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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젠 칫솔 하나만 가지고 살자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565 추천수:14 112.168.96.71
2014-11-21 17:49:21
"칫솔 사 왔어?""어머, 그걸 또 안 사 왔네"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내는 태연히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내일은 꼭 사다 놓을 테니, 하루만 내 걸로 닦으세요" "어떻게 칫솔을 같이 쓰잔 말이야..."나는 그만 아내에게 소리를 버럭 질러 버렸다.칫솔이 부러진 것은 사흘 전이었다 그래서 손가락까지 집어 넣어야 어금니를 닦을 수 있는 흉악한 폼을 감수하며 난 부러진 칫솔로 아침, 저녁 이를 닦았고, 그 때마다 새 칫솔을 사다 놓도록 강력하고도 정중하게 제의했지만 아내는 이틀 동안이나 새 칫솔을 사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시장 가는 아내에게 난 칫솔을 확인시켰었다.

그러나 내 속을 홀까닥 뒤집어 놓은 것은 칫솔만이 아니었다. 칫솔은 안 사오면서도 아내는 떡 하니 일간지를 사 가지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것도 3억 원을 빼내어 달아났던 예금 취급소의 유부남과 여행원에 관한 기사를 읽기 위해서. 그 두 남녀의 이야기가 한참 장안의 화젯거리라지만 그런 기사에 관심을 갖는 아내가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화가 난 나는 이 닦는 걸 포기한 채, "껌이나 하나 사서 씹지"하며 집을 나왔다.회사에서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칫솔을 안 사다 준 아내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차고가 달린 집들이 즐비하게 내려다보이는 언덕빼기 조그만 전세방에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며 웃던 아내.

임신 5개월의 아내가 그 창가에 하루종일 혼자 서있을 텐데. 그 보잘 것 없는 작은 물건, 칫솔 하나로 싸워야 하니....
저녁에 나는 3억 원을 횡령 도주했던 그 남녀의 기사가 자세하고도 자세하게 다뤄진 주간지 한 권을 사 들고 들어왔다
약간 쑥스러웠지만 그것을 아내에게 내밀었다."미안해. 왜 우리가 칫솔 같은 걸로 싸워야 해?"아내도 어린애 같은 미소를 띠며, "미안해?"라고 했고 이내 맛난 저녁을 차려 냈다 아내가 울기 시작한 것은 저녁을 먹고 나서였다 왜 우느냐는 물음에 아내는 보고 있던 주간지 한 페이지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남편의 애정을 테스트해 보세요'라는 기사가 나와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칫솔을 새로 사와야 할 때 당신의 칫솔을 주며 한번쯤 이를 닦으라고 해보십시요. 두말 없이 받아 닦으면 두 분의 애정은 깊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용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애정의 위험 신호입니다.'아내는 눈물을 덜렁덜렁 떨어뜨리고 있었다."몰랐었는데 이제 다 알았어요. 당신은 제가 싫어진 거예요. 얼굴에 기미도 끼고, 히프도 펑퍼짐해지고..."
아내는 너무나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안아 주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아일 가져서 그래. 당신 신경이 약해져서 그래,"

가끔 고무장갑을 끼긴 해도 합성 세제 때문에 물집이 잡히곤 하는 손을 오무려 아내는 눈물을 훔쳐냈다. 그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며 난 중얼거렸다."그래, 그래. 이제부턴 칫솔을 하나만 가지고 살자. 하루는 당신이 먼저 닦고 하루는 내가 먼저 닦고 그러면 되잖아. 울긴. 그럼 되는 거지 뭐. 칫솔값은 계속 모았다가 당신 좋아하는 놀이 공원에라도 가면 더
좋은 거지 뭐...

그래, 이젠 칫솔 하나만 가지고 살자 /한수산

-낮은울타리980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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