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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더운 날에 핀 꽃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807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0:26:50
비 개인 날 초가을 아침입니다. 숨을 들이마시면 저 파란 하늘이 가슴으로 빨려 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낮게 날던 잠자리가 풀을 툭 건드립니다. 햇살로 찰랑이던 물방울들이 춤추듯 아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하늘,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없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숨을 쉬면서 이렇게 볼 수 있다니 참 행복하기만 합니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비 개인 아침을 제일 좋아합니다. 제가 이런 날에 누구보다 행복해 하고 감사하는 것은 어둔 날들을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제 소개를 해야겠네요. 저는 안과 병원의 여 간호사입니다. 사람들에게 밝은 세상을 보게 해 준다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지 모릅니다. 아직은 미혼, 눈이 맑은 분을 만나 눈이 맑은 아이들을 두고 싶습니다. “간호사님은 늘 밝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좋아요.”이따금 사람들이 저를 보고 말합니다. 그렇게 예쁜 얼굴이 아니지만 제가 봐도 밝은 얼굴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제가 초등하교 6학년 때 남들이 말하는 불행을 당했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살던 때 아빠가 운전하던 차에 엄마와 함께 탔는데 빗길에 중앙선을 침범해 들어오던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쳐 아빠와 엄마를 잃고 말았습니다.

저만 눈동자에 수없이 많은 차 유리 파편이 박힌 채 겨우 살아났고 몇 개월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앞을 못 본 채 수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으면서 저는 엄마, 아빠만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제 옆에 엄마, 아빠가 아주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앞을 못 보며 지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만난 의사는 예수님을 잘 믿는 분으로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때는 선교회 간사로 일하기도 했던 분이셨습니다. 제가 이 분을 만난 건 그야말로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이 분은 제가 엄마, 아빠를 다 잃고 돌봐줄 친척도 없다는 소식을 듣고 저를 정성껏 치료해 주며 아예 저를 자신의 집에다 데리고 딸로 여기며 키워 주신 것입니다.

눈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이 분의 정성스러운 치료로 저는 사고 당한 지 두 달 만에 앞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후에 이 분의 도움으로 간호 대를 나와 지금 안과 병원의 간호사까지 된 것입니다. 너무 이야기가 길었지요. 이제부터 제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추꽃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 장로님 집에 들어갔던 그 다음 해 여름이었습니다. 그 집에 큰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여름이 되자 하얀 대추꽃이 앞다투어 피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장로님은 저에게 대추나무를 보여주며 말씀하셨습니다. “대추꽃이 예쁘지?”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란다. 나는 그 어떤 꽃보다 대추꽃이 제일 좋아. 봐라, 얼마나 깨끗하고 예쁘냐? 우리 고향에 대추나무가 많았단다. 너, 대추꽃이 언제 피는지 아니?” “모르겠는데요.” “대추꽃은 말이다. 다른 과일의 꽃처럼 봄에 피지 않고 한 여름에 핀단다.”“한여름이요?” “그래, 지금처럼 삼복 더위에 피는 거지. 바로 초복, 중복, 말복에 대추꽃이 핀단다.”“아주 신기하네요.” “더 신기한 일이 있단다. 이렇게 꽃이 피었다가 지면 그 자리에서 열매가 맺히는데 가장 단단하고 윤기 있고 알찬 열매는 말복에 핀 꽃에서 맺은 열매가 그렇게 되는 거야.”

장로님은 대추 꽃잎을 쓰다듬으시면서 또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말복, 그 가장 더운 때 피어난 꽃에서 나온, 그러니까 그 꽃이 진 다음 맺혀진 대추 열매가 가장 크고 알찬 열매가 된다는 것은 뭘 말하겠니? 인생도 마찬가지란다. 큰 고통을 잘 견딘 사람이 알찬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야. 자, 나하고 기도하자.”제가 큰 고통을 이기고 밝게 크면서 지금에 이른 것은 하나님의 은혜며, 대추꽃 이야기를 들려주신 장로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후로부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더운 날에 핀 대추꽃과 그 열매를 생각한답니다. 아, 정말 개인 날 아침의 공기가 이처럼 상쾌할 수가 없네요. 저는 장로님 댁에서 독립해 혼자 살고 있지만 늘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제 장로님 댁의 대추 열매가 한창 익어가고 있겠네요. 그 중에서 제일 예쁘고 알찬 열매는 역시 가장 더운 날에 핀 꽃에서 자란 열매겠죠. 저도 결혼해서 보금자리를 꾸미면 꼭 대추나무를 심을 거예요. 그리고 제 아이들에게 대추꽃 이야기를 해주겠어요.

가장 더운 날에 핀 꽃/김상길(시인)
CCC편지 9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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