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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 덮어 주기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37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3:53:19
내가 그 가족을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들은 우리 식구와는 영 딴판이었으나 만난 순간부터 편안함을 느꼈다. 그 가족은 내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귀게 된 제인 화이트네 가족으로 그들은 내가 놀러갈 때마다 이방인인 나를 오래 전에 헤어진 사촌을 만난 듯 반갑게 반겨 주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우리 가족은 문제가 생기면 누구 책임인지 추궁하기 바쁜 집안이었다. "누가 이랬니?" 엄마는 부엌이 더러워졌다며 소리를 치셨다. "이건 다 너 때문이다, 캐서린." 또한 고양이가 없어지거나 식기 세척기가 고장나면 아버지는 항상 내 탓으로 돌리셨다.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서로 티격태격했는데, 저녁 식사 시간은 아예 서로를 탓하고 나무라는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화이트 가족은 누가 무슨 잘못을 했건 탓하지 않았다. 그들은 작은 힘들을 모아 삶을 이끌어나갔다. 그 아름다운 모습 때문인지 나는 제인이 세상을 떠난 그 여름이 더욱 사무치게 기억에 남는다. 화이트 부부에게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아들 셋, 딸 셋. 그 중 한 아들이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서 그런지 남은 다섯 남매의 우애는 참으로 깊었다. 어느 해 6월, 나는 제인의 자매와 플로리다에 있는 집에서부터 뉴욕까지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했다. 맏딸 세라와 둘째 제인은 대학생이었고 막내인 에이미는 막 열여섯 살이 되었다. 처음으로 운전 면허증을 갖게 된 에이미는 막 으쓱해서, 여행 길에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애교 넘치는 웃음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운전 면허증을 자랑하곤 했다.

처음 길을 떠날 때는 두 언니가 번갈아 가며 세라의 새 차를 운전했지만 조금 한적한 곳에 다다르자 에이미에게 운전을 맡기기로 했다. 우리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어디쯤에선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식사를 했고, 식사 후에는 에이미가 운전대를 잡았다. '정지' 간판이 세워진 교차로에 도착했는데 그 간판은 에이미 쪽에서만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잠깐 당황을 했는지, 한눈을 팔았는지 아니면 무심코 지나쳤는지는 지금도 알 길이 없으나 아무튼 에이미는 멈추지 않고 교차로로 진입했다. 그때 대형 화물차의 운전사가 미처 브레이크를 밟을 새도 없이 우리가 탄 차를 들이받았다. 제인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나는 몇 군데 긁힌 것 말고는 무사했다.

하지만 화이트 부부에게 제인의 사망 사고를 알리는 건 정말 힘들었다. 좋은 친구를 잃은 내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야 오죽 했을까. 병원에 도착한 화이트 부부는 살아남은 두 딸이 같은 병실에 누워 있는 걸 보았다. 세라는 머리에 붕대를 감았고 에이미는 다리에 석고 붕대를 했다. 두 분은 우리를 끌어안으며 한 딸을 잃은 슬픔의 눈물과 무사한 두 딸을 보게 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또 딸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목발 짚는 연습을 하는 에이미를 놀려서 웃음 짓게 했다. 화이트 부부는 두 딸에게, 특히 에이미에게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너희들이 살아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난 너무 놀랐다.

두 분은 에이미를 절대 비난하지도 탓하지도 않으셨다. 얼마 뒤, 내가 화이트 부부에게 에이미가 '정지' 간판을 보고도 계속 운전한 사실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 이유를 묻자, 화이트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도 죽은 제인이 보고 싶지. 하지만 무슨 수를 쓴다 해도 제인은 살아 돌아오지 않아. 그렇지만 에이미는 앞길이 창창해. 언니가 자기 잘못으로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면 에이미는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거야." 그분들이 옳았다. 에이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몇 해 전에 결혼했다. 지금은 학습 장애자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어린 두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한 에이미는, 맏딸 이름을 제인으로 지었다. 나는 화이트 부부에게 책임을 따진다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아니, 때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걸 배웠다.

허물 덮어 주기/캐시 존슨 게일/사랑과 용기를 주는 101가지 이야기/씨앗을 뿌리는 사람중에서-

내 마음 속의 자

언제부터인가 나는
마음속에 자를 하나 넣고 다녔습니다.

돌을 만나면 돌을 재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재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재었습니다.

물위에 비치는 구름을 보며
하늘의 높이까지 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가 지닌 자가
제일 정확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잰 것이 넘거나 처지는 것을 보면
마음에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확실하게 살아야한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가끔 나를 재는 사람을 볼 때마다
무관심한 체하려고 애썼습니다.

간혹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틀림없이 눈금이 잘못된 자일 거라고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한번도
내 자로 나를 잰 적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아직도 녹슨 자를 하나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재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

이주황(청년 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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