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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백명의 죄수를 먹이는 교수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510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3:43:37
찰스 콜슨은 보스턴에서 태어나 미국의 명문 대학을 두 곳이나 거치고, 월남전에 참가해서 무공을 세운 사람이요, 혁혁한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가서 드디어 닉슨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 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범죄자로 몰락하고 교도생활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출감한 후 새 사람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교도소의 죄수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감화력 있는 좋은 책들을 저술하며, 복음적인 신앙의 기수로 앞장서서 일하는 강한 일꾼이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콜슨이 아프리카의 동남부에 있는 큰 섬인 마다가스카르 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마다가스카르 대학교의 어원학 교수였던 파스칼이라는 크리스천을 만났다. 다음의 글은 찰스 콜슨이 파스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파스칼 교수는 그냥 형식상으로만 크리스천으로 살았고, 실제 마음속으로는 교만하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나라에 공산당의 반란이 일어나고, 그 때 파스칼은 감옥에 던져졌다. 그 후 파스칼은 교도소의 감방 안에서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주님을 체험한 그는 그 때부터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파스칼은 교도소에서 나온 후 아내와 함께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일 주일에 한 번씩 꼭 아내와 함께 교도소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한번은 교도소의 진료실 앞에 즐비하게 놓여져 있는 약 60구의 시체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간호사에게 혹시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간호사의 대답인즉 전염병이 아니라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들인데, 한 주일에 평균 70명이 죽고, 많을 때에는 백 명 정도가 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간호사는 계속 말하기를, 현재 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5천 명인데, 교도소의 식량은 2천 5백 명분밖에 보급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파스칼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에는 구호기관도 없고, 도와줄 만한 큰 교회도 없었다. 집에 돌아온 파스칼 부부는 그 날 밤이 깊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즉 자기 집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음식을 가지고 교도소를 찾아가서 700명이 죽지 않고 살아 있도록 먹게 해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찰스콜슨이 파스칼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도와 드릴 것이 있을까요?" 그러자 파스칼은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늘 잘 채워주시니까요." 오늘도 헌신된 한 크리스천 부부의 사랑과 노력으로 7백 명이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

- 신발 한 켤레의 사랑/요단 중에서-


그를 위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클레이는 영국런던의 빅토리아 정거장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가 출발한 지 약 한 10분쯤 지났을 때,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한 청년이 경련을 일으키며 의자에서 가차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마구 몸을 뒤틀며 무섭게 떨었다. 간질이었다. 그러자 그와 함께 앉아 있던 청년이 그를 의자 위로 들어 올려 눕히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머리 밑에 베개를 받쳐주고, 담요를 덮어주는 것이었다. 그 청년은 바클레이를 향하여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친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간질이 오는데, 바로 이틀 전에 있었거든요. 이렇게 빨리 또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청년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친구와 저는 월남전쟁에서 함께 싸운 전우입니다. 이 친구는 영국인이고, 저는 미국인입니다. 베트콩과의 전투에서 우리 둘은 모두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저의 한쪽 다리는 날아가 버렸죠." 이야기를 계속하며 바지 부리를 걷어 올리는데 자세히 보니 의족이었다. "그리고 이 친구는 바로 자기 옆에서 터진 수류탄으로 인해 한 쪽 가슴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를 구조하러 오던 헬리콥터는 베트콩의 포화를 맞고 추락해 버렸지요. 우리에게는 죽는 일밖에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두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러더니 내 군복을 움켜잡고 나를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발자국을 디딜 때마다 가슴에 박힌 수류탄 파편 때문에 신음했습니다. 나는 결국 죽을 몸이니 그냥 놔두고 가라고 계속해서 말렸지만 그는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고 하면서 악착같이 나를 끌고 갔습니다. 자기 혼자 살 길을 찾기에도 필사적인 상황에, 그는 결국 나를 이끈 채 정글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출되었지요." 그는 잠시 멈추더니 말을 이었다. "3년 전 나는 이 친구에게 간질 증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마침 독신이었기에, 미국의 집을 팔고, 은행의 돈을 찾아서 친구를 돌보기 위해 영국으로 왔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언제나 곁에서 돌봐주어야 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나는 친구와 늘 이렇게 함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껏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바클레이는 청년에게 말했다. "나에게 조금도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는 내가 들은 이야기 중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청년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 친구가 나를 위해 해 준 일을 생각한다면, 내가 그를 위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 신발 한 켤레의 사랑/요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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