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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세워주기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474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0:12:04
지난 목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저녁 9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무릎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여자는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뜻밖의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누나들과 다툰 후 저에게 온 것 같았습니다. 누나들을 여자로 대한다면 2대 1이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니 자신의 주장을 펴지 못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아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왜 여자를 이해할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은 "아빠는 몰라도 돼 ! "라고 말하고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일곱 살인 아이가 왜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지, 그가 그 말의 의미를 알고 하는지 궁금해서 계속해서 "왜 여자를 이해할 수 없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아이는 씽끗씽끗 웃으며 "아빠는 몰라도 돼 ! "를 반복하였습니다. 아직도 왜 그 아이가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말이 무슨 뜻인 줄이나 알고 했는지 아버지인 저도 그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understand"라고 하여 "아래에 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상대방 입장에 서보는 것, 상대방 아래에 서는 것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한다고 하지만 인간 관계에 있어서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하여도 그 이해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일곱 살 어린 사내 아이가 어떻게 여자를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자라면서 여자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어 질 것입니다. 물론 일곱 살 때 말한 "여자는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은 결혼하여 10년이 지난다고 하여도 유효할 것입니다. 한 여인과 결혼하여 살을 대고 산다할 지라도 자신의 아내를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아빠는 몰라도 돼"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을 기대합니다만, 어느날 문득 부부싸움을 하고 늙은 아버지를 찾아와 "아버지, 도대체 여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이기 때문에 변화를 가지게 됩니다. 기계가 아닌 유기체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까지는 유기체의 양이 증대하고, 그 구조가 정밀화되어지며 그 기능이 유능화되어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도 성장하고, 지능, 정서, 사회성도 성장 발달합니다. 신체는 몸집이 불어나는 충실기와 키가 자라나는 신장기를 반복하면서 성장합니다. 신체의 성장과 함께 지능이 발달되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들을 정신 박약아라고 말합니다. 정서가 나이에 비하여 원만하게 발달하지 못하여 정서 장애아라고 말하고,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하면 사회적 부적응아라고 말합니다.

연륜과 함께 지식의 폭이 넓어지고 정서가 풍부해지며 사회성이 발달해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은 좀더 크고 넓은 가슴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어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세워주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를 세워준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해하면 못세워 줄 상황이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종종 보면 나이가 들었는데도 상대에 대하여 매사 깍아 내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남편에 대하여, 아내에 대하여, 자식에 대하여, 부모에 대하여, 시어머니에 대하여, 며느리에 대하여... 깍아 내리기를 밥 먹듯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매사 상대를 세워주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합니다. 참으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지난 금요일 90살 드신 할머니 집사님께서 3개월 반 동안 시집간 딸네 집에 가셨다고 오셨다는 연락을 받고 구역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시러 갔습니다. 63살 된 며느리가 함께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도 볼 일이 있다고 같이 차를 탔습니다. 얼마동안 뵙지 못하여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한 할머니께서 "딸네집에 계시니 좋으시지요"라고 말하자 "딸이 잘해주지, 그러나 며느리 반밖에 못해"라고 말했습니다. 90세이신 할머님 입에서 나오는 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딸도 깍아 내리지 않고 그렇다고 며느리의 자존심도 상하게 하지 않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습니다. 그 동안 할머니께서 며느리나 아들의 흉을 보는 것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사소한 일만 있어도 동료 할머님들께 며느리 자랑을 하였습니다. 사실 늘 만족스럽게 해주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젊어 홀로되어 때때로 서운한 마음이 가슴에 쌓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서운한 속마음을 드러내기 보다는 자식과 며느리를 세워주는 데 입술을 사용하였습니다. ●

이해와 세워주기/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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