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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음의 종소리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614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3:46:30
2차 대전이 치열하던 1944년. 낙하산 부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가한 존 헤론 대령은 사세(事勢) 불리하여 독일군에게 쫓겨 가난한 시골 마을 헤므루까지 밀려갔다. 부대는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속으로 계속 후퇴 할 수밖에 없었다. 눈이 쌓이면 쌓일수록 부대원들의 움직임은 흰 눈 더미 속에서 너무도 선명하게 노출되었다. 차폐물도 없었고 나무는 헐벗어 은폐할 곳이 없었다.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부에 도움을 받을 길도 아득했다.

대령은 참모들을 모아 놓고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인가 회의를 했다.
"겨울철 전투에서는 의례 흰 군복을 입게 마련이나, 우리는 지금 아무 것도 보급을 받을 방법이 없다"
참모 한 사람이 의견을 내었다.
"우리가 적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하며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나아가 공격을 시도하려면 우선 하얀 침대보라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부대원이 쓸 침대보를 갑자기 어떻게 구할 수 있겠나?""마을의 읍장을 만나시지요. 나중에 반듯이 돌려준다는 약속을 하고 도움을 청해 보십시오"

헤론 대령은 읍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간절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예 알겠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가, 연합군이 독일군을 얼른 무찔러 전쟁이 끝나기를 목 늘여 기다리고 있으니 침대보 하나를 아까워 할 집은 없을겝니다"
"사실은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렇겠지요. 한 집, 한 집 찾아다니며 거두려면 시간이 걸릴겝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우리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종탑의 종이 있으니까요"

다음 날 아침, 읍장이 종탑에 올라가 종을 쳤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이 침대보를 가지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침대보 200여장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종소리!
헤론 대령은 감동했다. 마을 사람들의 순진하고 착한 마음이 얼마나 고맙던지.... 그러나 그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침대보를 찢어 철모를 싸고 총을 싸매고, 망토처럼 만들어 몸을 감싸기도 했다. 눈 위 어디를 다녀도 눈에 띠일 염려가 없었다. 얼마 후, 독일군의 대공습이 있었으나 헤론 대령의 부대는 독일군의 눈에 띄지 않고, 오히려 독일군을 역습하여 전승(戰勝)을 거두었다. 독일군은 공습을 계속하면서도 적의 위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렇게 전쟁은 끝이 나고 겨울도 지나갔다. 침대보로 위장복(僞裝服)을 만들어 위기를 면하고 전쟁에 승리를 거두었던 병사들은, 누더기가 된 침대보를 벗어 던지고 개가(凱歌)를 울리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1947년 가을 어느 날. 존 헤론은 우연히 신문기사에 눈이 갔다. 전쟁이 휩쓸고 간 마을을 취재한 신문기사였다. ".....그 때 미국 군인들이 우리 마을의 침대보를 몽땅 가져 갔습니다. 가져 가면서 그들은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돌려 주셔야지요...."

헤론은 깜짝 놀랐다. 세상에! 자기가 한 약속을 이렇게 잊고 있었다니.... 그는 신문사에 헤므루 마을에 침대보를 돌려주겠다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의 편지가 기사화 되어 다시 신문에 게재되자 이번에는 존 헤론의 집으로 침대보와 담요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수년 전, 헤므루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침대보를 가져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존 헤론의 집 앞에 사람들이 침대보와 각종 구호물자를 전하기 위하여 줄을 서 있었다. 아! 아름다워라! 사람! 헤론은 목이 메었다. 드디어 존 헤론 대령은 수 천장의 침대보와 각종 구호물자를 싣고 헤므루에 도착했다. 그는 벅차 오르는 감정을 안고 종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종을 치기 시작했다. '뎅그렁! 뎅그렁!'
평화의 종소리가 온 마을에 퍼져나갔다.

-주부편지 2001년 10월 호 중에서-


펄벅의 고백

펄벅의 고백「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의 글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나는 내 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딸은 내게 인내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지요. 우리 가족은 모두 동작이 느린 사람을 가만히 두고보지 못하는 급한 성격입니다. 물론 나도 둔한 사람에 대해 참을성이 없는 가족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런 내가 정신이 박약한 딸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나는 힘든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으로서 평등하고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내게 분명히 가르쳐준 건 다름 아닌 내 딸이었습니다. 만약 내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나보다 능력이 못한 사람을 참을 수 없어 하는, 몹시 거만한 사람이 되어 그런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지 않았을까요? 딸은 나에게 참다운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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