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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 금메달 땄어요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54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3:58:55
이번 주일도 영락없이 새벽부터 잠을 설쳐야 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기도소리 때문이었다. "주여, 우리 동성이가 이번 올림픽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하게 하시고..." 낮고 깊은 음성으로 거실을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는 내가 지금 와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나는 주중에는 태능 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고 토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돌아와 모처럼만의 휴식을 갖는다. 주일 아침은 한주일간의 고된 훈련으로 쌓였던 긴장과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매주 새벽같이 시작되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에 나는 번번히 잠을 깨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방문 넘어로 나지만하게 들리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만큼 세상에서 듣기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집에 온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내 영혼의 자명종과도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부쩍 나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하신다. 아버지께는 내가 어머니를 잘 모시겠다고 약속했는데... 난 여전히 어머니의 기도 그늘아래 살아가고 있나 보다. 초등학교 때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래로 나의 응원군이자 지지자였던 아버지. 단 한 번도 "넌 훌륭한 선수가 되어야 한다.""넌 이번 경기에서 꼭 이겨야 한다." 등의 이야기로 부담을 주시지 않으셨다. "아버지 난 소질이 없나봐요. 이제 스케이트 그만 두고 싶어요." 중학교 시절 계속되는 기록 부진으로 슬럼프에 빠져 스케이트를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아버지는 달리 별말씀이 없으셨다. 그냥 묵묵히 침묵만 지키시더니, "네가 잘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난 네가 무엇을 하든 너를 믿는다." 하시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실 뿐이었다. 97년, 주니어 선수권 세계대회를 마치고 국내에서 열린 종합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그 당시 심장이 좋지 않으셨는데도 기어이 빙상 경기장까지 막내 아들을 보러 오셨다. 그 날따라 비바람이 불고 날씨도 몹시 추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 같은 환자들은 그런 날에는 외출을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빙상 경기장의 추운 공기 가운데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무리를 해서라도 아들의 경기를 보고 싶으셨나보다. 내가 출발선에서 경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관중석에 앉으셔서 손을 흔들고 계시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가 보고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나의 다리에는 팽팽하게 새로운 힘이 솟아나고 있었다. 신호탄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있는 힘을 다해 세차게 얼음 위를 달렸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내가 경기를 다 마치고 난 뒤였다.

아버지는 빙상 경기장에서 그렇게 나를 지켜보시며 임종을 맞으셨던 것이다. "아버지, 이러실 거면 왜 경기장에 나오셨어요? 네..?" 절규하면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서 조용히 울려왔다. '혹시 아버지는 이 때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신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를 보러 오신 것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난 내 인생 최고의 슬럼프를 맞이하게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개최되는 나가노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아버지의 빈자리는 나에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인생의 무게로 다가왔다. 게다가 무릎부상으로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조차 없었다. 수술 이후에도 통증은 가시질 않았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부어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전 며칠전에 국가 대표 빙상팀은 음식을 잘못 먹고 집단 장염에 걸려서 또 한번 몸을 축내야 했다. '이 상태로 메달은커녕 결승에 출전하기도 힘들겠다....' 일단 나가노 올림픽 대회에는 참여했지만 실제 경기는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퉁퉁 부은 발에 힘을 싣고 출발선에 선 채 신호탄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탕!" 드디어 나가노 올림픽 소트트랙 남자 천미터 경승의 신호탄이 떨어졌다.

무릎의 통증도 얼음판 위를 달리고자 하는 내 스케이트 날을 붙잡지는 못했다. 내 옆에는 세계 랭킹 1위인 중국의 리자준 선수가 바짝 붙어서 달리고 있었다. 좁은 코너를 엄청난 스피드로 돌아갈 때면 부상당한 무릎과 발목이 제대로 힘을 받쳐주지 못해서 경기장 바깥으로 튕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나를 보러 스케이트장까지 오시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던 아버지가 지금 이순간에도 지켜보실 것만 같았다. 결승점이 점점 가까워 왔다. 중국의 리자준은 나에게 한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은 채 공기를 가르며 달려나갔다. '이러다간 동시에 들어가겠는 걸.' 이런 생각이 퍼뜩 들자마나 내 앞 발에는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결승점을 향해 스케이트의 날이 조금 더 깊고 멀리 힘껏 내밀었다. 세간에 유명해졌던 '칼날 내밀기'였다. 1초도 안되는 사이에 나한테 어떻게 그런 지혜가 어떻게 떠올랐을까? '1위 김동성, 1분 32초 375' '2위 리자준, 1분 32초 428' 불과 0.053초의 미세한 차이가 나가노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나에게 안겨준것이다. '아버지 저, 금메달 땄어요' 태극기를 가슴에 펼친 채 링크를 한 바퀴 돌 때 내 얼굴은 어느새 눈물 범벅이 되었다. 뜨거운 박수가 관중석으로부터 끝없이 터져나왔다. 금메달을 가슴에 걸고 귀국하자마자 달려간 곳은 아버지의 묘였다.

아버지의 비석에 금메달을 걸어 드리고나서 약속 한가지를 했다. "아버지, 이젠 걱정마세요. 어머니는 제가 잘 돌보아 드릴께요." 2월 8일부터는 2002년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동계 올림픽이 시작된다. 동계 올림픽은 사람들의 관심을 잘 받지 못하는 대회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월드컵에 밀려 더더욱 조용한 분위기인 것 같아 아쉬움이 없지 않다. 사람들은 매년 나에게 '이번에도 1등이 목표지요?' 하고 묻는데 그런 면에서 난 좀 승부욕이 없는 것 같다. '이겨야지, 반드시 이겨야지'하는 생각따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생각은 무리한 플레이를 하게 되어 결과가 항상 좋지 않다. 나는 그저 마음을 비우고 '이번에는 예선진출이다. 그래, 이번에는 목표로 삼는다. 여태까지 나의 우승과 메달들은 모두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들이다. 이번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에서도 나는 그 마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얀 얼음 위를 힘차게 달려 나갈 것이다. 나를 일으켜준 한마디 : 네가 무엇을 하던 나는 너를 믿는다. -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 저 금메달 땄어요/김동성 선수/낮은 울타리 2002년 3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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