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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식한 부부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467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0:13:32
내 남편은 건설 현장 근로자다. 말로는 다른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직업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칭 노가다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를 남편으로 둔 나는 그가 하는 일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어쩌다 친정엘 가도 풀이 죽는데, '남들은 내 남편을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마음에 가끔 길을 가다가도 신축중인 건설 현장을 보게 되면 걸음을 멈추고'내 남편도 저렇게 일하겠지' 하는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며칠 전 남편이 좋아하는 우렁이를 사러 시장엘 갔다. 우렁이를 사고 막 돌아서는데 인도네시아에서 온 듯한 남자 둘이서 토시를 가리키면서 "이거 얼마에요?"하고 서투른 우리말로 물어보는 게 아닌가. 아줌마가 천 원이라고 답하자 그 두 사람은 자기네 말로 뭐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아마 비싸다는 표정인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선량한 두 사람을 보고 이국 땅에 와 천대받으면서 일하는 외국근로자의 입장을 생각했고, 또한 힘들게 일하는 내 남편이 잠깐이나마 그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은 햇볕이 따갑게 내리기에 널었던 이불을 걷으러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무심코 하늘을 보는데 화인 건설이라고 쓰여진 곤돌라가 눈에 띄었다. 언젠가 남편이 일하는 곳을 알려 준 적이 있었다. 가 보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일하고 있는 현장인 것 같아 나는 열심히 그 곤돌라 밑으로 남편 옷 색깔을 찾아보았다. 아! 조그맣게 남편이 보였다. 위험한 난간에서 나무 기둥을 붙들고 왔다갔다하면서 망치로 못을 치고 있었다. 당! 당! 못 치는 소리도 들려 왔다.

그 순간 나는 울고 말았다. 왜 내 남편은 더운 날 저렇게 땡볕에서 일을 해야만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꼭 저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나. 내려오는 계단에서 이불을 싸 안고 오다가 그렁거리는 눈물 때문에 넘어질 뻔했다. 저녁을 먹고 남편에게, "다리 주물러 드릴께요. 이쪽으로 누우세요." 했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별일 다 보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다리를 주무르면서, "당신 오늘 6층에서 일했죠" "어, 어떻게 알았어?"했다. "오늘 이불 걷다가 봤어요, 우리 옥상에서 바라보면 왼쪽 끝에서 일했죠? 했더니"응."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도 자기가 고생하는 걸 내가 본 게 못 마땅한 것 같았다. "냉커피 한 잔 드릴까요?" 했더니 "아, 타 주면 잘 먹지." 한다. 사실 남편이 저녁 늦게 커피를 부탁하면 거절했었다. 그다지 커피를 많이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밤에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 때문에 잠을 못 자는 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밤에 커피를 마신 뒤 새벽까지 뒤척이더니 일 나갔다가 어지럽다고 그냥 집에 온 적이 있은 뒤부터 나는 되도록 늦은 커피는 타주지 않는다.

내 마음을 아는 남편은, "내일 일 못 나가면 어쩌려고 커피를 타 주나?"했다. "아유 뭐 어때요. 하루 쉬면 되지 뭐." 했더니 남편은 빙긋 웃으면서 "우리 블랙 커피 한 번 마셔 볼까?" 하고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텔레비 같은 데서 블랙 커피 마시는 사람들 보니까 유식해 보이드라." 나는 웃음을 참으면서 정말로 설탕과 크림을 빼고 남편에 블랙 커피를 내밀었더니 한 모금 마신 남편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아우, 무식한 게 차라리 낫겠다. 못 마시겠다. 우리 무식하고 말자." 하는게 아닌가. 하긴 블랙 커피를 마신다고 모두 유식하면 무식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부부는 무식할 정도로 큰 소리로 웃었다. 잠자리에 누운 남편은, "당신 이번에 돈 나오면 바지 하나 사 입어. 거 왜 당신은 멋을 안 부리는 거야? 옆집 진영이 엄마같이 야들야들한 바지 하나 사 입어." 했다. "참, 누군 못 사 입어서 안 입는 줄 아세요? 당신 땡볕에서 땀 흘리며 번 돈으로 어떻게 비싼 옷 사 입어요." 했더니, "다, 당신하고 윤정이 위해 일하는데 뭘 그래. 이번 달에 사 입어. 파마도 좀하고." 나는 그만 목이 메었다. 이런 걸 행복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지체 높으신 사모님 소릴 못 들어도, 어떤 비싼 보석 같은 게 아니더라도 잠깐씩 이렇게 느껴지는 걸 행복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가끔 남편은 돈 많은 부모 못 만나 배우지 못해서 천대받는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 그런 남편을 볼 때마다 나 또한 남편의 직업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렇게 오늘같이 잠깐씩 느끼는 감사함으로 남편 직업에 대한 회의를 잊고 깊은 행복감에 젖어본다. 아, 내일 남편의 점심 반찬을 무엇으로 해 드릴까? 자칭 무식한 우리 부부의 초여름 밤은 시원하게 깊어간다.

우리는 무식한 부부/손태옥
- 낮은울타리99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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