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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바다에서 건진 한줌의 소망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631 추천수:19 112.168.96.71
2014-11-25 11:00:34
뜨거운 태양이 골짜기를 하얗게 달구고 있었다. 산과 계곡을 경계로 수십 만평의 땅이 철조망과 초소로 둘러싸인 청송교도소. 그곳은 장기수들이 사람들과 담을 쌓은 채 살고 있는 단절된 세상이었다. 이주일 전 한 중년 신사가 찾아와 수감중인 자신의 아들을 면회해달라고 부탁했다. "하도 속을 썩이던 자식이라 미워서 잊고 살았는데 십 년쯤 지나고 보니 무심한 제가 더 죄인인 것 같습니다." '철컥'하는 쇳소리가 복도에 길게 울리고, 겹겹이 철창문을 지나 교도소 안으로 중년 신사의 아들을 만나러 갔다.

교도관의 안내를 따라 정적이 감도는 복도를 지나는 동안, '나도 이 안에 갇혀 산다면….'순간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떠올랐다. 한 평 남짓한 방 한가운데에 작은 책상과 철제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이윽고 검은 눈썹에 아름다운 눈매를 가진 청년이 들어왔다. 검게 그을린 피부의 청년은 낙천적이고 명랑해 보였다. "아버지 부탁을 받고…. 그런데 형이 얼마나 남았지요?" "열여덟 살 때 들어왔는데 지금 서른입니다. 앞으로 칠 년 더 살아야 돼요." 인생의 황금기를 회색빛 감옥 안에서 보내고 있는 빛 바랜 청춘은 의외로 담담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신창원은 탈옥 후 907일간을 버텼다. 그는 담당 변호사인 내게 도망 중에 남들 평생 느낄 자유를 누렸으니 여한이 없다고 한 적이 있다. 12년동안 혈기왕성한 이 청년은 몇 번이나 탈옥을 생각했을까! "무슨 사연으로 여기까지…." "애들과 어울려 강도 짓을 했어요." "사람을 해친 모양이군." "아니요. 칼로 겁을 준 적은 있지만, 여자를 괴롭히거나 사람을 해친 적은 없어요." 중학교 때부터 공부가 싫었던 그는 자연 스럽게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렸고 시간을 때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빈집을 털었다.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영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기를 일곱 차례. 때론 겁이 날 때도 있었다. 잠시 나쁜 짓을 그만두고 변두리 다방에서 디스크자키 보조로 일한 적도 있는데 그 때가 더 마음 편하고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공범이었던 친구들이 붙들리면 경찰의 손이 뻗쳐왔고 도망자가 되어야 했다. 나쁜 친구들 외에는 받아줄 곳이 없었다. 잡히지 않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러다 한 녀석의 밀고로 결국 잡히고 말았다. "그 정도로 이렇게 징역을 오래 산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데?"

"제가 검사님한테 밉보였어요. 범행 일부를 부인했거든요. 선배들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한 것이었는데 덕분에 자백한 공범들은 보호감호가 붙지 않았어요. 나만 7년을 더 살아야 되는거죠."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자신이 고통 당하는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한다. 다른 누구의 탓이나 사회의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데 자신의 잘못을 마음 속으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은 이미 죄 값을 치른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타인의 얘기를 하듯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했다.

"처음엔 의정부 교도소에서 재소자들과 탈출을 모의했다가 들켰어요. 그 대가로 징벌 방에 들어갔죠. 어두운 독방에 묶여 있을 때 얼굴에 온통 물집이 생겼어요. 무섭고 갑갑하고,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그의 턱에 지렁이처럼 흉터자국이 선명했다. "알던 여자가 4년 동안 편지를 보내더라구요. 그런데 아무래도 안되겠더군요. 그 여자는 저의 긴 형량을 모르는데 사랑한다면 보내줘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한 20년쯤 살아야 하니까 떠나라고 했죠. 연락 그만 하라고 편지를 썼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는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진심이 아니었죠?" "물론 그랬죠.

그 여자. 정말로 연락을 끊더군요." 순간 서글픈 듯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 담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가장 고통스러운 일 중의 하나인 것이. "여기서 그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는 힘은 뭐였어요." 나는 궁금했다. 그가 절망의 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무엇이었는지. "하나님을 찾았어요. 처음엔 두려움 속에서 찾았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예수쟁이가 된 덕분에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2급 미장 양재기술자격증도 땄어요. 통신으로 성경공부도 하는데 더 신나는 건 서예로 교정 작품전에서 입상한 거였어요.

이 안에서도 바빠요." 모처럼 생기 있는 목소리였다. "변호사님. 보호감호 7년을 살아야 할까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간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이런 경우가 흔하지만 법은 아직 냉혹하다. 변하는 인간의 마음을 계량하기 싫은 제도인 것이다. 그에게 솔직히 얘기해줬다. "쉽지 않을 거예요." "변호사님! 기도해 주세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인 것이다. 나는 지금도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 담 안이나 담 밖을 의식하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영혼이 되게 해 주십시오. 시회나 제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굳건한 믿음을 주십시오." 그를 향한 나의 소망이다.

절망의 바다에서 건진 한줌의 소망/엄상익 변호사
낮은울타리 8월호 중에서
-주부 편지 2000년 8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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