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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집에서 사랑의 집으로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46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6:24:33
로스앤젤레스의 어떤 한인 교회에서 남북 간의 관계와 용서의 필요에 대해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말씀 후 어떤 연세 드신 분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한국전쟁 때 목사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상상이나 가십니까? 저는 전쟁 때 가족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보고 그 악마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한국전쟁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분과는 달리 나의 가족은 사상의 격렬한 충돌의 희생물이 아니었다.

내가 공산주의 치하에서 고생한 것도 아니며,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부당한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용서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는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곧 용서받는 것을 뜻하며, 용서받는다는 것은 곧 남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계속해서 울분을 토하던 이분이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내게 했던 마지막 질문은 "어떻게 하면 그런 큰 고통을 당하고도 용서를 할 수 있습니까?"라는 것이었다.

나는 1973년 여름으로 기억을 되돌렸다. 그 해 여름, 나는 한 일본 친구와 함께 일본 각지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신학을 공부하러 한국에 와 있는 학생으로서,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이의 평화와 화해의 사도로 수 년을 일해오던 청년이었다. 그를 아는 이들은 그가 몇 주씩 온 나라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교회나 청년부에서, 일본이 한반도에서 그 점령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저지른 잔학한 행위에 대해 일본을 대신해 용서를 구하며 말씀을 전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여름 여행 중에 우리는 히로시마에 가게 되었다. 우리는 1945년 첫 번째 핵폭탄의 참사를 겪은 히로시마에 사는 한 연세 지긋한 일본인 부부의 집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부인은 폭탄에서 나온 방사선 때문에 생긴 암으로 죽어 가고 있는 분이었다. 나는 그 부인과 남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잔학한 행위의 한 몫을 미국인들이 담당했음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상냥한 부인은 즉시 미소를 지으며 "아, 그거요? 저는 당신들을 오래 전에 용서했어요.

그렇게 큰 고통을 당하면서 어떻게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부인의 사연을 들었다. 핵폭탄이 투하될 당시 그녀는 서른 살의 젊은 고등학교 교사였다. 아침 8시경, 학교에 출근하기 전 아침기도와 묵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런 굉음과 함께 집의 지붕이 완전히 날아가고 벽은 무너졌으며 집안의 모든 것이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그녀 혼자만 손에 성경을 든 채로 덩그러니 남겨졌으며, 가족과 가르치던 학생의 다수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그녀는 충격과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고통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고통과 연민 속에서 주님께로 돌아서서 피난처를 발견했다. 무력함과 무능함 속에서 하나님께 손을 내밀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다가가 그것을 만지고 치유 받았다. 그리고 그 가족과 나라, 또한 자신의 적인 미국을 위해 더욱 뜨겁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게 되었으며,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적을 용서했으며, 그리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화해의 특사가 되었다. "그렇게 큰 고통을 당하면서 어떻게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난 그 때까지 늘 그 반대만을 생각해 왔었다. 그렇게 큰 고통을 당했는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느냐고.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예수께 복종시키는 비밀을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으며, 따라서 용서할 수 있었다. 너무나 큰 고통을 당했기에 용서할 마음이라곤 조금도 찾을 수 없었던, 그러나 끝내는 어떻게 하면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는 이분을 대하면서 난 그 부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비밀을 알아냈다. 고통이 바로 용서로 들어가는 열쇠라는 것을. 고통을 겪지 않은 자들은 용서를 선포할 수는 있어도 용서가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오지는 못한다. 또한 심한 아픔과 고난을 겪었지만 그 아픔을 나누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자들은 용서를 할 수 없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열어 놓고 그분을 우리 고통 가운데로, 그리고 심지어 우리의 깨어진 마음과 상처 입은 영혼의 고뇌 가운데로 모셔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그 고통을 능력 있는 도구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적까지도 용서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국가들을 변화시킬 새 역사를 창조할 동반자로 서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에 평화가 오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 당신과 내가 화해의 사역을 먼저 시작함으로써. 많이 용서받은 자들은 많이 용서할 수 있다. 이미 치유 받은 자들과 지금 치유 받고 있는 자들은 개개인들과 국가들에게 치유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은 위로자이신 성령께서 오사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치유와 평화, 그리고 회복을 가져오시기를 간구할 때다. 이것만이 정녕 한반도에 깊게 배인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다.

두려움의 집에서 사랑의 집으로/데이빗 E. Ross
- 예수 전도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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