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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워주신 두 분의 아버지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698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4:00:17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내 꿈은 오로지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중학교 때 산악훈련을 갔는데, 한 번은 산을 오르다가 뾰족한 바위모서리에 걸려 넘어져 더 이상 산을 오를 수가 없었다. 감독님은 내가 다친 것도 모르고, 꾀를 부린다며 야단을 치셨다.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끙끙거리며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 크게 꾸중이라도 하실 것 같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빠, 저 축구 하기 싫어요."하고 말했는데, 아버지는 놀라거나 화내시지 않고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태욱아, 많이 힘들지?" 아버지의 따뜻한 한 마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태욱아, 축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란다. 인생에는 때로는 산의 고개처럼 높은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깊은 골짜기도 있어. 그래서 그 산을 넘으려면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야 해. 그렇지 않으면 골짝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거든." 말할 것도 없이 그 뒤로 나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치열하게 나와의 싸움에 당당히 나서게 되었다. 그 때 아버지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월드컵에 출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말씀을 어긴 적이 한 번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과 프로 구단 중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했을 때였다. 나는 대학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가난한 집안 형편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미리 프로의 세계에 뛰어 들어 실력을 쌓고 싶은 마음에 안양LG에 고졸 선수로는 최고의 계약금을 받고 당당히 들어갔다. 그때 내가 받은 계약금은 1억 8천만원으로 생전 처음보는 커다란 액수였다. 구단으로부터 계약금을 받던 날, 제일 먼저 내 머리에 떠오른 분은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다.

얼른 집으로 달려가서 아버지께 통장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 그날 저녁 나는 다른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아버지께 통장을 드리면서 "아버지, 그 동안 고생하셨죠? 이젠 제가 호강시켜 드릴께요." 하고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감격하셨는지 한참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통장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셨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으며, "태욱아, 아버지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 집안 형편 생각해서 프로 구단에 들어간 것도 고맙고 또, 미안하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아버지께서는 내 통장이 마치 '가보'라도 되는 듯이 소중하게 만지시며 서랍 깊숙이 넣어 두셨다. 그날은 막내인 내가 갑자기 장남이라도 된 듯이 어깨가 으쓱해진 날이었다. 그날밤 자기 전에 나는 매일 쓰는 기도 노트에 이렇게 썼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축구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큰 돈을 받고 프로에 입단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짐을 덜어 드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 같았다. 내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나를 인도해 오신 하나님, 그 분은 또 다른 아버지였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도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십일조를 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통장은 모두 아버지께 맡겼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교회 얘기만 꺼내도 이마를 찡그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교회 다니는 어떤 분이 사기를 치고 도망간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아버지는 교회에 대한 불신은 대단했다. 이런 형편에 내가 십일조를 내겠다고 한다면 아마도 불같이 화를 내실 것이다. 어쩌면 그 동안 눈감아 주셨던 교회 출석하는 것조차 반대하실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 저어..." "뭔데, 그렇게 꾸물대냐? 사내녀석이...." "아버지, 저 돈이 좀 필요해서요." "그래? 통장 줄 테니 필요한 만큼 꺼내 써라." 그렇게 선뜻 내어 주실 줄은 몰랐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2천만원 이라는 큰 돈을 찾았다. 얼른 헌금하고 싶은 마음에 주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주일 예배시간, 내 앞에 헌금함이 오자 마자 두 손을 모아 2천만 원이 든 하얀 봉투를 넣었다. '아, 이렇게 기쁠 수가...'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던지 평소 즐겨 부르던 찬양이 절로 나왔다. 집에 들어서는데 집안 분위기가 이상했다. "태욱아!" 아버지께서는 화가 잔뜩 나신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방에 들어가 보니 아버지는 통장을 한 손에 들고 계셨는데 나를 보자 그 통장을 내 앞으로 던지시며 버럭 소리를 치셨다. "그 돈, 교회에 갖다 바쳤지?" 아버지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해졌다. 아버지는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외투를 걸치시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셨다. 아버지는 곧장 교회로 가서 목사님께 "부모 허락도 없이 어린 애가 내는 큰 돈을 받아도 되는 거요?" 하시며 큰소리로 따지셨다.

목사님께서는 "그 돈은 태욱이가 하나님께 드린 돈이니까, 태욱이가 직접 와서 설명하면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단다. 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채 집으로 돌아오셔서는 "당장, 그 돈 찾아와라." 하며 내게 고함을 치셨다. 평소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는 나였지만, 그때만은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가 없었다. "아버지, 제가 방황했을 때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건, 하나님 때문이에요. 저는 하나님을 사랑해요." 나는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씀드렸다. "제가 왜 헌금을 했는지, 앞으로 지켜보시면 아실 거예요." 아버지는 나의 당당한 태도에 놀라셨는지, 더 이상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고개만 끄덕이시는 게 아닌가?

그 후 나는 내 당당한 발언(?)처럼 더욱 축구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고,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국가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해 있었던 3차례 평가전에서 줄곧 스타팅 멤버로 뛸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십일조 사건 이후 어머니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고, 아버지께서는 이제 꼬박 꼬박 십일조를 챙겨주시기까지 하신다. 지금의 축구 선수 최태욱이 있기까지 나에게는 두 분의 아버지가 계셨다. 한 분은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이고, 한 분은 내 마음에 참 생명과 평안을 주신 분이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분께 월드컵 16강이라는 기쁨을 안겨 드리고 싶다.

나를 키워주신 두 분의 아버지/최태욱
낮은 울타리 2002년 3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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