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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족식(洗足式)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844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6:26:3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면서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이셨다. 내가 낮아진 시늉을 하면서 남편의 발을 씻기는 일은 사실 아무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행함에 앞서는 마음이었다. 나는 이 숙제를 하기 위해 기회를 잡는데 2주일을 흘려보냈다. 내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기를 기다려 솔직한 감상문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2주 동안 기회를 잡지 못한 이유는 제자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세족식과는 거리가 먼 나의 마음 때문이었다.

내 마음이 우러나기를 기다렸다는 것은 어쩌면 내 기분에 맞추어서 거래 할 수 있는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편이 나의 처지를 이해해주지 않고 무관심 하다던가 언쟁이 있을 때는 적당한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적당한 때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때에 남편의 발을 씻겼는 데 남편은 의외로 좋아했다. 나는 발을 씻기면서 가장 고생했던 때가 언제였나 물어보고, 대답도 내가 했다. 2년 반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 나가 있을 때이었을 거라고. 남편은 뜨거운 사막에서 힘든 환경을 견디면서 장남과 가장 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많은 고생을 했다. 지금도 물론 남편이 지고 있는 십자가를 볼 때 ‥‥ 그나마 남편에게는 나의 위로와 격려가 가장 필요함도 잘 안다.

내가 필요한 사람,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우선순위로 사랑해야 할텐데 하면서도‥‥‥ 마음과 실제가 따로국밥으로 살지만 그래도 내 마음 알아주겠지 하고 나를 위로하면서 사는 것이다. 남편은 기분이 좋다며 자주 발을 씻겨 달라고 했다. 한번 씻겨 보니 별로 어렵지도 않은 주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도 나는 또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긴 마음과는 거리가 먼 꼬리 달린 대답을 했다 "내 말을 잘 들어 준다면‥‥‥“

세족식(洗足式)/홍귀순 집사



내 딸 세레나는 심한 뇌 손상을 입어 뇌성마비인 채로 태어났다. 그 애는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고 말도 전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애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나는 딸을 데리고 기구를 타러 갔다. 저 멀리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작은 점같이 작아 보일 즈음, 세레나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기쁨에 찬 함성을 질렀다. 이 일로 인해 감명을 받은 후 난 비로소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나는 기구 조종사인 필 그레이와 함께 장애인을 위한 기구를 제작했다. 거기엔 전국 최초로 휠체어를 안전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끈을 매달았다. 우리는 세레나의 친구들에게 짧은 여행을 시켜 주기 위해 ?세레나의 노래?라는 사업을 구상했다. 하지만 ?세레나의 노래?는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사업으로 발전했다. 지난 6월, 우리는 만 명 째 어린이를 태웠다. 시승 요금은 개인이나 기업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이제?세레나의 노래?는 국가의 보조를 받아 더 오랜 시간 동안 수천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신나는 기구 시승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만일 휠체어에 앉아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분이 있다면, 잠깐이나마 위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경이롭고 흥미진진한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세레나의 노래/게리 월드먼
-가이드포스트 2002년 7월 호 중에서-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직장을 잃으신 후, 용돈을 받기가 죄송했던 나는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열심히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무거운 신문 뭉치를 들고 아파트를 도는 일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신문 배달을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난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니 초등학교 2학년, 3학년이던 두 동생이 벌써 깨어 있었다. ?오빠, 오늘은 우리도 가기로 했어.? 난 동생들의 고집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 셋이서 집을 나서게 되었다.

그런데 짐만 될 줄 알았던 동생들은 생각보다 진지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말도 잘 들었고 일하는 속도도 빨랐다. 각각 할당량을 나누어 신문을 돌리다 보니 평소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었다. 신문에서 묻어난 검댕으로 온통 시커메진 동생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연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동생들은 몇 번씩이나 나를 따라 나서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 시절 우리 삼남매는 신문 배달을 하면서 용돈뿐만이 아니라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가이신문배달부 삼남매/김재한
-드포스트 2002년 7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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