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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넬의 학교 이야기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585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0:48:05
나는 백인만이 다니는 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최초의 흑인 학생이 되었다. 나는 1954년 미시시피에서 애본과 루실 브리지스 부부의 맏이로 태어났다. 그해, 미 대법원은 공립학교에서의 인종 차별을 폐지하고 통합을 명하는 대법원 사상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1960년 봄, 나는 시내에 있는 다른 흑인 유치원생들과 함께 테스트를 받았다. 어머니는 전적으로 찬성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니었다. “괜한 말썽만 일으키는 거야.”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흑인과 백인은 결코 동등하게 대우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올리언즈 시의 공립 학교 체제를 통합하기 위해 선발된 학생은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었다. “루비 넬,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마 학교 밖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사람들이 몇몇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네 옆에 있을 거야.” 새로 입학한 학교가 가까워지자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차에서 내렸을 때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휘둘러댔다. 창문을 통해서 나는 백인 부모들이 우리에게 손가락질하고 소리지르면서 자기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것을 보았다. 그런 소동이 일어나곤 해서 나는 도저히 교실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때 건물 안에서는 한 젊은 백인 여자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미소지었다. “안녕, 루비 넬.”그녀는 내가 후에 익히게 된 그 보스턴 억양을 제외하고는 꼭 우리 어머니처럼 말했다.“잘 왔다. 난 새로 너를 맡게 된 헨리 선생님이란다.”헨리 선생님은 내게 알파벳 글자들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나는 헨리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기뻤다. 그녀는 나를 안아 주었고, 교실 앞에 있는 커다란 교탁 대신에 바로 내 옆에 와서 앉았다. 계속 날이 흘러가도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은 단지 헨리 선생님과 나뿐이었다.

뉴스에서 호전적인 인종 차별주의자로 불린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항의 시위를 했고, 도시 이곳저곳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그 분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나를 보호했지만 나는 내가 백인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식품점의 백인 주인들은 우리에게 더 이상 그곳에 물건을 사러 오지 말라고 했다. 뉴스에서 내 얘기를 전해 들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내게 편지와 기부금을 보내 주었다. 많은 고통이 있어지만 선생님은 학교를 즐거운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내가 그해 헨리 선생님의 수업에서 배운 가장 위대한 교훈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그 교훈이었다. 결코 사람을 피부색으로 판단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훨씬 더 심오한 방식으로 아주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다. 창가에 서서 헨리 선생님은 항상 내가 학교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다. 곧,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는 선생님의 보스턴 억양을 체득하게 되었다. 바깥에 있던 군중들 중에 단지 소수의 항의자들만 남게 되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한 학년이 끝나는 6월이 되었다.

나는 헨리 선생님께 작별 인사를 하면서 가을에 다시 그분이 내 담당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고 온 마음으로 바랐다. 그러나 내가 9월이 되어 학교로 돌아갔을 때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보안관들도 없었고, 시위자들도 없었다. 우리 2학년 교실에는 다른 아이들, 심지어 몇몇 다른 흑인 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헨리 선생님은 떠나고 없었다. 얼마 후엔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졌다. 윌리엄 프란츠 초등학교를 마치고, 통합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상경대학에 진학해 여행과 관광에 관해 공부했다. 또한 15년간을 여행사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93년 수년 전 인종 차별을 폐지하는 데 내가 일조를 했던 바로 그 학교에서 자원 봉사를 하였다. 마침내 나는 무릎 꿇고 기도했다. '주님,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간에 주님께서 그것을 제게 알게 해 주셔야 합니다.’그 곳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곧 외쳤다. “루비 넬!” 내가 어린 소녀였던 이후로 아무도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매일 아침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헨리 선생님을 내가 얼마나 많이 닮게 되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분의 보스턴 억양 뿐만 아니라, 머리를 갸우뚱한다든가 말할 때 손짓하는 거라든가 하는 독특한 버릇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헨리 선생님은 그 오랜 세월 내내 간직해 온 앞니 빠진 내 모습이 찍힌 작고 낡은 사진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 하곤 했단다. 우리 애들한테 너무 자주 네 얘기를 들려 주어서 넌 마치 우리 식구 같았지.”

루비넬의 학교 이야기
-가이드 포스트 4월호중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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