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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떡에 고기까지 준비할 것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474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0:08:06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데는 커다란 오해가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귀를 거꾸로 달든지 뇌를 거꾸로 조직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아가, 나 지금 느네 집으로 간다. 그런데 나, 저녁 먹고 갈란다.” “아니, 어머니, 왜요? 어서 오셔서 저희랑 같이 드세요.” “아니다. 난 그냥 집에서 물 말아 먹고 간다!” 전화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깁니다. 그런 다음 우리 식구들은 ‘어머닌 저녁을 먹고 오신다니까….’ 하면서 준비된 음식을 먹어치웁니다. 된장찌개 냄새도 그윽하게 풍기면서 이것저것 식탁의 정담을 나눕니다. 그러는 새 어머니가 들이닥칩니다.

나는 어머니의 구식 가방과 호박, 옥수수, 가지가 가득 든 또 다른 비닐봉지를 받아 내려 놓고, 먹던 저녁을 계속 먹습니다. 그러다가 막 생각난 듯, “어머니, 저녁을 왜 물 말아 드셨어요?”합니다. 그러나 아뿔싸! 또 속았습니다. 표정만 봐도 압니다. 저녁을 안 드시고 오신 것입니다. 이런! 이런! 어머니의 반어법에 내가 또 걸려들다니.“어머니, 이거 어머님 선물인데 어떠세요?” 식사 후에 나는 어머니께 새로 산 원피스를 내놓습니다. 어머닌 소녀처럼 좋아하십니다. 입어보시기까지 합니다. 이번엔 성공인가 봅니다. 나도 오랜만에 기분을 맞춰 드린 것 같아 기쁩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 어머니가 넌지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거, 푸른색은 없든?” 또 속은 것입니다. 며느리의 경제 사정을 배려하는 어머니의 맛깔스런 답례였던 것입니다. 이젠 어머니에게 속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얘, 아가. 이번 어버이날엔 절대로 선물같은 거 사지 말거라.” 그러면 나는 꼭 선물을 마련합니다. “얘, 아가. 길도 막히는데 오지 마라.”그러면 나는 꼭 가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얘, 아가, 이번 아버지 생신엔 우리 둘이 여행간다. 그러니 오면 헛걸음이다. 무거운 거 들고 왔다가 그냥 가야 한다.”

그렇다고 안 가면 큰일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전화해 놓고도 어머니는 하루종일 길에 나와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망설일 때가 있기는 합니다. 이번엔 정말로 여행을 떠나시면 어떡하지? 어머니 없는 빈집에 갔다가 그냥 돌아올 수도 없고…. 생신 선물로 비싼 스웨터를 샀다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어떡하지? 물러달랄 수도 없고…. 그러나 내가 누굽니까?

시집와서 어머니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계속 실수할 수는 없는 일.“추어탕 끓여 놨다. 와서 먹고 가라.” 이건 반어법이 아닙니다. 직설법입니다. 이럴 땐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그냥 가면 되니까.“고기 같은 거 사 올 필요 없다. 많이 있으니까.” 이럴 땐 고기를 잔뜩 사들고 가는 것이 언제나 옳았으니까 가야 합니다. 이른 아침 전화가 옵니다. “얘, 아가. 나다. 이번 명절엔 오지 마라. 과일도, 찰떡도, 고기도 사 올 필요 없다.” 난 그 전화를 받으면서 메모합니다.
‘꼭 갈 것. 과일은 물론 찰떡에 고기까지 준비할 것!’

찰떡에 고기까지 준비할 것 / 송은아
-낮은 울타리 990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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