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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下水口) 박사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883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3:37:49
시각 장애인인 내가 이른 아침 조깅을 시작했습니다. 맹인견(盲人犬) '위대'를 분양 받은 뒤에 시작된 기쁜 일이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귓가에 들립니다. "저 사람 말이야 맹인 법학박사야! 참 대단하다!" 그렇습니다. 저는 1996년, '장애인 고용제도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맹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강원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나는 기분 좋게 뛰면서 생각합니다. '충성스러운 개 한 마리도 이토록 큰 위안을 주는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데 내가 무엇인들 해내지 못하랴!' 하나님이 함께 하신 나의 삶, 그 아름다운 기적을 몇 줄 글로 어찌 다 간증을 할 수 있으랴. 강원도 화천이 고향. 6. 25때, 4살, 미군 트럭에 실려 피난민 수용소에 이르러 불결한 환경과 영양실조 때문이었는지 완전 실명(失明)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우리 집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판자집, 그 또한 맹인인 원장이 운영하는 맹학원에 보낸 일이었습니다. 밤에는 추위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아카시아 순이며 벌레며 닿는대로 입에 넣어가며,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견뎠습니다. 같은 반이었던 강영우 박사(연대 진학. 후에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은) 등 그 때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가 그때 생식(生食)을 했던 것이 지금까지 남다른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 행운이 아니었겠나?" 그러면서 웃습니다. 그 무렵, 가난은 쉽게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집 근처에 상급학교가 없었기에 중고등학교를 서울 국립 맹아학교에서 공부 할 수 있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맹인들에게 장래를 보장한대야 안마나 침술이 고작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맹인 학생을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 입학의 꿈을 감춘 채 고향으로 돌아와 맹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너무도 공부가 하고 싶어, 1년 후에 강원대학 법학과에 지원을 했습니다. 국립대학이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습니다. 주위에서는 앞을 못 보는 장애를 안고 정상인들과 어떻게 경쟁을 할 것인가 염려와 핀잔이 이어졌지만, 놀랍게도 저에게는 수석입학의 영예가 주어졌습니다. 저는 맹인들이 짚고 다니는 하얀 지팡이를 버렸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늘 하수구에 빠져서 허덕였지만 장애인이 남의 도움 없이 생활하기가 어렵다는 의식을 바꾸기 위한 의지를 고집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아가며 학부과정을 마쳤고, 75년에는 맹학교 자원봉사자로 만났던 인연으로 아내를 만났습니다. 맹학교 교사를 중단한 뒤여서 마음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침술원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에게 시술을 받은 환자들이 치유를 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유명해졌고 생활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의 불이 좀체로 꺼지지 않은 채여서 86년에 대학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10년만인 96년에 박사학위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아아..나의 삶을 함께 살아주신 주님의 은혜여! 저 자신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정상인들이 흘리는 땀보다 몇 십배 더 땀을 흘려야 겨우 그들과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회에는 겉으로 보이는 장애인 보다 더 많은, 사랑의 결핍으로 생긴 마음의 장애인이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사랑과 부활의 능력 안에서 그 장애들이 치유가 될 때에 이 사회는 얼마나 따뜻하고 밝아지겠습니까. -주부

법학박사 길인배/ 편지 2001년 7월호 중에서-


바람과 함께 가는 배

한 음악가가 있었다.
그는 질병으로 반신불수 상태였다.
질병 치료를 위해 많은 돈을 빌렸으나 이를 갚지 못해 감옥에 갇혔다.
이 절망적인 순간에 그는 악보를 펴놓고 창작에 몰입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세계적인 음악가 헨델. 그리고 감옥에서 만든 작품은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할렐루야'다. 또 다른 한 소년이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다. 사람들은 그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수군거렸다.

소년은 학교에 결석하는 날이 많았다.
체육시간이면 운동장 한쪽 구석에 앉아 친구들이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구경하거나 책을 읽었다.
소년은 몸이 약한 대신 달변가였다.
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 선생님으로 불린 이 사람의 이름은 스티븐슨, 소설 <보물섬>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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