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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그 아기는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621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0:35:09
1951년 12월 24일, 당시 군복무 중이었던 나는 전쟁의 포화 소리가 끊이지 않던 한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눈까지 내리는 성탄절 전날이었지만 그 마을에서는 기쁨에 가득찬 웃음소리도 캐롤도 전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춥고 우울한 마음으로 고향을 그리며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는데 한 젊은 사병이 내 방에 들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중사님께 보고 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 사병은 자기와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소년에게서 들은 얘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북쪽으로 4마일 떨어진 곳에 다 타버린 마을이 하나 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추위를 피할 장소를 찾아 비참하게 떠돌고 있으며, 그 중에는 곧 아기를 낳을 여인도 끼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에게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눈 속에서 어떻게 그 피난민들을 찾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그 날 하루종일 정찰을 하느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짜증 섞인 외침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도저히 그대로 누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 누군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속삭였기 때문입니다. "가서 크렐과 그래프를 데리고 와." 그들이 도착했을 때 나는 상황을 설명했고 얘기를 들은 그들도 기꺼이 이 일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창고 문을 열고 먹을 것과 꾸러미를 우리 팔에 안을 수있을 만큼 들어서 짚차에 실었습니다. 그 꾸러미는 미국의 어느 자선단체에서 우리 부대에 보낸 것이었습니다. 짚차를 타고 수 마일을 달려 불더미로 폐허가 된 마을에 도착했지만 사람들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마을 주변을 샅샅이 찾아다녔습니다. 날은 어두워졌고 눈은 더 심하게 내렸습니다. 눈 때문에 길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우리는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모두가 지쳐 한 발짝도 더 내딛지 못할 지경이 되었을 무렵, 우리는 부서진 교회 건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붕은 거의 날아가 버렸지만 벽은 그나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만약에 사람들이 이곳으로 찾아온다면 어느 정도 추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장소였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리로 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갑자기 그래프가 가지고 온 꾸러미를 하나 풀더니 조그만 크리스마스 트리와 양초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그것을 벽난로 위에 정성껏 올려 놓았습니다. 이 폭설 속에 계속하여 마을 사람들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우린 할수 없이 담요와 양식과 선물들을 그 교회 사무실에 남겨 놓은 채 우리들의 부대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발견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1952년 4윌, 나는 부상을 입고 원주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밖에서 볕을 쬐고 있는데 한 한국 소년이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얼마나 말이 많은 지 처음에는 그가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입에서 작년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오자 나는 거의 내 의자에서 껑충 뛸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그 소년을 군목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군목을 통해 그 소년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명하는 한국인 장로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었습니다." 한국인장로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북한군에 의해 불태워진 그 마을 사람이었습니다. 추위를 피할 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그 교회 건물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 모두 거의 굶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교회 굴뚝에서 희미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혹시 북한군이 안에 있는가 두려웠지만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죽더라도 들어가 죽자는 심정으로 문턱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다행이 그 건물 안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벽난로에는 양초가 타고 있고, 그 옆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까지 놓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거기다 푹신한 담요들과 먹을 것이 담긴 꾸러미들이라니..."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장로는 감격의 눈물을 훔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마음껏 땔 수 있는 나무들과 음식으로 그들은 몇 달만에 처음으로 안락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로소 해산할 여인을 위해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기는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태어났어요." 빨갛게 변한 장로의 눈은 허공을 더듬으며 아직도 그 감격을 되새기는 눈치였습니다. 우리는 그때 그저 눈길을 헤매고 다니다 폐허가 된 교회에다 불을 피워 놓고 왔을 뿐인데 그 일이 하나님 안에서 기적으로 변할 수 있었다니.... 덕분에 이름도 모르는 그 아기는 2000년 전에 태어나신 예수보다는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겁니다.

덕분에 그 아기는/ 웨인 몽고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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