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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삶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539 추천수:13 112.168.96.71
2014-11-21 17:47:56
지금은 그런 일이 드물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남자가 한 집에 부인을 두 명 이상 둔 집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큰 부인이 질투라도 할 것 같으면 칠거지악이라고 하여 오히려 본 부인을 나무라거나 내쫓는 일도 많이 있었으니까. 돈이 있는 집안일수록 그 행패는 심했던 듯 하다. 나의 이모도(어머니의 언니) 서울에서 이름난 대가댁의 시집을 갔고 예외 없이 남편은 작은마누라를 얻어 뒷방에 앉혔다. 아니, 처음에는 집하고 가까운 곳에 딴 살림을 내서 살았으며 이모는 90칸 큰집에서 시어머니의 사랑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작은마누라에게 아이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니 어느새 슬그머니 아이들까지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결국 아이 다섯을 큰마누라에게 맡기고 생모는 뒷방에 앉히고 말았던 것이다.「참자, 참자. 그것만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이모는 이를 악물고 다섯 아이를 정성껏 길렀다. 물론 본인 슬하에는 자식이 없었으니까. 아니 하나를 낳았는데 곧 사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잘 생겼고 공부도 잘들했다.그 어려운 상급학교에도 별탈 없이 쑥쑥 합격이 됐다. 제일 어렵다는 학교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모를 잘 따랐다. 손잡고 유치원도 다녔고 학교 입학식 날이나 졸업식 때도 이모는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학교에서 특별 발표회가 있다고 우리까지 초대하는 바람에 우리는 어머니와 내 형제 다섯이 줄을 지어 그 아이들의 독창이나 피아노 독주, 또는 무용 발표 등을 보러가서 열심히 보고 듣고는 칭찬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모는 얼굴에 말할 수 없이 기쁜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곤 했었다. 속내용은 잘 모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말썽도 없이 기계에 기름을 친 듯 매끄럽게 집안이 운영되어 나가는 듯 했다. 원체 식구들도 많았고 집도 크니까 얼굴을 서로 맞대지 않아도 지낼 수 있었던 탓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가끔 이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젊은 색시를 데리고 한동안 살림을 차렸던 삼청동 근처에 가는 것은 물론 쳐다보기도 싫어하는 게 아닌가. 물론 지금은 그 집에서 이사하여 같은 집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백인(百忍)이라고 쓴 액자를 벽에 걸어 놓고 그것만 들여다보며 살았던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어느 날 내가 이모부와 단 둘이 있게 된 기회에 대담하게 물었다. 우리 이모가 무엇이 부족해서 딴 여자를 얻었느냐고 하니까 이모부는 정색을 하고는 "너의 이모는 좋은 아내며 좋은 며느리, 또 어머니지만 좋은 여자는 아니야. 시어머니 눈치(그때 시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아랫사람들이나 친척들 눈치만 봤지 어디 내 눈치를 본 다더냐? 나도 아내보다 여자가 더 좋아."

그때는 결혼도 안한 내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거니와 자기가 낳지도 않은 자식들을 저렇게 사랑하며 정성껏 키워 주는데 무슨 잔소리냐고 입을 삐죽거렸지만, 두고두고 생각해 보니 느끼는 바가 많았다. 결혼하면 누구나 다 여자도 아내도 되어야 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여자로서 그다지 매력이 없는 듯한 나를 계속 사랑해 주며 만일 다시 태어나는 일이 있다고 하면 또 다시 나하고 결혼하겠다고 빈말이라도 말하는 남편을 부드러운 눈매로 다시 쳐다봤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전혀 예수님을 몰랐던 이모가 70세가 넘어서야 동생인 우리 어머니 손에 끌려서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찌나 열심히 성경도 읽으며 "얘 내가 평생 동안 찾았던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하고는 활짝 웃으시는 게 아닌가. 결혼한 아이들도 자기들을 길러 준 어머니에게 어찌나 잘하는지 그런 효자들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남편이 죽은 뒤에 작은 부인은 우리 이모의 시중만 열심히 들다가 이모가 마지막에 입술을 적셔 주는 물을 받고는 먼저 눈을 감고 말았다. 물론 이모를 따라 교회에도 나아갔었다.

그러나 이모는 94세로 아직도 건강하게 애들하고 살고 계신다. 손자 손녀들하고 심심지 않게 지내고 계시는 것을 보며 역시 눈치보며 사는 여자보다는 아내로 떳떳하게 사는 것이, 그리고 하나님 사랑을 맛보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로구나 하고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승리하는 삶 / 윤 남 경

-주부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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