 자주 찾아갔다. 그때마다 삼촌은 내게 시편 23편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삼촌을 찾아갈 때마다 삼촌은 당신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을 더 많이 말해 주었다. 삼촌은 항상 이렇게 묻곤 했다. ?언제 또 올 거냐?? 나는 삼촌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병실에서 나와야 할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오빌 삼촌이 산소 호흡기를 쓴 채 아무 말도 못하게 된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온갖 기계들에 기가 질린 채, 나는 야구 경기와 우리 가족, 그리고 교회 아침 식사 등에 관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삼촌이 손을 뻗치더니 내 뺨을 만졌다. 내 눈물이 나뭇가지 같은 삼촌의 손가락 위로 흘러내렸다. 삼촌은 고개를 약간 돌리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내 앞에서 찔찔 짜거나 하지 말아라.?며칠이 지난 뒤, 삼촌은 베개에 기대어 앉은 채 눈을 감고 헉헉거리고 있었다.

산소 호흡기는 떼어 낸 상태였다. ?너희 아들들은 어떠냐?? 하고 삼촌이 물었다.?잘 지내죠.? 내가 말했다. ?아주 힘든 하루였다.? 삼촌이 천천히 대답했다. ?제일 힘든 날이었어,? ?삼촌이 원하시는 만큼 오래 있다 갈께요.??그 시편을 좀 읊어 주겠니?? 삼촌이 부탁했다. 나는 삼촌이 물을 마시는 것을 도와 드린 후, 침대 끝자락에 앉아서 시편 23편을 읊기 시작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내가 다 읊자 삼촌은 ?한 번만 더.? 하고 말했다. 나는 삼촌의 손을 잡고 다시 읊기 시작했다. 삼촌은 눈을 꼭 감았다. 마치 다음 숨을 쉬는 데 온 힘을 집중이라도 하듯이. 나는 계속 읊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삼촌은 천천히 숨을 한 번 쉬더니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나는 계속 읊고 있었지만, 삼촌이 세상을 뜨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나는 삼촌의 손을 한참 동안 잡고서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이방인처럼 느껴졌던 삼촌을 내가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이해하게 되었으며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처음 삼촌이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때 난 삼촌에게 접근하는 것을 얼마나 주저했던가.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했던가. 하지만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난 주로 삼촌에 대해 생각했다. 그분은 우리 아버지의 동생이었고, 고교 시절 스타급 운동선수였으며, 상처 입은 군인이자 방랑자였다. 알코올 중독자요 까다로운 노인이며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분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였다.


고집쟁이 오빌 삼촌/by Brenda Knutson,
- 가이드포스트 2002년 10월 호 중에서-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