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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 그때 심장이 얼마나 고동쳤는지 아세요?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626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09:59:12
매년 이맘때면 듣기 싫어도 지겹도록 듣게 되는 캐롤들.... 올해 역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들에겐 선물을 안 준다는군요. 쳇, 완고하기도 하셔라. 아이가 아파서 우는지 배가 고파서 우는지 따위는 관심도 없나 보죠? 하긴 어른들이야 다 똑같지 뭐. 오로지 말 잘 듣고 불평 없는 아이한테만 관심을 가져 주잖아요.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써요.저도 그런 어른들한테는 별로 관심 없거든요. 제가 관심 있어 하는 어른은 딱 한 명 밖에 없어요. 바로 우리 교회 고등부를 맡고 계시는 전도사님이죠. 아, 전도사님의 눈은 어쩜 그렇게 디카프리오를 닳았는지....

그런데... 그런데... 글쎄, 그 분이 며칠 전에 전화를 걸어 크리스마스 때 함께 파티에 가자고 하시는 거예요. 끼아아악!!! 그래요. 얼마 전에 제가 머리 일부분을 빨간색으로 염색했을 때도 전도사님만은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멋있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말이에요.전도사님은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고요.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교회에서 자정 예배를 드린다고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었지요. 맥주도나요. 그런데 올해는 정말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뭔가 다른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침내 크리스마스 아침, 저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캐롤을 따라 부르며 제가 아끼는 가장예쁜 옷을 차려 입었어요.아무래도 나이 차가 좀 나니까 성숙해 보일 필요가 있다 싶어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입술에는 립스틱도 발랐구요. 전도사님께 드릴 선물을 사서 예쁘게 포장하는 것으로 모든 준비 완료! 약속 시간이 되어 떨리는 가슴을 안고 약속 장소인 교회 앞으로 나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우리 교회 고등부 학생들 전체가 다 기다리고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챘지만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은 일.

아이들은 한껏 치장한 저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고, 전도사님도 어이가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셨어요. 얼마나 창피하던지. 전도사님은 교회 봉고차에 우리들을 태우고서 서울 근교에 있는 어느 보육원으로 데려가셨어요. 그러니까 파티는 파티였지요.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작은 크리스마스 파티, 우리들이 도착하자 아이들은 한꺼번에 몰려 나와 환호성을 지르고 저마다 한 명씩 붙잡고 매달리기도 했어요. 저는 모처럼 차려입은 옷이 더러워질까 봐 걱정이 됐지
만 차마 매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어서 엉거주춤 한 아이를 안아 올렸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얼굴은 온통 콧물과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옷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예요. 아차 하면서 내려 놓으려고 했지만 아이는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고.... "왜 좀 더 안아 주지 그러니? 네가 좋아서 그러는 건데." 옆에서 지켜보던 전도사님의 말에 그냥 다시 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자 아이는 아예 자기 얼굴을 내 얼굴에 부벼대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쩌겠어요. 눈을 질끈 감아 버렸죠.

그날 하루는 무척이나 길었어요. 아이들과 춤을 추며 캐롤을 부르고, 전도사님이 준비한 선물들을 나눠주고, 함께 뛰고 뒹굴면서 게임을 하고, 씻기고,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아이들에 적응이 되어 가고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점점 더 가벼워졌어요. 이런 기분 아세요? 아이들이 제 주위에 빙 둘러서서 서로 안기려고 달려드는데 마치 제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아직까지 한번도 이런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없었거든요.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
만으로 여겨지던 저였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못된 짓을 골라서 하던 못난 소녀가, 오늘 처음 만난 이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다니.... 저녁을 먹고는 보육원 아이들이 준비한 성극을 관람했어요. 예수님이 태어나던 날을 꾸민 것이었는데 의상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서툰 연극이었지만 모두들 눈동자를 빛내며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해내는 것을 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구요. 그런데 그냥 누워서 잠자는 척만 하고 있으면 그만인 아기 예수역의 아이가 계속해서 자기 자리를 벗어나 제 품에 안기려 달려드는 거예요. 만나자마자 제게 안겼던 그 아이였어요.

나중엔 별 수 없이 제가 말구유 역을 맡아 무대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니까요. 아이는 곧 잠이 들고, 연극은 계속됐어요. 저는 진짜 마굿간에 있는 말구유처럼 조용히 예수님을 안고 있었고요. 그때 제 심장이 얼마나 크게 고동쳤는지는 아마 예수님만 알고 계실 거예요.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자 모든 아이들이 한꺼번에 울음을 터뜨렸어요. 함께 갔던 친구들 중에도 훌쩍거리는 친구들이 많았죠.저는 그때까지 제 품에서 자고있는 아이를 살며시 내려 놓으며, 세 번이나 씻겨 주었는데도 여전히 지저분한 그 아이의 얼굴에 뽀뽀를 해주었답니다.

전도사님께 드리려고 정성 들여 포장했던 선물을 아이의 머리맡에 두고 보육원을 나오는 제 눈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어요. 전도사님이 부축을 해줘야 할만큼 실컷 울어 버리고 나서야 저는 그 동안 꽉 막힌 것 같던 가슴이 뻥 뚫려 버린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에게 있어 이번 크리스마스는 정말 특별했어요. 예수님이 크고 화려한 성에서 태어나지 않고 춥고 더러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거든요. 부유하고 모자람이 없는 사람 보다는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더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쉬운 이유도요.

그때 제 심장이 얼마나 고동쳤는지 아세요?/(어느 십대 소녀가 보내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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