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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찍어 둬..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488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0:00:22
여보, 우리도 가족 사진 한번 찍을까?”친구 생일잔치에 다녀온 남편이 모자를 벗으며 한 마디 던졌다. 앉아 있는 나이 지긋한 부부들 뒤로 성장한 자녀들이 ‘이제는 저희가 바람막이가 되겠습니다.’하고 늠름하게 둘러서 있는 모습…. 금빛 액자에 끼워져 있던 친구네 가족 사진이 그날 남편을 무척이나 감동시킨 모양이었다.남들처럼 해외에 나가서 폼나게 찍은 사진 한 장 없는 건 물론이고, 결혼 후 줄곧 장사만 하면서 사 남매를 키우느라 손바닥만한 돌사진 몇 장 찍어둔 게 고작일 뿐 지금은 아이들도 크고 돈도 좀 벌었지만, 이젠
아이들이 학교다 직장이다 좀처럼 모이질 못해 가족 사진은 생각도 안 하고 있던 터였다.

“이번 주 토요일에 다들 모여라, 사진 찍게.” 역시 아이들은 느닷없이 무슨 사진이냐며 한결같이 시간이 없단다.왜들 그렇게 바쁜지….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시간을 벼르다 벼르다 훌쩍 한 달이 지나갔다. 더 미루다간 안 되겠다 싶어 사진이라면 자신 있다는 큰애를 믿기로 하고 집에서 사진을 찍었다. 거실에 병풍을 치고 남편과 나는 한복을, 애들은 정장을 한 채 앉고 서고 하여 자동 카메라로 몇 장을 찍었다. 그런데 정작 사진을 현상해 보니 갑자기 뛰어든 큰애의 엉거주춤한 자세, 화면이 작아 일그러진 얼굴들, 초점이 제각기인 눈동자들….도무지 액자에 끼워 둘 만한 작품은 한 장도 없었다.

다시 며칠을 별러 휴일 저녁시간, 결국 우리 가족은 우루루 동네 사진관을 찾아갔다. 간만의 휴일 여유를 뺏긴 아이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다들 거울 앞에서 얼굴을 매만지느라 분주했다하나, 둘, 셋! 터지는 플래시에서 놓여나자, 애들은 이제 해방이라며 좋아들 했다. 그런데 그 며칠 뒤 사진을 찾으러 가니 작은 딸애가 눈을 꼭 감고 있는 게 아닌가. 모두들 눈 감은 작은 딸애를 원망해댔다. 가족 사진 찍는 날은 또다시 한 달 후의 토요일 저녁으로 정해졌다. 사진관 총각도 미안한지 이번엔 여러 판을 찍어 잘 된 것을 뽑아 주겠단다.

일렬로 서서 한 판, 우리 부부만 앉아서 한 판, 최신 유행이라고 하여 둥그렇게 둘러서서도 한 판을 찍었다. 모두들 30여 분 동안 환한 조명 아래서 땀을 흘렸다.“모델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남편이 한 마디 하자 모두들 크게 웃었다
다 끝날 때 즈음 남편이 작게 속삭였다. “더 늙기 전에 임종 때 쓸 사진도 한 장씩 찍어 두지.”그래서 남편과 나는 독사진을 한 판씩 찍기로 했다. 아이들은 벌써 그게 무슨 말이냐며 말리려는 눈치였지만 우리 부부는 숙연한 마음으로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번쩍’ 하고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는 남편도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는 것 같았다.

더 늦기 전에 찍어두지...뭐/ 신동례

낮은 울타리 98년 12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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