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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금 행복하냐?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659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3:25:31
농촌목회 20년, 나름대로 젊음과 정열을 다하여 열심히 뛰었노라 자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1998년도는 제게 있어서 가장 힘든 한 해였기 때문에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일꾼이 없는 시골의 작은 교회라서, 제가 할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많이 마음쓰는 부서는 학생회입니다. 목사관 옆에는 중학교가 있는데, 주말이면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에게 부침개도 해주고 쪽지도 나누어주면서 전도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하다보니, 학생회가 제법 커졌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문화에 거의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어서, 저로서는 금방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까지 가서 찬양 집회에도 참석하고 각종 수련회에도 참가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하룻밤 묵어야 할 경우에는 서울에 있는 교회의 교육관을 빌려서 흥부엄마처럼 여러 아이들을 끌어안고 함께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차츰 교회생활에 익숙해졌고, 산골마을 작은 교회이지만 찬양 팀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학생회의 활발한
활동으로 인하여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기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상급학교 진학과 직장관계로 학생들이 교회를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1998년도에는 열네 명의 학생들이 이곳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너무나 컸습니다.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악기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는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건만, 그 해에는 그 떠난 자리가 유난히도 저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했습니다. 아마, 학생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상승곡선을 긋고 있던 교회 분위기가 다시금 뚝 떨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때에, 텅 비어있는 회중석 앞자리가 제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주로 노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노인들마저 하나둘 하늘나라로 떠나가셨기 때문에, 그 자리가 텅 비어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렵, 데려다가 키우던 아이까지 친 엄마가 와서 찾아가게 되자, 저는 진한 고독감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는 게 너무 힘들었던지 가슴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고열에 시달려 몇 달 고생하다가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친정 어머니가 찾아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음식을 먹여주면서 "행복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친정어머니가 왜 갑자기 '행복하냐'고 묻는지 의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님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다시 말씀하시기를 "네 어렸을 적의 꿈이 이루어졌는데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항상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 꿈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시골교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겠다'고 한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러자, 감사한 마음이 생기면서 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시골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서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친정어머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에 새로운 용기와 힘이 솟구쳤습니다.

이제는, 저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이웃교회의 사모님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그 고독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몇 분 안 되는 노인 성도들만 있는 교회들이 우리 주변에는 아주 많습니다.
'노인들과 함께 교회를 지켜 가는 것만으로도 숭고한 삶이 아니겠느냐? . -영춘교회/서혜숙/주부편지 2월호 중에서-


단 두줄의 편지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술에 취했다 하면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손찌검까지 하셨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아버지는 관절염이 심해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늘 술에 빠져 지내셨다. 그날도 아버지는 잔뜩 취해 어머니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고 계셨다. 그런 모습에 화가 폭발한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제발 그만 좀 해요. 한두 번도 아니고… 부끄럽지도 않아요?‘엄마 불쌍한 사람이다. 너희들 엄마한테 잘 해야 한다.’맨날 그런 말 하면서 왜 엄말 그렇게 못살게 굴어요.

아버진 그런 말 할 자격도 없어!”그 일이 있고 나는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아버지도 그 동안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으셨는데 그렇게 닷새째 되던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다시 술을 들고 계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찾으니 어서 가 보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실망이 컸던 나는 내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안절부절못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안방으로 건너갔더니 아버지는 이미 잠들어 계셨다. 잠든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쇠약해 보였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늘어진 눈꺼풀, 푹 패인 볼, 내려앉은 어깨, 핏줄이 심하게 불거진 가느다란 손…. 돌아서 나가려는데, 아버지 옆에 하얀 종이쪽지가 눈에 띄었다.

얼마나 매만졌는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 종이를 펼쳐 든 순간 눈앞이 흐려졌다.‘막내에게, 미안혔다’라는 단 두 줄의 편지.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아버지는 삐뚤어진 글씨로 그렇게 당신의 마음을 적어 보인 거였다. 그리고 그 옆에 다 부서져 버린 초코파이가 있었다. 눈도 안 맞추고 말도 하지 않았던 며칠 동안, 마루에 앉아 주머니 속에서 자꾸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물 속으로 번져 갔다./ 유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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