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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며느리 시어머니 모시기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83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1:02:16
나는 둘째 며느리다. 남편에게는 형이 있고 그것도 아주 가까이 살고 있다. 형이 재산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모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우리가 모시고 산다. 물론 남편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효자라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더부살이' 하는 것이다. 그것도 친구에게 사기 당해 집을 모두 날리고 말이다. 시어머니가 별나지 않으셨지만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부담이었다. 남편에게 말도 함부로 못하고 옷매무새나 자세에도 신경이 쓰였다. 더구나 직장에 다니는 나는 한순간이라도 편안한 쉼터가 없다는 사실이 더 힘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까지 들어서자 나는 극도로 피곤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몇 달째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만 있었다. 생활이 이렇게 되자 나는 성격이 점차 날카로워졌다. 자연히 말도 곱게 나오지 않았고 남편이나 어머니의 행동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고 착하게 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즈음 나를 더 짜증나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옆집에 살면서 어머니를 모시는 데 도움을 주던 큰형님네가 아파트를 장만해서 이사 가게 된 것이다. 물론 열심히 살면서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장만해 이사 간다는 걸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형편도 어려운데 어머니를 우리에게 달랑 떠맡기고 이사간다는 것이 너무나 서운했다. 곁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사 가는 형님네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아파트 세 주시면 안 돼요? 들어올 사람이 왜 없겠어요. 일부러 안 놓은 거죠. 어쨌든 이제 제가 어머니를 모시게 됐으니 우리 남편이 맏이를 해야겠네요. 그렇죠?" "동서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섭섭하잖아. 형편이 그러니까 그렇지." 형님네는 그렇게 떠났다. 그 후로 나는 점점 삐뚤어져 갔다. 남편은 벌써 몇 달째 취직도 못하고 빈둥거렸고 내 월급으로 온 가족이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더욱 힘들었다.

상황이 이러니 내가 심술을 피워도 아무도 뭐랄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내 행동은 점점 과격해졌다. 한 번 이렇게 빗나가기 시작하자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어머니, 집 좀 치워놓고 계시면 안 되나요.""그이가 어디 갔는지 어머니께서 모르시면 누가 알아요?" "이렇게 빨래를 미뤄 두시면 어떡해요? 입고 나갈 옷이 없잖아요." 내가 막무가내로 푸념하면 어머니는 속상하다 못해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셨다. "정말 너무 하는구나. 내가 허리가 아파서 좀 쉰 거 가지고 넌 정말 너무 하는구나."

"어머, 어머니 그런 뜻이 아니라 제가 모시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께서 직접 그런 일은 도와주겠다고 하셨잖아요. 지금 와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형님네가 옆에 살 때는 일부러 가서 청소까지 해 주셨으면서." 어머니와 내 사이는 점점 멀어져갔다. 차라리 남편이 맏이였다면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이렇게 못된 행동을 할 수 없었을 텐데. 오직 남편이 둘째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나는 엄청나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울분을 터뜨렸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나는 일찍 퇴근해 장을 보러 나가던 참이었다. 마침 남편이 직장을 구했다고 해서 오늘은 좀 맛있는 저녁을 차릴 셈이었다.

집에서 나와 골목길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오고 있을 때 나는 동네 아주머니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남편이 취직되었다고 축하하는 이야기를 나누시던 중이었던 것 같다. 그 중 한 아주머니께서 나에 대해 물으셨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께서 내 욕을 얼마나 하실까 궁금했다. 어머니께서 하신 이야기는 정말 뜻밖이었다. "그렇게 잘할 수가 없지. 그 아이 혼자서 벌어 우리가 생활했는 걸. 이제는 취직했지만 남편이란 건 맨날 집구석에서 놀고 있었구 말이우. 맏며느리도 아닌데 나까지 모시면서…. 정말 대단한 애라우." "맏며느리도 잘 하지만 나는 둘째 며느리한테 더 애정이 가요.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아둥바둥인데 늙은 내가 도와주지도 못해서 미안하다우."

"그 아이 말투가 좀 그렇지만 실제로는 안 그래요. 얼마나 착한 아인데." 나는 숨이 가빠지고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들키지 않게 뒷골목을 돌아 시장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몇 번이나 흐르는 눈물을 닦았는지 모른다. 시장에 가서 나는 맨 먼저 생선가게로 들어갔다. 있는 돈을 모두 털어 평소에 시어머니께서 드시고 싶어하던 조기를 두 마리 샀다. 오늘 저녁에는 내 정성을 모두 모아서 이 생선을 맛있게 요리해 드릴 생각이다. 그래, 나는 둘째 며느리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어머니를 모시는 둘째 며느리다.

둘째 며느리의 시어머니 모시기/이일경
낮은 울타리 9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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