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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위한 마라톤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522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3:41:29
대이비, 드디어 대망의 날이 밝아 왔구나!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안개 낀 새벽에 운집한 6천 명의 마라토너들 중에서 두 살짜리는 너 혼자뿐일 거야. 난 우리가 충분히 완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우리는 엄마를 위해 이 일을 하는 거란다. 아니, 너는 아직 어려서 엄마를 위해서 마라톤을 한다는 것은 이해 못하겠지?’나는 어렸을 때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러나 자라면서 난 자존감을 거의 느끼지못 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계획했던 일들은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앤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 역시 우여곡절을 겪으며 갈등하다가 내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것과 비슷한 인생의 목표를 이미 이룬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내게 자극을 주고 격려해 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장애인을 위한 청소년 기구에서 일하고 있었다. 금발에 약간 체격이 큰 그녀는 깊은 신앙심과 훌륭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미 육군 장교로서 그녀는 상담학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앞날이 확실한 사람이 나 같은 사람에게 로맨틱한 관심을 보인 것이 내겐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의 독려로 ‘나는’ 공군에 입대했고 세계에서 가장 재미없는 경계 임무 지역인 노스 다코타 주의 미노트로 파견됐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나는 앤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새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사실은 앤에게 나와 결혼해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전화로 청혼을 한다는 것이 로맨틱하지 못한 것 같았다. 1983년 8월에 우리는 결혼했다. 1년 뒤에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되었다.

우리 앞에는 희망찬 나날만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해 12월, 아내가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해는 아내의 병이 점점 악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했던 한 해였다. 아내의 투병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나의 믿음에 대한 실제적인 시험이었다. 막판에 가서는 영적으로 너무나 약해져서 나는 기도마저 할 수 없었다. 1년 후, 1987년 1월에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나에게 대이비를 남겨 두긴 했지만 내가 앞날에 걸 수도 있는 모든 소망을 송두리째 가져가 버렸다. ‘이제 마라톤 출발 신호원이 “출발선상으로!” 라고 소리치고 있단다. 대이비! 이제 결전의 순간이다, 우리가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아주 오랫동안 아빠는 도저히 인생의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단다.’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반대편 근육이 경련을 일으킨다.

한 발짝도 더 옮기지 못하겠다. 그냥 바닥에 누워 버리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허리 전체에 온통 경련이 인다. 이사야 40장 31절 말씀을 외워본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나는 달릴 수가 없다. 거의 걸을 수도 없다. ‘사랑의 하나님, 도와 주세요. 제발, 도와 주세요!’ 이런 절망감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전에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내의 장례식 후에 샌디에이고에서 잠시 쉬다가 돌아와 텅 빈 집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도, 나는 다른 종류의 “벽”에 부딪쳤었다. 그것은 슬픔과 죄책감과 단절과 공허의 벽이었다.

더 이상 나를 격려해 줄 아내가 없었다. 나는 무척이나 많은 일을 아내의 도움으로 해냈다. 그런데 그녀 없이 어떻게 그 모든 걸 계속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나는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냉담해져 있었다. 아내 없이 내가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18내지 20마일 지점. ‘대이비, 우리는 이 경기를 완주해야만 해! 내가 걸어야만 할 지경이라면, 물론 걸을 수 있는 한, 난 걸을 거야.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다리의 경련을 제발 풀어 주십시오. 다시 출발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는 일이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개월 동안 아내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암지원협회를 나는 돕고 싶었다. 그를을 돕기 위해 마라톤을 해야 한다.

나는 처음으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도를 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아내를 치유하셨을 것입니다. 뜻이 있어 아내를 데려가시고 저는 이곳에 남게 하신 거지요?
분명 하나님께서는 제가 혼자서도 충분히 대이비를 키울 만하다고 여기셨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저를 홀로 남겨 두지 않으셨을 겁니다.”
우리가 언덕길의 마지막 코스에 접어들었을 때 커브길을 따라 꼬마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초등학생들임에 틀림없었다. 대이비를 보자 그들은 미친 듯이 함성을 지르며 갈채를 보냈다. 통증과 피로는 나를 덮쳐 곧장 나를 주저앉아 버리게 할 것만 같다. “주님, 갈 길이 너무 멉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주님께서 저를 데려다 주셔야 겠습니다.” 나는 숨을 헐떡였다. 한 걸음도 더 못 걸을 것 같았을 때, 바로 결승점이 보였다. 결승점이다!‘우리는 해냈구나. 아들아! 저 환호하는 군중들이 보이지 않니?

그들이 우리에게 갈채를 보내고 있어! 저기 친구들, 그리고 할아버지도 계시는구나. 모두가 우리를 환호하고 있어. 하나님께서도 여기 우리와 함께 계셔. 하나님께서 전 구간을 우리와 함께 달려 주셨단다. 이제 나는 그분을 느낄 수가 있구나.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분의 존재를 느낄 수가 있게 되었어. 그리고 또 있단다, 아들아. 엄마도 또한 우리와 함께 있단다. 대이비, 너와 나는 끝까지, 끝까지 버틸 거다. 너의 엄마가 우리를 무척 자랑스러워 할 거야. 여기서 단순히 마라톤이 끝나는 건 아니란다. 긴긴 인생의 마라톤에서 우리는 겨우 첫발을 내딛은 거니까 말이야.’

가이트 포스트 2000년 3월 호 중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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