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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료 장수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594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0:01:40
그 목사님이 신기료 장수를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앞 코에 구멍 좀 뚫렸다고 멀쩡한 신발을 내다 버리기가 아까워 거리에 나갈 때마다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좀처럼 '구두 수선'이라는 글자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어느 날 뜻밖에도 아파트 뒷문 쪽 길목 어귀에서 나이도 많지 않은 신기료 장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하, 이거 맨 날 앞문 쪽으로만 다니다 보니 뒷 쪽의 행운을 놓칠 뻔했습니다 그려. 수선하는 곳을 찾기가 힘든 걸 보면 요즘 사람들은 신이 망가지면 즉시 즉시 내다 버리나 봐요."

나무 의자에 앉아 휙하고 왼쪽 구두를 벗어 놓으며 얘기하는 걸 빙그레 듣고 있던 신기료 장수가, "목사님이시죠?" 하고 불쑥 물었다. "아니, 그걸 어떻게?" "그냥 목사님 냄새가 나요." "허허. 목사 냄새야 그리 좋은게 아닐 텐데, 어찌 그리 금방 알 수 있단 말이요?" "사실은 저도 신학대를 나왔습니다." "..." "그러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목사님이야 금방 알 수가 있죠." 의외였다. 신학대 나온 사람이 바람 부는 뒷골목에 앉아 냄새나는 신발 따윌 고치고 있는 상황도 의외였고 순수해 보이는 얼굴, 맑은 목소리, 투명해 보이는 눈빛, 게다가 짧은 대화였지만 깊이 있는 신앙심, 슬쩍 테스트해 본 성경 지식에도 단연 돋보이는 실력이었다.

"마침 내가 우리 교회 전도사 한 분을 찾고 있는 중이었소. 개척교회라 좋은 대우는 못 해 드리지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이런 데 있어서야 되겠소? 오늘 여기서 댁 같은 분을 만난 건 하나님의 섭리인 것 같습니다. 어떻소?" 그 말을 듣고 있던 신기료 장수가 처음의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목사님, 제겐 이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 "이렇게 구멍 뚫어진 신을 신고 비오는 날 거리에 나서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발이 젖지 않도록 정성껏 수선해 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 "목사님이 이 구두 하날 고쳐 신기 위해 신기료 장수를 찾아다니셨듯이 저 또한 멀쩡한 신발을 고쳐 신지 못해 내다 버리는 사람이나 늘 새 것만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다니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그리도 잘나 보이는 사람도 여기 와서 신발을 벗고 있으면 얼마나 겸손해지는지 모르겠어요. 모두 신발을 벗고 있을 땐 마음의 문을 쉽게 열더란 말입니다." "..." "저희 아버님은 오랜 신앙 경력과 깨끗한 인품, 최선의 봉사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바라던 장로 취임을 못하고 돌아가셨죠. 저도 한 때는 아버지가 신기료 장수라는 사실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가난보다는 아버지 직업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다니던 교회를 그만두기까지 했었어요. 물론 단지 직업 때문에 아버지를 장로로 뽑아 주지 않는 교인들이 밉기도 했구요. 하지만..." "..."

"제가 이 일을 맡게 된 건 전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어요. 신학대를 졸업하고도 몇 군데의 교회에 적응을 못해 방황하던 나에게 어느 날 아버님은 며칠간만 이 사업(?)을 맡아 달라고 하셨죠. 주문받은 신발이 있는데 거동을 못하고 쓰러지신 거예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에 억지로 나갔다가 모세가 들었던 음성을 저도 듣게 된거죠. '네 신을 벗으라'는...." "..."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장로 피택을 위해서 다른 직업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한평생을 이 좁은 방에서 냄새나는 신발을 쓰다듬었던 아버지를 그때서야 이해하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만나서 상담하고, 전도하고, 심지어 자살 직전의 사람까지 구해 내었던 숱한 이야기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게 되었단 말입니다. 여긴 낮은 데서 일할 수 있는 최상의 사역지입니다. 보세요. 신발을 벗고 계신 목사님의 참 모습을. 신을 벗고 무릎을 굽힌 사람의 영혼을...." "..." "자, 다 됐습니다. 수리비는 무료예요. 안녕히 가십시오

신기료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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