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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은우 살려 주세요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831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3:19:28
“은우를 살려 주세요.”꼬깃꼬깃한 백 달러 짜리 지폐가 태평양을 건너 온 편지 속에 들어있었다. 겉봉투에는 은우네 주소 대신 은행계좌번호만 적혀 있었기 때문에 우체국에선 주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언제나 푸른하늘에 소개된 은우이야기를 보고 미국에 있는 십대 초반의 독자가 용돈을 아껴 보내 온 돈이었다. 은우 어머니 한정 씨는 어렵사리 주인을 찾아 온 편지봉투를 받아들고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은우를 위해 혈소판을 헌혈한 군인들도 있었다. 두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서 매일 한 명씩 아무 대가도 없이 와준 것이다.

낮은울타리에 소개된 후 은우네는 새로운 일이 생겼다. 하루에 한 번 은행에 통장확인을 하러 가는 일이었다. 낮은울타리 독자들이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는지 통장의 돈은 계속 늘어갔다. 많은 돈을 입금해 주시는 건 아니었지만, 이만원, 만 원, 오천 원, 우리네 이웃의 주머니돈이 은우의 통장으로 들어왔다. 아이의 장난감을 보낸 독자, 수련회 대신 은우를 돕겠다고 수련회비를 보내온 독자, 매일 기도하겠다고 울먹이던 독자, 옷을 세탁해서 보낸 독자, 택배상자 가득 과자를 사서 보낸 독자도 있었다. 돈을 적게 입금해 미안하다며 다음에 꼭 더 많이 입금하겠다는 독자의 전화에 은우 가족들은 울고 말았다.

물이 바다를 덮는다는 건 이런 의미일까. 만 원 이만 원씩 모이기 시작한 통장 잔고가 삼천만원이 되었다. 이제 은우가 조금만 버텨 주면 수술할 가능성이 보였다. “엄마, 어.. 엄마.”은우 목에서 그르르 그르르 하는 소리가 났다. 한정 씨가 고개를 돌려 보니 은우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었다. 은우의 작은 몸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그 피는 휴지를 다 적시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정 씨의 눈 앞이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사이 멀리서 삐뽀삐뽀하는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응급실에 실려간지 꼭 일 주일 만이었다.

“돈이 얼마가 더 들지 모릅니다. 아이가 얼마나 견뎌주느냐에 따라 수술비가 달라집니다. 육천에서 일억까지 생각하십시오.”의사의 말은 한정 씨를 더욱 답답하게 했다. 은우의 응급 상황은 계속되었다. 정상인이라면 십만이 훨씬 넘는다는 혈소판 수치가 팔천까지 떨어졌다. 이만 아래만 돼도 보통 사람 같으면 온몸에 멍이 들고 지혈이 되지 않는 수치였다. 수술 받지 않으면 백혈병으로 전이되고 그러면 이제 희망이 사라진다.

4월 19일. 은우가 입원해야 하는 날이다. 그래야 정해진 날짜에 수술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예치금 육천만 원이 없으면 입원할 필요도 없다. 수술할 수 없으니 그저 누워 있다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아야 한다. 18일, 한정 씨는 새벽빛을 보면서 자고 있는 은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오늘이 지나면 은우는 입원하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곧 죽을 것이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원무과 직원이었다. 육천만 원이 없으면 입원 수속도 밟지 말라던 직원이었다.“누군가 은우를 위해 이천 오백만 원을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삼천 오백만 원 준비 됐다고 하셨지요? 당장 입원 준비하십시오.

”누굴까. 누가 딱 육천만 원을 맞춰서 보낸 걸까. 한정 씨는 전화를 들고 멍하니 있었다. 이거구나, 더디 치료하신다는 말이 바로 이거구나.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육천만 원.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누가 그 액수를 정확한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누가… 누가… 누가…. 겨우 입원을 시켜 놓았지만 은우는 수술을 할 수 없었다. 육천만 원으로 수술을 하려면 오만원 이상 재산세를 내는 보증인 두 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미 친척들은 오래 전에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돈이 없으면 죽으라고 했던 사람들이었다.

한정 씨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밖에 보증인이 없는 거 아시지요. 한정 씨의 기도가 눈물로 잦아 들어갈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보증인 필요 없습니다.” 원무과 직원이었다.“우리 병원에 후원하시는 분이신데 은우 얘기를 듣더니 부족한 금액은 자신이 더 후원할테니 보증없이 그냥 수술시키라고 하더군요. 수술 합시다.”하나님은 사람들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응답하신다. 은우의 가슴을 뚫어 헤크만 줄을 집어 넣었다. 그곳으로 조혈모 세포가 은우의 골수로 들어가면 은우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생명줄 헤크만, 줄이 빠지면 은우도 죽게 된다고 의사는 몇 번 주의를 시켰다.

뚝뚝. 작은 병에 담긴 액체가 긴 줄을 타고 은우의 가슴으로 들어왔다. 영롱한 붉은 색 조혈모 세포가 은우의 가슴으로 떨어지고있었다. 한정 씨는 멍하니 떨어지는 액체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나님이 만드신 인체.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은우. 줄을 타고 은우의 가슴으로 들어간 조혈모 세포는 은우에게 새 피를 줄 것이다. 감사함과 흥분, 그리고 안도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밀려 왔다.

하나님. 이제는 당신의 아이입니다. 한정 씨는 은우의 작은 손가락에 자기 손을 가져다대며 몇 번이고 말했다. “장담합니다. 9월만 지나가면 은우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정상아가 되는 것이죠.”은우의 가슴에 꽂아 둔 헤크만 줄이 이식 다음 날 빠진 것으로 약속은 시작되었다. 하루만 일찍 빠졌어도 즉시 사망이라는 말에 한정 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퇴원해서 돌아온 며칠 후 은우는 다시 입원했다. CMV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백혈구 20만개 중 27개가 바이러스라고 했다. 일반인 같으면 비웃을 수치지만 이제 막 이식을 끝낸 은우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만일 바이러스가 폐로 갔으면 폐혈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비교적 안심할 수 있는 장으로 갔다. 지금 은우는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그러기에 한정 씨는 기도의 끈을 늦출 수 없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새롭다. 은우가 쌍코피를 터뜨리며 다니지 않아도 되고 혈소판 수치가 떨어질까봐 밤새워 아이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은우는 하나님의 아이다. 하나님이 살리신 아이다. A형 아빠, O형 엄마인 집의 은우는 B형이다. 골수 이식을 하면서 혈액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은우는 엄마, 아빠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식이다. 살아가면서 혹 그걸 잊어버릴까봐 하나님이 혈액형까지 바꿔놓으신 것이다.

우리 은우 살았어요!
낮은 울타리 10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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