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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연가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549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09:56:58
요즈음 남편은 이따금씩 “나는 전백련(전국백수연합회) 회원이다.”라고 외치곤한다. IMF 여파로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명퇴니 조퇴니 감원이니 한다지만 남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광고 디자이너인 남편은 중소 광고기획 사무실의 상무이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곳은 대기업 광고 파트의 팀장으로 10여년 간이나 근무하던 중 스카웃 되어간 직장이었다. 젊은 시절에야 종횡무진 실무전선을 누볐지만 나이도 있고 직급도 직급이니 만큼 남편은 주로 사무실을 지키며 자주 자리를 비우는 사장 대신, 일을 지시하거나 사원들을 관리해 왔었다. 말하자면, 그 회사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IMF가 터지고 보니 바로 그 편하디 편한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회사 규모를 줄여야 할 참이건만, 감원을 면하려고 실무전선에서 목숨 걸고 뛰는 사원들을 그만두게 할 수도, 그렇다고 명목상 사장이긴 하지만 회사의 주인인 사장을 사임시킬 수도 없었던 남편은 결국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고 거품임을 정직하게 인정한 셈이라고나 할까. 몇 날 며칠을 홀로 내게 이 사실을 말해 주었을 때 나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희생시키기로 한 그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었다. 말하자면 자신이 고민한 끝에 사임을 결심한 남편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당신은 참 크리스챤이야.” 하는 찬사의 말을 아낌없이 그에게 던져 주었다.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없을리야 없건만 마음은 이상스레 평안하니 이 무슨 은혜인
지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행복하기까지 하다.평소 남편을 위한 나의 기도제목이 「적극적인 기도 생활」이었는데 사임 후, 스스로 골방기도를 시작했으니 이 어찌 아니 기쁠손가. 매일 아침, 남편이 기도하고 있는 방 앞을 지나가노라면 부지런히 눈물을 훔치며 코도 팽팽 풀며 “아버지”를 외쳐 부르는 남편의 모습과 마주치곤 한다. 그때마다 감사로 벅차 오르는 가슴을 진정할 길이 없어진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 역시 몰래 눈물을 훔쳐야 하지만 말이다.

각자의 기도방에서 나온 후, 우리 부부는 식탁에 마주앉아 이른바「T and B Break Time」을 갖는다. 육신을 위하여서는 한잔의 차를, 영혼을 위하여서는 말씀을 먹는 시간이다. 지난해에 8독을 달성한 바 있는 남편은 성경을 읽고 나는 필사를 하고 있다. 때로는 특정한 구절에 대한 성령님의 깨우침을 서로 나누는 즉석 큐티 시간이 이어질 때도 있다.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건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는 상황까지 바꾸시지는 않는다.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심으로 우리들에게 스스로 극복해 나가게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로 인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노라면 오히려 감사하기까지 하다. 예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남편과 마주하게 된 점심 식탁에서 조차도 감사하기 그지없다. 혼자였을 때는 아무렇게나 차렸었지만 이제는 접시에 부침게 하나를 놓아도 상춧잎을 까는 멋을 부리게되니 말이다.
점심상을 물린 후, 내가 일하고 있는 선교단의 밀린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설거지를 시작하였다.

어느새 흰머리가 많아진 남편의 뒷모습. 그것마저도 감사함으로 받아 큰 소리로 이렇게 찬양하면서.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백수 연가 /박강월(은혜드라마 선교단장)
-목마르거든 98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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