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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다른 삶을 살았던 의사 부부 이야기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61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0:50:48
딸은 법정에서 아버지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있었다. "원고는 우리의 모든 재산을 뺏으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한 여자에 미쳐서 아내도 자식도 안보입니다. 그게 어디 병원원장이 할 짓입니까?" 현직 의사인 딸은 수많은 방청객 앞에서 늙은 아버지를 규탄하고 있었다. 마치 인민재판 같았다. 앞좌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가 딸이 쏘는 화살에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느날 갑자기 노의사 한 사람이 찾아와 이혼 소송을 부탁했었다. 그는 대학병원장이었다. 아내도 의사였다. 딸도 사위도 모두 의사였다. 재산도 풍족했다. 수십 개의 상가에서 나오는 세만 받아도 떵떵거리고 살만큼…. 그들 가족은 현대의 굳건한 성채 속에 있는 성주 가족들이었다. "그 나이에 왜 이혼을?" 나는 이상했다. 그는 성밖으로 나오면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완강했다."재산? 명예? 다 소용없소, 단 하루라도 따뜻하게 살고 싶을 뿐이오." 그가 말한 과거는 이랬다.

가난한 의대생이었던 그는 부유한 상인의 집 딸과 결혼했다. 장인은 딸의 이름으로 작은 의원을 개원해 주었고, 마침내 그는 수백 명의 직원과 의사를 거느린 백색왕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단골로 다니던 한식집 주인이 너무나 정성스럽게 시중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그는 가슴이 따뜻해 오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의사인 아내는 밥 한번 직접 손으로 따뜻하게 해 준 적이 없었다. 아내는 항상 그를 몰아쳤다. 빨리 과장이 되어야 했고 병원장에서 탈락하면 안되었다. 그는 채찍질에 그저 앞으로 달리는 한 마리 말이었다.

자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딸을 남편이 근무하는 대학에 입학시킨 아내는 후배교수들에게 낙제점을 받은 딸을 수시로 건져달라고 부탁했다. 본질보다는 껍데기 추구에만 동조했던 그는 가정은 삼 십 년의 세월을 흘러오면서 화석같이 굳어졌다. '아니야. 그동안은 사는 게 아니었어. 이건 진정한 삶이 아니야.' 오랜 몽상에서 비로소 벗어난 그는 현실을 되돌아봤다. 몇 년 안 남은 위치가 그나마 마지막 보루였다. 어느 날 훌쩍 집을 나와 병원 근처 작은 방을 얻었다. 그렇게 살아도 오랜만에 찾은 평온이었다.

단 하루라도 본질을 찾고 자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내와 딸은 그런 그를 놔두지 않았다. 여자가 생겼으리라는 의심으로 그를 뒤쫓았다. 출장 간 그의 방에 경찰관을 데리고 급습했다. 또 경찰에 마약 상습복용자라고 현행범 신고를 하기도 했다. 그는 젊은 형사 앞에서 옷을 벗으면서 부끄러웠다. 그에게는 가정이 없었던 것이다. 아내나 자식은 그를 이해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서 아내는 자기 변호사를 통해 재산보호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더 기막힌 것은 딸이 엄마의 편을 드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증언을 잘 하면 상가를 주겠다는 말에 현혹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모든 재산을 포기했다. 병원장도 그만 두었지만 그렇게 사는 게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얼굴에는 잘못 살아온 허탈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 의사 부부를 보면 나는 얼마나 비교가 되는지…. 소위 열쇠가진 여인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도 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 간호 보조학원에 다니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더 K박사. 돈 한푼 없던 그들 부부는 삼십대 중반에 들어서야 남의 건물 귀퉁이를 세 얻어 신경외과의원을 차렸다. 아내는 수술을 보조하고 밥짓고 청소하고 환자 돌보고 일인 다역을 했다. 매일같이 수술 환자가 밀렸다.

새벽별이 보일 때까지 부부는 수술을 했다. 어느날 부동산 업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돈을 투자하면 땅을 사서 몇곱으로 이익을 보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업자는 처음 몇 번 돈을 불려 부부는 전재산에 보험회사에서 대출까지 받아 업자에게 주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부동산 업자는 그 모든 돈을 챙겨 없어졌다.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 부부는 병원문을 닫았다. 그 무렵 나를 찾아왔던 의사 부부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그들 부부에게는 이상하게 남은 게 있었다. 그의 아내가 내게 말했던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저는 솔직히 의사 부인 될 자격도 없고 친정에 돈도 없어요. 사기꾼을 못 찾아 그돈을 다 잃었는데도 조금도 마음 상하지 않아요. 전 착하고 존경스런 남편의 존재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전 정말 행복해요." 그의 아내의 말은 진정이었다. 진실은 꼭 전달되는 불가사의한 강한 힘이 있나보다. 그의 아내가 없을 때 남편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저도 그 돈 없어도 됩니다. 의사가 할 사명이 있는데 돈에 눈멀어 부동산 투기를 하니까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신 거예요.

앞으로는 평생 아픈 사람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할 겁니다. 돈을 벌어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다는 걸 알았으니. 저는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주님 주신 천사표 아내가 옆에 있으니까요." 두 의사의 가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진정으로 우리를 부유케 하는 건 등기권리증이나 의사자격증 따위가 아니라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 화목이라고 생각했다.

두개의 다른 삶을 살았던 의사 부부 이야기/엄상익 변호사-낮은 울타리 2000년 5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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